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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25일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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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해의 첫걸음
2천만 노예를 노예주(김정일)의 사슬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정확한 목표설정
문국한 

-자유
 
 사람들은 모두 자유를 그리워 합니다
 자유인, 자유의 세상
 자유는 사람들의 꿈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유의 뜻을 모릅니다.
 자유의 얼굴을 모릅니다.
 그래서 자유를 찾지 못합니다.
 
 자유의 자(自)는 스스로 자입니다.
 자유의 유(由)는 말미암을 유입니다.
 ‘말미암’이란 원인 ,과정, 결과입니다.
 
 모든 일의 원인, 과정, 결과는 모두
 스스로 책임질 때 자유입니다.
 남의 탓을 안 할 때 자유입니다.
 
 스스로 할 때 자유인입니다.
 시켜야 할 때 어린이입니다.
 욕먹고 할 때 노예인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여
 그 모든 결과를 책임질 때
 그는 최고의 스승입니다.
 
 스스로 할 때-그 때 성공합니다. -박해조, ‘자유’
 
 얼마 전, 어느 집회 장소에서 등록을 하는데, 소속을 <북한노예해방국제연대> 라고 하니까,
 어떤 분이 정색을 하며 묻는다.
 “노예라니요. 누가 노예란 말입니까?”
 “북한주민 2천만이 노예나 다름 없지요”
 “그건 지나친 표현 아닙니까. 어떻게 북한주민을 노예라 할 수 있나요?”
 그 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인(김정일)으로부터 식량 배급을 받지 못하면 죽는 줄 알고, 이웃마을로 이사 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갈 수 없고, 무슨 말을 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그게 노예가 아니고 뭡니까?”
 “........”
 
 ‘노예’라는 말은 ‘주인’이 없으면 성립할 수가 없다. 노예의 모든 권리가 주인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주인이 명령하는 대로 움직여야 한다. 무엇하나 스스로 결정할 수가 없다. 북한 지역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구호가 있다.
 “당(黨)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장군님이 없는 조선은 생각할 수 없다”
 이 말은 곧, ‘우리는 당신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과 같다. 북한 이해의 첫걸음이 바로 북한주민들과 김정일 관계를 정확하게 사실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김정일 이라는 노예주와 거기에 예속된 2천만을 노예로 정의내리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그쪽도 우리와 비슷한 사회다, 북한주민이 어렵게 살기는 하지만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보다 순수한 면도 있다”라고 애매한 정의를 내린다면, 혼란이 생긴다. 자유인과 노예를 확실히 구분하고 정의를 내릴 수 있어야 한다.
 
 필자가 바라보는 남북문제의 해법 하나는 ‘상대를 바로 알자’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오늘의 북한에 대해 ‘노예상태로부터 해방 받아야할 민족’으로 보지 않는다면 북한에 대해 아직도 ‘깜깜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오늘 남북 문제를 스스로 잘 한다면 우리민족은 자유인이다.
 누군가 시켜서 한다 할 때, 우린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남북문제를 놓고 남(4자:미-일-중-러)에게 의존하고 있거나, 욕을 먹는다고 한다면 우리는 아직 노예인이다. 나를 알고 상대를 알면 백전백승한다는 고사를 인용할 필요도 없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를 심각하게 돌아보고, 상대(북한)를 정확히 아는 일이 급선무이다.
 
 첫째, 2천만 북한주민을 노예요, 김정일은 그들의 노예주로 군림하고 있다는 사실인식
 둘째, 2천만 노예를 노예주(김정일)의 사슬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정확한 목표설정
 셋째, 2천만 노예해방을 위해 연대하고 다양한 방법을 총동원해 쉬지않고 행동하는 일
 
 이 세 가지가 오늘 필자의 좌우명이다.
 

문국한/북한노예해방국제연대 대표

 

 

 

 

 

등록일 : 2008-12-2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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