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重根과 이토(伊藤博文)

후지쓰카 아키나오씨는 소장하던 秋史 김정희의 유품을 한국에 기증한 직후 숨을 거둔 일본인이다. 2년 전 그를 만났을 때 거동이 불편한 아흔넷 이었는데, 그가 던진 이 말이 날이 갈수록 절실히 다가온다.

“일본인에겐 위대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평화가 찾아온 에도(江戶)시대 이후 일본인 들은 이순신 장군을 열심히 연구했어요. 도고는 이순신을 스승이라고 했습니다. 예전에 적이었던 사람을 스승으로 받든 것이지요. 일본이 높이 평가받을 부분입니다” ‘도고’는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 해군의 영운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를 말한다.

이순신과 도고의 일화는 과장된 소문으로 늘 회자되지만, 후치쓰카씨는 친분이 있던 재일 조선미술가 이영개씨에게 직접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말했다. 식민지시대 재력가였던 이씨가 일본 우익의巨頭 도야마 미쓰루(頭山滿)를 따라 도고를 방문했을 때 도고가 이씨에게“ 당신나라 이순신 장군이 나의 스승"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후지쓰카씨는 이 이야기를 1977년 모교인 경성공립학교(해방후 서울중학교)동창회보 ‘경희’에도 남겼다.

이 순신과 도고함대의 관계를 흥미 깊게 바라본 인물이 유명한 역사소설가 시바료타로(司馬遼太郞)였다.  그는 1971년 기행문 ‘街道를 간다’에 1905년 러일전쟁 당시 도고함대가 러시아 발탁함대와 싸우기 위해 출정하는 순간 병사들이 이순신에게 기도를 올렸다는 기록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썼다. ‘메이지(明治)시대 사관생도들이 300년 전 조선의 敵將에게 얼마나 경외심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그(러일전쟁)뒤에도 이순신 鎭魂祭를 지내는 전통이 남아있었다. (해군대장이 된) 야마야다닌 역시 그랬다. 한국이 잊어버린 이순신에게 일본인이 경외와 관심을 가져온게 아닌가 하는 한국인도 있다.

시바씨는 1987년 좌담집 ‘日韓 이해의 길’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일본 해군은 (러시아 발틱함대를) ‘정체모르는 거대한 것’ 유럽 그자체가 오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열중 여덟은 바다에 가라앉을 것이란 공포가 있었지요. 하지만 이기고 싶었습니다. 일본엔 바다의 名將이 없었지요. 그래서 일찍이 일본인을 적대한 이순신의 영혼을 향해 기도를 올렸습니다. 러일 전쟁의 일본승리는 약소국의 민족운동을 자극한 세계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 눈으로 보면 일본은 제국주의화, 한국은 식민지화로 내달린 이정표였다. 일본이 세계의 주목 속에서 강국의 길로 나아갈 때 한국은 조용히 사라졌다.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李藤博文)를 쏜 순간은 도고함대의 역사적 성과가 최고조에 달할 때였다. 안 義士가 고립무원의 한국을 상징했다면, 이토는 日就月將하던 당시의 일본을 상징했다. 강국을 위해서라면 敵將의 전법을 연구하는 것도 모자라 영혼을 향해 마음까지 받치는 치열한 일본이었다. 31일자 조선일보 칼럼 “김훈은 왜 소설 ‘안중근’을 못쓰나”에서 “이토의 생과 내면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다”는 김훈씨의 이야기를 읽고 후지쓰카씨가 말한 “일본인의위대한 측면”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공부가 부족하다”는 것은 겸손한 표현일 것이다. 당시 세계사를 솔직히 받아들이기에 아직 한국사회는 역부족이라는 표현이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도고함대가 적장을 향해 기도할 때처럼, 강국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自己否定에 이를 정도로 절박하지 않은 탓일지도 모른다.(조선일보)

그렇다. 당시세계사를 솔직히 받아들이기에 아직 한국사회는 力不足이라는 표현이 적합한 것이라는데 동의하면서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지난 일들을 여과 없이 되짚어보기로 하자. 한때 우리사회에는 배타적민족주의의 상징으로 한반도 깃발이 펄럭이기 시작했다. 그 무렵 대한민국 사람들은 법질서 아래서도 비록 올바른 일이며 거짓 없는 사실을 주장할 경우라 할지라도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자신의뜻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그런 사회였다.

