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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이순옥 증언> 꼬리 없는 짐승들의 눈빛(2) -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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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번호 |
159 |
작성일 |
2008-0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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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청지기 |
조회 |
185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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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 62번) 나는 아마 죽어서도 1987년 10월 1일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날 아침은 유난히도 교대로 들어온 간수들이 감방복도 창문을 열고 공기를 환기시킨다, 복도청소를 한다고 북새통을 피우고 있었다. 이런 날이면 직감적으로 상급기관에서 간부들이 내려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상급기관에서 내려오는 것은 갇혀있는 죄수들한테는 반가운 일이 아니다. 감방 안은 무거운 침묵에 잠겨있었고 마치 그 침묵이 무서운 유령처럼 떠돌았다. 나뿐만 아니라 거기에 걷혀있는 죄수들은 이런 날이면 좋지 않은 소식이 날아든다는 것을 오래 동안 있으면서 체험하였기 때문이다. <이순옥 나와!> 도 구류장에는 중범들만 수감되어 있기 때문에 상급기관에서 간부가 내려온다는 자체가 또 누가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는 것을 그 안의 죄수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간수 교대장인 맹씨가 급히 들어와 내 감방 앞에 멈춰 섰다. 그는 한참 눈을 부릅뜨고 나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머리를 들 수 없으니 알 수 없지만 예감이 좋지 않다. 다른 날 같으면 먼저 빈정대면서 불러내겠는데 그날은 웬일인지 숨소리마저도 들려오는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되니 마음이 더 불안해졌다. 오히려 이빨을 사려 물고 나오라고 고함을 지르는 것보다 더 공포에 질렸다. 교대장이 수감자를 불러내려고 왔으니 어느 감방이나 행여 자기 이름을 부를까하고 신경을 세우고 있었다. 드디어 맹씨의 날카로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이순옥 나와! 순간 전기에라도 감전되는 것 같았다. 깜짝 놀랐다. 왜 그리도 놀랐는지 모른다. 하루가 멀다시피 끌려나가 조사를 받아야 하고 또 고문실에도 끌려갔다 와야 하는데 왜 오늘은 그렇게 놀랐는지 모른다. <당에서는 순옥이에게 `사형을 선고하기로 결정 하였소> 간신히 일어났다. 아니 간신히 기어나갔다. 맹씨의 날카로운 눈초리와 구두 발길질이 나의 아픈 상처를 마구 할퀴었다. 그렇게 끌려 나가 어느 조사실로 들어섰다. 거기에서 중앙에서 내려온 한 간부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몇 분정도 지나서야 그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순옥이 몸이 많이 상했구만. 순옥이는 혁명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되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당에 불평불만을 품고 있소.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는 인민생활을 위해 밤잠을 쉬지 못하시고 노고가 많은데도 무지한 인민들은 그것도 모르고 식량배급과 생필품배급이 되지 않는다고 불만이 많소. 그러니 혁명의 이익 견지에서 많은 간부들을 살리고 민심을 수습하자면 누군가 당의 상업정책을 제대로 집행하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하오. 당에서는 순옥이에게 사형을 선고하기로 결정하였소라고 내뱉고는 나가버렸다.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쇠망치로 뒤통수를 심하게 얻어맞은 것처럼 눈앞이 캄캄해지고 속이 매스껍고 온몸의 힘이 순식간에 빠지는 것 같았다. 얼마를 그렇게 넋이 빠져 앉아있었는지 모른다. 끌고 왔던 교대장인 맹씨가 다시 들어왔다. 멍청하게 넋이 빠져 땅바닥에 주저앉은 나를 구두 발로 걷어찼다. 이젠 더 할 일이 없으니 감방으로 가자는 것이다. <내가 갔을 때는 사형대기수들이 40명 있었다> 그때 나는 솔직히 표현하면 제정신이 아니었다. 구두 발길질에 채인 상처가 아픈지, 내가 어느 한 독재자의 폭행에 의해 죽어야 하는지, 사형선고가 무엇인지, 나라의 최고 통치자가 책임을 져야 할 엄청난 생활고를 내가 왜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라의 파산을 책임질 만한 위인도 못되는데 사형선고라니, 뭐가 뭔지 온통 뒤죽박죽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얼마 후 빨리 걸으라는 재촉과 함께 맹씨의 구두발길질에 채이면서 간신히 기어왔는지 걸어왔는지 기억도 없이 감방으로 돌아왔다. 