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문제를 풀기 위한 베이징(北京)2.13 합의 이후 미국의 대북(對北)정책이 급선회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 속에 ‘북한자유의 날’(23~28)행사가 워싱턴에서 열렸다. 많은 한인들과 북한인권단체들이 미국의 대북정책에 실망하고 북한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반영된 듯 이번 행사의 열기는 예전 같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미국의 대북정책에 불만이 컸던 탈북자 대표단과 미(美)행정부 관리들의 면담은 미국의 대북정책 방향을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주고 향후 북한문제 전망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번 2.13합의를 주도했던 국무부와 북한에 대한 냉정한 판단을 하고 있는 국방부의 온도차도 느낄 수 있었다.
국방부 고위관리들은 2.13 합의가 너무 북한에 유리하게 전개된 것이 아니냐는 탈북자들의 의견을 주의깊게 경청했고, 김정일 사후의 북한에 대해서 집중적인 질문을 했다.

국방부와는 달리 국무부는 이번 2.13 합의를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나섰다. 껍데기만 남은 영변원자로를 미끼로 실질적인 핵 보유를 하면서 미국을 속이는 전략에 속아넘어갔고, 북한의 급소를 찔렀던 금융제재를 섣불리 해제함으로서 향후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를 버린 것이 아니냐는 탈북자들의 의견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국무부 관계자는 “북한 핵 문제를 푸는데 있어서 영변원자로 폐쇄는 1단계에 불과하며 의심되는 기타 시설에 대해 모든 검증을 마쳐야 북한이 원하는 지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유엔제재와 중국의 협조로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카드는 얼마든지 있다고도 했다.
27일(현지시각)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들과의 면담을 통해 부시 대통령과 미 행정부의 입장을 보다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부시 대통령과 자주 만난다는 고위관계자는 “지금까지 북한문제에 집중하지 못했지만(이라크 때문에)이제는 많이 나아졌다”고 말한 뒤 “부시 대통령은 자유를 위해 싸우는 자유북한인들의 편이며 21세기는 모든 한국인들이 자유를 얻게 하는 것이 진정한 대북정책이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번 2.13 합의로 북한정권이 연장되는 것을 우려하는 탈북자들의 주장에 동감했고, 북한문제는 긴 안목과 장기적인 투쟁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부시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생각은 하나도 바뀐 것이 없다고도 했다. 행사 중 만난 미국 측 인사들은 이번 2.13 합의는 대외강경정책으로 일관했던 부시 행정부가 대내외적인 압력에 때문에 북한과의 타협을 시도한 측면이 있고, 부시 대통령 임기 내에 무엇인가 남기려는 욕심도 있었던 것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이번 행사를 통해 느낀 것은 2.13 합의가 결코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로 단정짓기는 이르다는 점이다. 대북문제를 놓고 미국 내에서도 치열한 논쟁이 진행 중이고 국무부가 주도하는 대북정책도 북한의 합의 이행에 따라서 급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전략은 이미 오래 전에 수립돼 있고, 방법도 정확했지만 대내외적 강경 이미지를 누그러뜨리고 정치적 입장 등을 고려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판단을 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모든 명분을 쥐고 앞으로 더 강력한 대북정책으로 돌변할 수도 있음을 예측 해볼 수도 있다. 현재 북한 지도부는 내부 선전을 통해 마치 미국이 김정일에게 항복했다는 식의 자축을 하고 있는데 미국 내 분위기를 정확히 파악한다면 오히려 더 긴장해야 할 것 같다.

파격적인 합의로 미국은 이미 대북정책에 있어서 강경일변도가 아님을 대내외에 알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일 정권이 신의를 지키지 않는다면 기존의 강한 압박을 고수해온 미국의 정책이 결국 옳았다는 것이 명확하게 입증된다. 때문에 김정일 정권은 미국과의 단순한 대결구도에서 벗어나 진정한 개혁개방을 통해 자신들의 생존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심각한 체제 붕괴에 직면 할 수도 있다는 심각한 위기 식을 느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