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를 이해하는 드문 한국 사람들

요즈음에는 국제화.세계화(globalization)를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은 지식인 그룹에 설 수 없는 지구촌화.국제화시대의 홍수 속에서 젊은이들의 예술적인 취향도 서양음악위주의 흐름으로 一脈相通함을 강조하여야 그들 스스로도 국제인이 된 느낌일 것이다.

필자가 대학의 강단에서 강의 중에 항상 강조하듯이, 진정한 세계화의 완성은 가장 한국적인 것에 대한 이해와 애정에 기반 하지 않고서는 砂上樓閣이 되고, 종국에는 그 사람이 미국사람인지, 세계인인지 구분하기도 힘이 들어져서 한 사람의 문화적 정체성은 다문화 조류 속에서 불분명한 존재감으로 상실될 확률이 매우 농후하다.

필자는 안암동의 고려대학교에서 국제문제를 강의도 하고 있지만, 어제 저녁에는 중소기업청장을 모시고 경제문제를 주제로 강의를 듣고,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그 분이 한국문화에 대한 많은 애정을 갖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가 모차르트, 바그너의 오페라를 자랑삼아 이야기 하고 그 예술적 천재성에 감동을 받아도, 아직은 한국의 판소리를 듣고 이 이상의 예술이 있을까하는 느낌을 받았다는 고위공직자를 만난 것은 필자가 어제가 처음이기에, 매우 인상 깊게 그가 한국의 판소리에 갖고 있는 愛情을 기쁜 마음으로 나눌 수가 있었다.

돌이켜 보건데, 필자가 지난 외교부에 근무하던 시절에 그 당시 정부중앙청사에서 운영하던 동아리 중에서 ‘판소리연구회’가 있어서 시간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일과 후에 광화문청사의 지하 동아리 룸에서 동호인들과 함께 우리 경기민요를 따라 불러도 보고, 판소리 춘향가의 일부와, 사철가 등을 모방하면서 우리 선조들의 향기가 짙은 예술성을 마음껏 체험한 기록이 새롭다.

그 당시에는 ASEM/APEC 다자협상과정에 필자가 출장을 다니면서 많은 외국의 관료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협상이 종료된 이후 여흥시간에 춘향가 중에서도 ‘사랑가’ 한 대목 살짝만 맛을 보여주어도 매우 흥미롭게 저의 아주 소박하고 아마추어적인 판소리를 감상해 주던 많은 외국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아주 초보적인 초등생수준의 실력이었지만 우리 것을 전달하는 필자의 모습에서 그들이 더 열광하고 관심을 보였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 이후 혹시나 시간이 허락하면 주말에 서초동 예술의 전당 내 국악당에 가서 국악공연도 보면서, 혹은 판소리 명창들의 간헐적인 판소리를 감상하면서 진정으로 가슴에 와 닿은 우리 전통의 예술의 향기를 느껴온 것이다. 이러한 느낌을 지난 몇 년간의 개인적인 정치적인 시련으로 거의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데, 어제 다시 그 향기를 공유하는 공직자를 만나서 모처럼 매우 즐거운 공감대를 느낄 수가 있었다.

사실 우리사회의 상류층이라 자부하는 사람들의 문화적인 정향(orientation)이 와인문화를 이야기하고 오페라의 진한 감동을 이야기 한다. 고상하면서 서구문화 지향적인 예술감상주의에 깊이 젖어있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필자이기에, 세계화 시대에 전지국적인 문화적 공감대를 위하여 서구화.산업화로 파생되는 지구촌문화의 연결고리로, 서구의 知性.예술인들과 대화의 연결고리로 좋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우리 것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전무 한 한국 사람이 서양 것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우스꽝스런 모습일 것이다.

필자도 나름으로 오페라도 좋아하고 와인도 좋아하지만, 그리고 지금 한국의 지성들 중에서는 나름대로 서구문화의 토대인 영어도 매우 잘 한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역시나 한국 사람으로서 그 진한 한국의 정서를 담고 있는 ‘춘향가’ 한 대목 눈을 감고 듣는 순간에 내가 한국 사람으로서 느끼는 그 문화적 일체감은, 진한감동으로 몸소 느끼는 전율 그 이상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필자가 운전하는 차량에는 항상 판소리 CD를 꽃아 놓고 마음이 복잡할 때마도 한 번씩 들으면서 그 느낌을 공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행히, 최근에 우리 막걸리의 우수함을 바탕으로 한국적인 것의 대명사로 막걸리가 많이 소비되고 있는 추세를 보면서 판소리 역시 그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 국민들의 진정한 사랑을 받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한다.

진정한 세계화를 이루는 세계적인 한국인은 우리 것을 진정으로 소화하고 감상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사고와 느낌의 체계를 갖춘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이고, 그러한 인재가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균형 잡힌 시각에서 나라의 발전문제를 더 합리적으로 고민할 것이라고 필자는 매우 굳게 믿고 있다.

2009.11.20 박태우 博士의 푸른정치연구소(hanbatforum.com)

대만국립정치대학 외교학과 객원교수/주한동티모르 명예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