조금 후 나에게는 62번 사형수 번호가 들어왔다. (사형대기수 감방에서) 한 인간의 생명이 아무런 반항도 못할 뿐 아니라 왜 죽어야 되는지 조차 모르는 채 마치 타다 남은 모닥불의 연한 연기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다시 교대장 맹씨가 들어왔다. 감방을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 사형을 선고받은 사형수들이 형 집행 시간을 기다리는 대기 감방으로 옮겨졌다. 사형수 대기 감방은 내가 먼저 있던 감방보다 더 좁고 침침하고 습기가 차 곰팡이 냄새와 이상한 냄새가 났다. 처음 며칠은 그 냄새가 무슨 냄새인지 몰랐다. 내가 갔을 때에는 사형대기수들이 40명이 있었다. 그 중에 여자는 나 하나였다. 그러기에 나를 감방 맨 안쪽 끝에 있는 감방에 넣었다. 감방에 들어온 후 도무지 몸을 가누고 앉을 수 없었다. 눈앞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 몸 전체가 공중에 붕 떠있는 것 같았고 귀 안에서 윙윙 소리가 나는가 하면 가슴이 답답하여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모든 것을 믿을 수 없었고 내가 무서운 악몽 속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사는 날 까지라도 수령님께 감사하며 `살다 가는 게 좋을 게다>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며 빨리 이 악몽 속에서 깨어나려고 악을 써보았다.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또 질러도 목소리는 목구멍으로 들어가고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았다. 얼마를 그렇게 몸부림을 쳤는지 모른다. 한참을 지나서야 내가 깨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에야 목구멍에서 쇠비린내가 난다는 것을 비로소 실감하게 되었다. 몸 전체가 땀으로 목욕한 것 같았고 숨이 나오지 않으며 목구멍에서는 헉헉하는 소리만 났다. 그래도 행여 꿈이면 좋겠다 싶어서 기어가서 감방 앞 쇠창살을 만져보았다. 허우적거렸던지 교대장 맹씨가 오랜 시간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맹씨가 다가왔다. 이젠 그만 진정하라. 네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되물릴 수 없는 일이니 사는 날까지라도 수령님께 감사하며 살다 가는 게 좋을 거다. 그래야 너희 가족한테도 유리할 것이라는 것을 네가 더 잘 알 것이다. <23살 입당 후 오직 수령 당 밖에는 생각해본 일 없는데> 그래도 너는 다행스럽게도 새끼가 하나밖에 없으니 망정이지 며칠 전에 사형당한 김모는 새끼가 다섯이나 되었다. 그러니 그 어미는 황천 갔지만 그 새끼들은 어미의 벌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데 끔찍스럽지 않느냐. 그러니 부모나 새끼들이나 수령님의 은덕을 하루라도 잊으면 이 꼴이 된다는 것을 네가 똑똑히 알고 가야 한다. 하여튼 네 아들과 교장선생이 안됐다. 나는 맹씨의 말을 들으면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말하는 것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맹씨의 앞에서 내가 왜 그런 이유를 설명 받아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또 내가 왜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23살에 노동당에 입당한 후 오직 수령, 당 밖에는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로동당 입당선서에도 있듯이 당에서 안겨준 정치적 생명을 눈동자와도 같이 아끼고 육신이 부서지고 이 한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당을 위해 충성하겠다고 한 맹세를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거니와 20년 동안의 당 생활을 누구보다도 성실히 해왔다. 간부들에게 물자를 공급해주면서 항상 수령님과 당을 위해 일하는 간부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생활에서 불편을 느끼면 충성하는데 조금이나마 지장이 생길 것 같아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는데 이제 와서 그들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으라니 내가 지금껏 충성한 것은 무엇인가. 또 누구를 위해 나의 모든 청춘을 다 바쳐 당에 충실해 왔는가. 나한테도 사랑하는 남편이 있고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그 어떤 보물과도 바꿀 수 없는 내 목숨보다도 더 귀중한 아들이 있다. 한 가정의 아내이며 엄마인 내가 이렇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으면 우리 가족은 그 사회에서 영원히 매장된다. 사람은 평소에는 힘들고 어려운 일에 부닥칠 때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하는 말을 쉽게 한다. 나도 그런 적이 있다. 그런데 정작 죽는다는, 그것도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게 되었다니 너무나 싫었다. 생에 대한 집착이라고 표현해야 되는지 어쨌든 죽을 수가 없었다. 여자로서, 아니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스러운 고문을 당하면서 너무나 고통스러워 차라리 나를 죽여 달라고 악을 써본 적도 있었다. <열 손가락 손톱 다 뭉개지고 피가 철철>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나 하나만 사형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나한테는 목숨이 빨리 끊어지는 것이 덜 고통스러울지 모르겠다. 