지난날, 가수며 화가인 조영남씨가 ‘親日 선언’이라는 책을 쓰고 “나는 親日派다”라고 주장했다. 그 책 내용이야 어떻든 상관없이 그날로 조영남은 대한민국사회의 민족주의자들로부터 몰매를 맞고 인민재판대에 오르게 됐고 결과적으로 모든 방송활동을 접고 “사회적 물의를..”운운하며 사과하고 안티백만을 거느리고 이사회에서 退場당했었다.  "나는 左派다"하고 선언한 것 만큼 反민족적인가?

그는 민족주의자들이 타도대상으로 내거는 슬로건 중 [극우세력, 기득권세력, 친일세력, 독재세력] 중 한 가지 덫에 걸려든 것이었다. 노무현의 말을 인용하자면 “한국사회도 공산주의를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민주주국가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당시 사회적 분위기(포퓰리즘)를 주도하던 노무현은 스스로를 “좌파다, 좌파정권이다”당당히 주장했고 좌파들은 공산사회주의 이데올로기적 활동을 광범위하게 펼쳐 대한민국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하면서도 자신들은 理念이 아닌 민족주의, 독재에 항거한 민주화투쟁이라고 주장 했었다. 이념이란 말은 입 밖에도 내지 않았다. 逆으로 ‘색깔론’을 내세워 대한민국사람들을 욱박지르고 으름장을 놓고 있었다. 감히 어느 누구도 이념에 관하여 말할 수 없는 무서운 공포사회였다. 그 시절 자유인 조영남이 친일 발언을 한 것은 대단한 자유선언적 용기였다.

그의 자유로운 생각처럼,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독재체제라고 생각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이 極貧國의 처지를 극복하고 경제대국이 되었고 국민들의 살림살이와 씀씀이가 늘어나는 그야말로 ‘잘살아보세’의 성공실현시대였다. 대부분의 국민적 의지와는 처음부터 엇나가던 좌파들이 선동의 구호로 내세운 것이 평등평화주의였다. 자신들의 주위주장에 따라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세상을 살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자신의 好.不好를 솔직히 드러내 보였다는 것에 대하여 평등한 세상에서 과연 그렇게 무시무시한 응징을 가해야했는가?

대한민국사람들의 일본여행 숫자가 갈수록 증폭되고 있으며 지금은 제주도만큼이나 자주 드나드는 형편이 되고 보니 민족주의자들이 제아무리 송곳니에 날을 세워도 우리 젊은 세대들은  일본에 대하여 다분히 ‘友好的이다’ 라는 것에는 달리 막고 나설 방도가 없을 것이다. 일본을 자주 접하는 사람들이라면 하나같이 부러워하며 칭송하는 점이 그들의 선진적 도덕성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일본을 여행하면서, 혹은 비즈니스를 통해서 그들의 삶의 방식과 국민적의식의 선동이 아닌 진실을 보았기 때문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다. 진실이면 된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어미가 제 아들의 손가락을 절단하는 것이 애국인가. 일본의 우월함을 인정하고 그들의 장점을 손 빠르게 따라잡기 위한 善意의 경쟁을 하는 것이 애국인가. 일본은 역사상 그들의 敵이라 할지라도 존경의 대상으로, 배워야할 대상으로 산뜻하게 인정하고 外飾이 아닌 진정으로 崇拜한다는 것을 일본여행 중 가이드에게서도 들었다. 그렇다고 일본의 극우세력들이 들고 일어난다거나 매스컴에서 간접살인을 시키는 야비한 짓을 저지르지도 않는다. 진실 앞에서는 다만 경외심으로 國論이 통일되는 선진국의 위용을 보여주는 것이다.

