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와 刺客

2005년 9월 열린 일본 중의원선거는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신념을 토대로 한 정당이라면 반드시 지켜내야 할 실용과 이념의 원칙 모델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당시 선거를 ‘우정민영화 선거’라고 부른다. 한국의 우정사업본부와 같은 우정공사의 민영화 방안을 일본 국회가 부결시키자 당시 고이즈미 총리가 “국민에게 묻겠다”며 국회를 해산한데 따른 선거였기 때문이다. ‘그깟 민영화 문제로 선거까지 치르냐’고 할 수 있지만, 민간자본 300조엔을 주무르는 공룡정부조직의 민영화는 ‘官에서 民으로’를 信念으로 한 保守改革의 理念的 상징이었다.

재미있는 선거였다. 먼저 고이즈미는 ‘造反組’라 불리던 33명,즉 우정민영화에 반대한 자민당 의원들을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여기에 머물지 않았다. 당을 박차고 나온 조반조들을 정치판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강력한 지명도를 가진 新進들을 이들 선거구에 집중 투입했다.

고이즈미는 이들을 ‘자객’이라고 불렀다. 암살자란 뜻이다. 훗날 여성 방위상까지 지낸 고이케 유리코, 당시 젊은 층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던 벤처기업가 호리에 다카후미도 자객으로 동원됐다. 초점이 ‘刺客선거구’에 집중되면서 선거는‘與與대결’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자민당 배신자들과 자객들의 한판대결이 선거판을 달군 것이다. 분위기가 뜨거워지면 공격하는 자가 승리하는 것이 선거의 법칙이다. 자객들의 시퍼런 칼날에 쓰러진 ‘조반조’는 21명. 아버지와 아들이 代를 이어 국회의원을 해먹은 일본의 정치계에서 일어난 일대 파란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여야 대결에도 이어져 연립여당(자민당과 공명당)이 의석 3분의 2를 거두는 大勝을 거뒀다.

당초 자민당 중진들은 필사적으로 고이즈미를 말렸다. 국회를 해산할 때는 “승산이 없다”는 이유, 거물들을 배제할 때는 “의석을 까먹을 수 있다”는 이유를 제시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실용주의]다. 고이즈미는 시대를 바꾸려다 혼노지(本能寺)에서 배신자에게 죽은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3)에 자신을 비유하면서 만류를 뿌리쳤다. 공개석상에서 “죽일테면 죽이라”며 대들었다. 자민당 중진들과 비슷했던 일본 언론의 예측도 빗나갔다. 개혁의 理念이야말로 民心을 사는 가장 강력한 실용주의라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 후임총리였던 아베다. 아베는 살아남은 ‘조반조’국회의원 중 11명을 “좋은게 좋은 것”이라는 논리로 자민당에 복당시켰다. ‘철새’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렇다고 실용에서 성공한 것도 아니다. ‘철새의 復黨’은 각료의 도덕성 문제와 함께 아베내각에 큰 타격을 입혔다. 아베가 주도한 2006년 참의원 선거는 2005년 선거와 정반대 결과를 가져왔다.

[이념도 실용도 모두 날린 것이다]

한국의 경우 4월 선거에서 자객을 보내야할 곳은 물론 한나라당이다. 그들이 주장해온 대로 좌파 정부가 한국의 10년을 망쳤다면, 그 10년을 만든 인물들을 퇴장시켜 시대를 정리하는 사명을 완결해야한다. 그런데 이런 정당이 지금 자객을 투입하기는커녕, 철새를 제 품에 불러들이는 황당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반대로 ‘공천혁명’을 이룬 민주당이 ‘철새지역구’에 집중적으로 자객을 투입한다면, 한나라당은 어떻게 그 부담을 감당할 것인가.

*理念은 정당의 기본이다.

선우정 (조선일보 도쿄특파원)

..............................................................................................................................

"이념은 낡은 것이다"
"잃어버린 10년은 아니다"라는 인간이 있다면 이글을 꼭 읽어보기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