고문으로 고통스러울 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내가 사형을 당한 후의 일도 책임을 져야 한다. 그 날 아침에 사형선고라는 통보를 받았는데 하루 종일 얼마나 몸부림을 치고 독감방의 콘크리트 벽을 손톱으로 긁었던지 열 손가락 손톱이 뭉개지고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내 몸의 모든 신경이 마비가 되었는지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못했다. 그 날은 맹씨가 당직을 맡은 날인지 다시 나한테 나타났다. 그는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네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느냐. 이렇게 반항을 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는 것을 잘 알겠는데 섣불리 다른 마음을 먹지 말라. 두 번 다시 그러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창살을 발길로 걷어차고는 나가버렸다. <김정일 이름 석 자의 사형통고장에 초죽음 당 한다> 이빨을 사려 물고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아무리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해도 안되었다. 그때 내 모습, 내 심정은 사냥꾼의 덫에 걸린 짐승과도 같았을 것이다. 나는 무조건 죽을 수가 없다.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면 살 수 있을 것 같은 심정이었다. 마지막 힘을 다해 몸부림치던지 고함을 지르던지 무슨 결판이 나야만 해결될 것 같은 심정이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아마 제일 악을 썼던 것 같다. 그런 일을 당해보지 못한 사람은 억울하게 죽는 사람의 심정을 몇 만분의 일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사형선고를 받은 그날은 누구나 다 그런 심리적인 발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상한 것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입 밖으로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슴속의 마지막 한을 분출하지 못하니 목구멍이 타고 입술이 말라터지고 그 속이 완전히 새까맣게 타버린다. 그러니 사형수는 하나같이 김정일 이름 석자의 사형통고장에 초죽음을 당한다. 반정신이 나가고 사람의 얼이 빠져 멍청해지고 말문이 막혀버린다. 사형수들에게는 간수들의 감시가 더 심했다. 인간세상에서 마지막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형을 집행하기 전에 목숨이 끊어져도 안 된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자해로 죽으면 담당 간수가 처벌을 받는다. 그러니 간수들이 4명씩 한조가 되어 2명씩 감방복도를 계속 뚜벅거리면서 순찰하고 있었다. 며칠 후에야 나는 감방 안에서 나는 이상한 냄새가 산사람의 살이 썩는 냄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형수들 대부분이 오랫동안 수감되어 고문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다. 그 상처들이 사형선고를 받고 나면 다 썩어나는 것이다. 그 안에서는 정신력으로 버티는데 사형선고를 받으면 그 정신력마저도 포기한 상태이다. 그러니 어느 사형수나 마찬가지로 엉덩이에 욕창이 먼저 생긴다. 욕창이 생기니 좀더 있으면 척추까지 감염된다. <살이 비듬같이 온몸에서 부슬부슬 떨어진다.> 약으로 소독도 못하고 하니 살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그러기에 간수들은 마스크를 하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다고 한다. 사형수를 지키는 간수들한테는 식당에서 급식도 따로 공급된다. 사형수들의 모습을 보면 누구도 자기 식구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뼈에 가죽만 씌워있다. 눈은 주먹이 드나들 정도로 들어가고 머리의 두개골이 튀어나올 정도로 해골바가지다. 어떤 사람은 밥을 주는 알루미늄 식기를 뜯어서 삼킨다. 알루미늄 조각이 위에 들어가니 위에 구멍이 나서 죽는 경우가 있다. 마지막 시간을 얼마 남기지 않았지만 상처의 고통과 또 개죽음을 당하는 것보다 자기 손으로 목숨을 끊는 것이 더 낫다고 여기는 것이다. 산사람의 몸에서 살이 빠지면 그것이 몽땅 비듬같이 온몸에서 부슬부슬 떨어진다. 몸에서 매일 한 웅큼 씩 떨어지면 1개 월 가량 지나면 완전히 해골이 되어버린다. 내 몸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명이 꺼지는 것 같았다. 동태고문으로 전신에 동상을 입은 것이 끝내 말썽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1월 달에 동태고문을 당한 것이 7~8월이 되어오니 두발이 시커멓게 화농하기 시작하였다. 발이 부어오르고 두 다리가 무릎까지 퉁퉁 부어 통나무처럼 뻣뻣하여 도무지 다리를 굽힐 수가 없었다. 온몸은 불덩어리처럼 열이 퍼펄 끓어오르고 귀까지 멍멍해졌다. 발의 통증은 어디에 비길데 없이 심했다. 발등을 누르면 이쪽저쪽에서 피고름이 터졌다. 뼈속까지 다 썩는 것 같았다. 출처 : 한국논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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