선동적 색깔론, 逆메카시론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80년대에 대학을 장악한 공산주의 운동권 세력들은 대학 내에서 그들에 대한 비판목소리를 잠재우기위해 보수적 성향의 교수들에 대해서는 御用교수라는 딱지를 붙이고 위협을 가하곤 했다. 한창 공산주의 운동권 세력들이 극성일 때에는 보수적인 교수들의 연구실을 폐쇄한다든가 혹은 심지어 교수들의 무릎을 꿇리고 머리를 깎기까지 하는 린치를 가하기도 하였다. 1991년 盧泰愚대통령으로부터 국무총리로 지명 받은 육순의 鄭元植교수는 외국어대에서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나오다 공산주의자들로부터 계란과 밀가루세례를 받고 집단 조리돌림을 당하기까지 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한민국의 대학교수들은 진실을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보수 지식인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대표적인예가 지난 2001년 11월에 벌어졌던 소설가 李文烈에 대한 테러행위였다. 이문열이 당시 시민운동에 대해 [홍위병]같다는 비판을 하자 이른바 진보세력들은 즉각 조직적인 反이문열 운동에 돌입하여 온갖 욕설은 물론 [이문열 돕기]운동본부를 만들어 [책반납운동]을 전개하였다. 급기야는 수십여명이 이문열의 개인작업실이 있는 경기도 이천의 부악문원 앞에 몰려와 [이문열 책들의 장례식]을 거행하면서 만장깃발을 펄럭이며 弔詩와 弔文을 읊어댔다. 21세기 문명사상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1960년대 문화혁명기의 중국에서나 있었을 법한 이러한 문화적 테러행위는 보수우익 지식인들을 극도로 위축시켰다. 이문열의 사례를 보면서 많은 보수지식인들은 자신들이 허허벌판위에 서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문인이라는 이문열이 그 지경을 당하고 있었지만 그를 옹호하는 단 한사람의 시인도 소설가도 대한민국에는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 어느 누가 김정일과 노무현정권을 비판하는 일에 나설 수 있었겠는가?

이런 광기는 2005년 韓昇助 고려대 명예교수에 대한 집단테러에서도 그 위력을 드러냈다. 한 평생을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대학교수로 살아온 70대 老교수가 쓴 장문의 글 중 전후좌우를 모두 거두절미하고 일제의 식민지배가 다행이었다는 말 한 마디만을 따와서 그를 천하의 賣國奴인양 몰아붙이는 마녀사냥이 벌어졌고, 결국 명예하나만으로 살아온 노교수를 인격적으로 살해해버렸다. 그가 평소 대한민국의 정체성 수호를 주장하면서 김정일 추종세력들을 비판하지 않았어도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결국 대한민국 사람들은 진실을 보고도,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살아남기 위하여 입을 굳게 닫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체념하게 된 것이다. 아직도 우리들의 書店家엔 진실을 바탕으로 구성된 글보다는 억지적 거짓煽動의 글들이 베스트셀러자리를 점거하고 그 자리를 내어 놓지 않고 있다. 그 虛構의 세계를 耽溺하면 반드시 타도해야할 적이 생긴다. 그 敵들은 필히 正義와善으로 포장된 주인공들에 의해 파괴, 분쇄 타도된다. 순식간에 가상의 얼짱, 가상의 메시아가  인간의 평상심을 집어삼키게 된다. 인간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적을 향하여 적개심을 갖게 되고 드디어는 打倒에 나서는 군상들과 뜻을 같이 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 우리 젊은이들의 魂과 넋을 점령했던 ‘태백산맥, 조정래의 아리랑, 장길산’ 등등의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던 그 글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글을 철저히 소설일 뿐이라지만 독자들은 의분에 떨고 적개심을 현실에 적용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선동이며, ‘펜은 칼 보다 무섭다’의 위력이 아니겠는가.

“이토의 生과 內面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다”는 김훈씨가 그의 말대로 공부가 부족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진실을 말하고 죽지 부러진 영혼들을 참 많이 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진실을 말 할 때가 오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한민국 사람들은,‘우리도 한 번 大韓民國人들의 위대한 참 偉容을 드러내 보여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