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林鍾仁의원도 국보법폐지와 6·15실현에 앞장서 온 인물이다. 그는 ① 2004년 8월4일 국보법폐지 입법추진위원회에 참여했고, ② 2004년 12월21일과 20일 국보법폐지 농성장을 격려 방문했으며, ③ 2004년 12월23일 국보법폐지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했고, ④ 2007년 5월31일 「6.15 남북공동선언 기념일」 지정촉구결의안에 서명했다.
△ 林의원은 사법부에 의해 북한의 對南공작원으로 확인돼 온 간첩 송두율·곽동의 등 소위 해외민주인사 귀국에도 앞장서왔다. 그는 2003년 8월7일 소위 「해외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을 위한 범국민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으로 참여했다.
△ 林의원은 ① 2004년 9월2일 「美國의 북한인권법 제정 항의 서한」에 서명했고, ② 2005년 7월14일 「美日의 북한인권 문제제기 규탄 결의안」에 서명했으며, ③ 2006년 10월13일 북한 核실험 후 「포용정책 지속」을 주장하는 성명에 서명하는 등 김정일 정권 비호에 앞장서왔다.
△ 林의원은 反美선동에도 앞장서왔다. 그는 2005년 7월27일 통일연대 등이 개최한 「미군주둔60년 미군피해자 증언대회」를 후원했다. 당시 대회 주최 측은 인민군에 대한 미군 전투기폭격으로 빚어진 우발적 주민피해들을 『무차별학살』,『무자비 학살』,『파렴치한 살해』,『大살육 파괴만행』등으로 묘사했다.
△ 林의원은 2006년 1월24일 평화방송라디오에 출연,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주한미군이 세계 분쟁에 마음대로 개입하는 것을 우리 정부가 용인하는 것』이라며 『미국이 세계를 휘젓고 다니는데 우리가 돈을 댈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 林의원은 韓美연합사 해체를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2005년 9월22일에는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가 북한에 대해 책임 있는 군사적 대화상대가 되기 위해서는 전시작전권 확보가 필수적인 요건』이라며 『정부는 자주국방을 위해 전시작전통제권을 즉각 환수하라』고 요구했다.
△ 林의원은 2007년 7월6일 동료의원들과 성명을 발표, 『작전통제권을 UN사령관에게 넘기지 말고 전면적으로 환수할 것』,『한반도 평화협정과 양립할 수 없는 UN군사령부를 해체할 것』,『韓美연합사에 버금가는 對美종속적 통합형 지휘체계 반대』등을 주장했다.
△ 林의원은 평택범대위의 反美폭동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는 2006년 5월4일 평택범대위가 농성 중인 건물 옥상에 민노당 천영세 의원과 함께 올라가 경찰과 대치하던 중 연행됐다.
△ 林의원은 2005년 8월23일 「평화재향군인회」가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재향군인회의 복수설립을 가능케 하는 재향군인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林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김성전氏는 「평화재향군인회」의 임시 사무처장으로 실무를 담당해왔다.
△ 林의원은 2005년 7월22일 국정감사에서 『군대 내 親日문제를 청산해야 한다』며 『親日군인 박정희가 집권, 親日군인을 두루 중용하면서 親日천하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 林의원은 2006년 1월11일 일본 시즈오카(靜岡)현 아타미(熱海)에서 열린 공산당 제24차 당 대회에 내빈으로 참석했다. 그는 이날 열린 공산당 대회장에서 오카다 야스오(緖方靖夫) 공산당 국제국장의 소개를 받고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고, 환영의 박수를 받았다. 이날 당 대회에는 17개국 20개 정당에서 31명이 정당대표 자격으로 참석했으며, 林의원은 유일하게 개인자격으로 참석했다.
자료출처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21560&C_CC=AZ














임종인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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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5장9여자중 극히 어여쁜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잠언10장12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잠언10장11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