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화의 공헌과 폐단을 공정하게 평가한 학자들 중에 포함되는 신유길 교수는 한국인들의 정치적 고질병을 분파주의(특수주의; 파벌주의; particularism)로 보았다. 지난 날 독재정권에 맞서서 민주화를 외치던 김영삼과 김대중도 이 파벌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김영삼과 김대중의 분파주의는 한국 민주화세력의 근원적 정치의식이 민주주의가 아니라 권력욕에 기반되었음을 만천하에 드러내었다. 오늘날 박근혜와 이명박이 한나라당에서 보여주는 주도권 싸움도 결국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들의 여망을 뒤로하고 자신들의 권력욕만 먼저 생각하는 분파주의적 갈등임에 틀림이 없다. 물론 인간의 자신과 자파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순진한 동심에서 벗어나 이익과 권리를 추구하는 사회생활을 하는 순간부터, 인간은 실존의 세계의 분파와 파벌을 초월한 보편주의(universalism)를 유지하기 어렵다. 하지만 인간은 특수한 파벌이나 세력으로부터 초월하는 정신을 가져야 좀더 보편적인 인류애를 달성할 수가 있다. 특정 세력이나 이념이나 이익에 갖힌 분파주의자들은 반드시 인류의 공존과 공영에 폐를 끼치게 마련이다. 물론 자신이 소속된 특정 단체나 세력을 중시하고 아껴야 하지만, 자기집단이나 자파세력을 초월하는 이상이나 기준을 무시하고 망각하는 순간에 인간은 파벌주의에 빠져서 전체 공동체를 해코지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인류사회에서 보편주의를 가장한 가장 혹독한 특수주의는 공산주의이다. 공산주의는 자본가에 대적하는 노동자 계급 안에서만 보편주의가 있다고 믿는 인류사에서 가장 악랄하고 위선적인 특수주의 이념이다. 특정 계급, 이념, 세력, 집단에 종속되어 편향적이고 배타적인 의식구조가 바로 특수주의이다. 북한의 공산세력이나 남한의 좌파세력은 부자계급 타도를 기초로 한 이념에 빠져서 매우 편향적이고 배타적인 특수주의를 보여주고 있다. 인류가 추구해야 할 공존과 공영에 대치하여 부자에게 적대적인 정치적 특수주의에 갖혀 있는 것이 바로 좌파세력의 정치의식이다. 그래서 좌파이념은 저절로 분열적이고 파괴적이고 해체적이다. 하지만, 전체 공동체를 무시하고 특정 계급에 편향적인 분파주의는 반드시 좌파세력에게만 적용되는 정치적 폐악이 아니다. 오늘날 한국정치판에서 소위 우파정당이라는 한나라당이 보여주는 정치행각에서도 분파주의 혹은 파벌주의가 그 파괴력을 맘껏 과시하고 있다. 한나라당이라는 전체 공동체보다는 자신의 권력욕이 더 크게 보이고, 국가보다는 한나라당이라는 특정 정당이 더 크게 보이는 대선주자들이 분파주의적 정치의식(particularistic political consciousness)을 가지고 대한민국을 해코지 하는 현상을 한나라당이 연출하고 있다. 오늘날 박근혜와 이명박이 자질검증과 경선룰을 놓고 죽기살기로 싸우는 것은 우파진영이 보여주는 분파주의의 전형적 사례이다. 물론 좌파 열린우리당에도 분파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여야 정당을 막론하고, 자신이 소속된 정당이 망해도, 자신을 키워준 조국이 망해도, 자신을 지켜보는 국민들이 걱정을 해도, 오직 자신의 권력욕을 추구하는 분파주의적 정치꾼들이 자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설치고 있다.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자신을 국회의원과 도지사로 공천해준 한나라랑을 박치고 나가서 좌파세력에 기웃거리는 손학규의 정치행보는 바로 '개인이 정당보다 더 크게 보이는 분파주의'의 전형적 사례이다. 그리고 새천년민주당을 갈라져 나간 열린우리당의 파벌주의적 행태에 이어, 오늘날 親盧세력이니 反盧세력이니 하면서 호남세력+좌파세력이 다시 열린우리당에서 갈라서는 것도 좌파세력이 보여주는 분파주의적 정치행각의 전형적 사례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가장 고질적 분파주의(particularism)의 사례는 역시 좌우 이념갈등만큼 영호남 지역주의(parochialism)이다. 영남과 호남으로 갈라진 지역주의는 대한민국의 가장 고질적 특수주의이다. 호남의 지역주의가 오죽 심했으면, 영남세력을 대표한 이회창 후보에 맞선 노무현 후보에게 95%의 지지 투표를 호남인들이 던졌겠는가? 그리고 이번에 또 열린우리당이 갈라져서 민주당과 대통합 놀음을 해도, 호남인들은 그것을 비판하지 못하고 다시 反한나라당을 형성하는가? 남한 땅에서 공산주의만큼 강력한 정치적 분파주의는 바로 영호남 지역주의이다. 남한 정치를 판가름하는 양대 분파주의는 좌우 이념주의와 영호남 지역주의이다. 한국인들이 지역적, 이념적, 세력적 특수주의에 빠지는 것은 바로 보편주의적 초월성이 없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에 이어 로버트 벨라가 서구에서 민주주의가 성공한 원인으로 기독교의 초월적 신개념을 지목한 것은 일리가 있다. 