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눈물

15세기 초반 조선 건국 30년에 들어서면서 조선 개국공신인 정도전이 내세운 ‘신권강화론’을 이어가는 세종조 병조판서 조말생, 허조와 같은 사대부가 주도하는 왕권을 견제하는 신권(臣權)의 확장정치는 극에 달한다.

군왕도 맘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갈아 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힘이 그 당시의 훈구대신들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요즈음 인기리에 방영중인 사극 ‘대왕 세종’은 지나치리만큼 합리적이고 대화와 타협을 존중하는 세종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직언(直言)과 견제를 대등한 입장에서 전개하는 훈구대신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어찌 보면 우리 역사상 왕권을 견제하던 사간원과 신하들의 권능과 기능이 그때처럼 활발한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 봄 직한 것이다.

태조 이성계의 조선개국에서 출발하여 강력한 왕권의 구축을 위한 태종 이방언의 권위주의 왕치(王治)의 단계를 지나 덕치(德治)를 내건 세종의 합리적 의사결정 모델은 극에 달한 신권(臣權)의 견제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는 것이다.

세종은 출신성분과 지위가 천하더라도 그 재주와 능력이 비상하면 국가에서 써야하고 개방적인 자세로 귀화하는 북방지역의 여진인들에 대한 차별은 안 된다는 통치이념으로 당시로는 매우 진보적이고 파격적인 국정운영을 하지만, 조말생, 허조와 같은 훈구대신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치고 세종 조 전기에는 왕권이 위기(危機)에 봉착하는 상황이 수차례 전개되기도 한다.

엄격한 신분사회로 국가통치의 기본을 삼았던 그 당시로써는 이는 대단한 결정이었던 것이다. 천인출신의 장영실곽 같은 과학기술인을 고위직에 등용하고 국가를 위해서 그의 재주를 개발토록 배려하는 세종의 통치술이야말로 실용주의의 진정한 모델인 것이다.

작금의 인사스타일을 생각하면 많은 점을 우리가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간과(看過)하지 말아야 할 아주 중요한 국가운영의 본질이 있다. 그것은 왕이나 벼슬아치들이나 그들의 백성에 대한 사랑의 깊이와 진실성(眞實性)의 문제이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의 역사적 사건들을 살펴보아도 바로 이 부분에선 단 하나의 너무도 중요한 판단의 근거를 만들어 낼 뿐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권력과 기득권을 지키는 것이 우선인 사람들의 처신과 백성의 안위(安危)와 편안함을 우선으로 하고 자신의 처신을 결정하는 사람들의 행동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온 것이다.

이조 초의 왕이라는 존재가 일반백성들의 분노 앞에서 무릎을 꿇을 정도의 용기(勇氣)와 진실함이 세종조의 찬란한 번영기를 만드는 주춧돌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된다. 함길도의 경성에서 굶주린 백성들이 국가의 정책에 반대하여 자신들의 한이 맺힌 사연을 담고 궁궐 앞에서 폭력시위를 하는 현장에서도 경위병들을 물리치고, 홀로 무릎을 꿇고 진실을 이야기하며 백성에 대한 사랑으로 덕치를 실현하는 그의 모습은 아무리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나라사랑의 기본적인 가치로 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남을 것이다.

드라마 상에서 다소 과장된 면 있다 할지라도 정치의 기본적인 윤리를 보는 것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국민과의 소통을 위한 기본적인 진리를 우리가 보는 것이다. 나라와 백성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자신의 그 무엇보다도 이러한 공공의 가치에 모든 것을 거는 인사들은 잘못된 권력과 타협을 할 것도 아니고 그릇된 반국가세력들과는 목숨을 걸고라도 결연한 자세로 국가의 안위와 국민들의 행복추구권을 지켜내야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백성들의 아픔과 고통 앞에서는 한 없이 겸손해지도 백성들이 부여한 그 위임통치권한에 대해서 겸손함과 성실함으로 답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근대 민주주의 제도의 발전과 더불어서 국민들을 상대로 한 정치홍보와 이미지메이킹의 잡다한 기술들이 통치의 중요한 단면으로 등극하고 있지만, 바로 이 근본적인 국민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전제되지 않은 기계적이고 인위적인 정치행위(political behaviors)들이야 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敵)이 될 수 있는 위험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일개 개인이나 단체나 국가나 좋은 시절을 위한 인내와 아픔의 세월을 다 갖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본이 제대로 되고 그 기본을 일구어 가야하는 측근들의 자질(資質)과 양심이 이러한 기본을 해치지 않고 더 확장하고 키워내는 실력과 덕(德)을 갖춘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앞선 최고지도자의 덕목과 준비된 능력은 바로 이러한 측근들을 잘 관리하는 기본조건이기도 한 것이다. 종국에는 한 정권의 성공도 이러한 기본적인 덕목(德目)들이 어떻게 발휘되고 국민들한테 편안하게 전달될 수 있느냐에 따라서 그 정권의 성공여부가 후대의 사가들에 의해서 엄격하게 판단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08.9.1 박태우 博士의 푸른정치연구소, hanbatforu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