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6자회담은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시키려는 것이었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지금 결정적인 존폐(存廢) 위기에 놓여 있다.

지난 미ㆍ북 접촉에서 합리적 북핵 검증절차라 할 ‘시료채취’ 명문화를 북한이 단호히 거부함에 따라, 이제 북한의 ‘핵포기 거부’ 의지는 국제사회에 보다 명료하게 알려지게 되었다.

부시행정부는 파격적으로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하고, 중유 100만톤과 식량 50만톤을 지원하는 등 양보를 다해가며 북한을 설득하려 했으나, 지나친 “양보(concession)”와 “유화(appeasement)”라는 국내외의 가혹한 비판만을 받게 되었을 뿐이다.

부시행정부를 포함한 美 조야(朝野)는 이제 북한의 ‘위선(hypocrisy)’과 ‘기만성’을 확인하고는 피로에 지쳐있는 모습이다. 현재로선, 핵협상을 재가동할 동력(動力)이 모두 소진된 상태다.

북한은 6자회담 全 기간 동안, 그야말로 밀고 당기는 노련하고 사악한 협상술을 발휘, 韓ㆍ美ㆍ日을 지치게 하고 패퇴시킨 셈이 됐으며, 핵개발을 계속할 수 있는 시간을 벌고 그 구실을 획득한 결과가 됐다.

마침내 美 국방부 보고서가 북한을 “핵 보유국(nuclear power)”으로 표기, 한국 등으로 하여금 미국이 사실상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한 것 아닌가 하는 강한 우려를 갖게 하기에 이르렀다.

부시행정부의 임기가 다함에 따라 시간적으로 이제 북핵 문제는 내년 1월 20일 출범하는 오바마 정부에 인계(引繼)되게 되었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는 지금 금융위기에 둘러싸인 채, 이라크 철군, 아프간 테러戰에의 집중, 이란 핵개발 문제, 중동 분쟁 등의 긴급 현안으로, 북핵 문제에 전념하기가 매우 어려운 형편이다.

지금까지 오바마 당선자는 “美 국민에게 가장 심각한 위협은 핵무기를 소지한 테러리스트이며 또한 핵무기가 위험한 체제(dangerous regime)들에게 확산되는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고, 북핵 문제와 관련하여, “어떠한 전제조건도 없는 강력하고 직접적인 외교(tough & direct diplomacy)의 전개”를 천명한 바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북핵 문제는 이렇다 할 분명한 방안의 제시 없이 표류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미국의 정치가, 전문가 그리고 많은 국민들이 (i)북한이 진정 핵을 포기할 의사(意思)가 없으며 (ii)그동안 북한은 6자회담의 틀 속에서 미국과 한국 등의 동맹국들을 기만(欺瞞)해왔고 (iii)중국도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기대에 어긋나게 북한에 영향력이나 압박을 가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6자회담이 표류하는데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점 등을 알게 된 것은 소득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여론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에서, 북한의 진의(眞意)에 관한 ‘컨센서스(consensus)’가 형성되어 있다는 점은 근래 이례적이며 다행스러운 현상이긴 하다.

이런 점에서 지난 12월 27일자 美 시사주간지 「US News & World Report」는 “향후 2~5년안에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이란과 더불어 우선적인 핵확산도전이 아시아 끝 쪽에서 오고 있다”며 “부시행정부 하에서 북한은 핵무기 1~2개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가진 국가에서 8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가진 나라로 변했다”고 개탄했다.

이어 동 잡지는 “북한이 지난 2006년 핵폭탄 1개의 폭발실험을 함으로써 사실상 핵보유국(de facto nuclear power)이 됐다”고 평가했다. 덧붙여 이 잡지는 “북한이 핵폭탄이나 핵관련 인프라를 포기할 의향이 있는지 전혀 확실치 않다”고 우려했다.

한편 칼럼니스트 Richard Halloran은 “North Korean Impasse”(Washington Times, 12.21) 제하의 기고문에서 “한국은 어떠한 정부가 집권하던 핵협상에 미온적이었다고 지적하고, 그 이유는 (i)국민 다수가 북한이 핵무기를 남한의 동족(同族)에게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고 (ii)통일이 되면 한국이 북한 核을 인수받을 수 있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Halloran의 평가가 지나친 감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적어도 우리 국민 간에 북핵 문제의 시급성이나 절박함에 대해 이견(異見)과 갈등이 많아,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아직도 북핵을 “자위용”이라고 주장, 북한의 논리를 사실상 지지ㆍ옹호하는 지도층 인사가 상당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지난 12월 16일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주최하는 「국방포럼」에서 한나라당 김학송 국방위원장은 “북한 핵개발의 실체적 위협”을 진단하면서, 북한 핵무기 개수는 미국 정부가 추산하는 것처럼 7~8개를 넘어서서, “20여 개 이상의 핵폭탄 제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그만큼 핵무기의 ‘非대칭성’에 대한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0월 17일 열린 韓美안보연례협의회(SCM)에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 우산’ 제공이 확약(確約)되었으나, 이 또한 북핵의 사전 저지(沮止)보다는 북핵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마련된 것이다.

2008년을 보내는 지금,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지는 가운데, 북핵 문제는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해결책이 안 보이는 금융위기와 함께, 2009년에 북한 核문제는 훨씬 더 복잡하고 큰 위험을 수반할 잠재 이슈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