지역과 이념과 세력을 넘어서 초월적 가치기준이 없는 상태에서는 항상 정당보다는 개인이, 국가보다는 정당이, 민족보다는 체제가 더 크게 보이는 분파주의에 빠지기 마련이다. 성숙한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되려면, 개인보다는 정당이, 정당보다는 국가가, 국가보다는 인류가 더 크게 보이는 보편주의적 정치의식을 정치인들과 국민들이 가져야 한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미성숙한 한국에서는 아직도 민족보다는 체제가, 국가보다는 정당이, 정당보다는 개인이 더 크게 보이는 분파주의적 정치의식이 만연되어 있다. 오늘날 한나라당이 깨어지든지, 보수세력이 분열되든지, 국가가 망하든지 아랑곳하지 않고 박근혜가 몽니를 부리는 것은 성숙한 민주의식 내지는 보편주의적 정치의식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손학규가 한나라당을 박차고 나가서 정당없이 방황하는 정치행도도 다 공동체에 참여하는 개인의 책임과 의무를 망각한 비민주적이고 분파주의적인 행동이다. 토크빌이 150여년 전에 뉴잉글랜드 지방을 관찰하면서 이미 지적한 것처럼, 민주주의는 공동체에 대한 성숙한 참여의식과 책임정신을 가진 공동체주의와 전체 공동체에 개인의 주장과 권리가 함몰되지 않는 개인주의가 잘 조화될 때에 제대로 꽃피는 정치제도이다. 공동체를 망각한 방자한 개인들이 설치면, 오늘날 한국사회처럼 과잉민주주의가 만연되어 성숙한 민주주의는 꽃피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공동체에 개인이 완전히 압도하면, 오늘날 북한사회처럼 민중의 이름으로 전체주의가 만연되어 성숙한 민주주의는 싹도 트지 못하게 된다. 개인의 권리와 이익을 당당하게 주장하면서도 전체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질서있게 실현하는 구성원들이 가득할 때에 성숙한 민주주의가 가능한 것이다. 오늘날 박근혜와 이명박이 한나라당 내에서 주도권 다툼을 하면서 보여주는 정치행태는 정당과 국가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중시하는 보편주의적인 행동이 아니라, 정당이나 국가의 번성보다 개인의 권력욕을 더 중시하는 분파주의적 행동이다. 이는 옛날 김대중과 김영삼이 보여준 분파주의보다 더 악화된 분파주의이다. 노무현 좌파정권이나 열린우리당이 연출하는 분열과 해체의 드라마도 국가와 민족의 안위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더 중시하는 좌파 파벌주의자들에 의한 정치난장판이다. 군사정권이 겨우 유지시킨 한국사회의 질서와 권위가 민주화운동으로 붕괴되면서, 한국사회에서는 공동체의 안녕을 망각한 분파주의자들에 의해 눈뜨고 보기 힘든 방자와 깽판의 활극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화라는 명분을 착취하면서 개인의 권력욕을 충족시키던 사이비 민주투사들에 의해서 노무현 정권하의 과잉민주주의는 군사정권 때의 한국적 민주주의보다 더 미숙한 민주주의로 평가될 지도 모른다. 국가나 정당과 같은 소속 공동체의 발전과 번창에 무관심한 분파주의자들이 개인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무한경쟁을 벌이면서 한국사회는 분파주의자들의 전장터로 변하고 있다. 홉스식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은 개인주의의 발달을 촉진시키면서 자유 민주주의에 일정한 공헌을 했겠지만,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공동체를 망각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은 보편주의 정신에 기초한 성숙한 민주주의를 불가능케 하는 전형적인 분파주의 현상이다. 군사정권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제한되어서 민주화를 원한 것은 대체로 옳은 방향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민간정부가 들어선 이후에 공동체를 망각한 과잉민주주의가 한국사회에 만연하여 민주주의의 기초인 질서의식과 책임의식을 한국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군사정권이나 공산정권의 전체주의적 속성이 민주화에 방해가 된 것처럼, 민주화 이후에 나타나는 과잉민주주의는 개인주의적 속성이 성숙한 민주화에 방해가 된다. 오늘날 박근혜와 이명박이 한나라당이 깨어질 정도로 다투고, 열린우리당에서 친노와 반노가 여당이 깨어질 정도도 싸우는 것은 모두 공동체를 망각한 분파주의의 폐단들이다. 3김씨가 물러난 한국정치판에서 여전히 한국적 고질병은 전체 공동체를 무시하는 개인 정치꾼들의 분파주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