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미국과 북한이 주장해 온 관계정상화의 전제조건이 서로 판이(判異)하다는 점에 근거한다.

1. 우선 미국의 전제조건을 보자. 

미국은 「美北관계 정상화」를 위해 북한의 「비핵화」와 「人權개선」 등을 요구한다.

(1)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인 국가 중 하나이다...북한이 국제사회에 참여하고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려면 人權문제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美국무부 4월5일 발표 2006년 인권지원활동보고서)

(2) 『美北간에 완전한 관계정상화를 이루기 위해선 열악한 인권(人權)문제 등 북한이 현재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국제적 기준들을 달성해야 한다...미국은 핵무장을 한 북한과는 어떤 종류의 관계도 맺지 않을 것이다. 인도의 사례가 핵을 가진 북한에는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명백히 북한의 핵무기 폐기, 한반도 비핵화이다』(크리스토퍼 힐 美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3월26일 美조지타운大 강연)

(3) 『북한의 핵실험으로 상황이 변화했다는 인식 때문에 미국의 전술(tactics)은 부분적으로 분명히 변화했다. 그러나 전략은 변한 게 없다. (미국의) 목표는 여전히 한반도 비핵화이다』(미국의 북한문제 전문가인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선임연구원은 4월1일 발언)

이상의 언동은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포기한 채 「비확산」에 만족하지 않으며, 「비핵화」 나아가 「人權개선」이 관계정상화의 전제라는 것이다. 

(4) 2·13합의 직전 버시바우 주한 美대사의 발언을 보면 관계정상화는 「비핵화」와 「人權개선」 뿐 아니라 북한이 「불량국가」에서 「정상(正常)국가」가 돼야 가능하고 언급했다. 

『美北관계 정상화라는 것은 핵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1년 전이나 지금이나 미국의 우선순위는 비핵화이다』『(향후 비핵화가 이뤄지면) 北美관계 정상화를 논의하는 틀 내에서 위폐(僞幣)문제나 不法활동 등 연관문제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다』(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美대사 「말」지 2월호 인터뷰)

『미국은 북한이 不法행위를 멈추고 국제법(國際法)을 지키는 과정에서 한 걸음 나아가 美北관계 정상화를 포함해 국제사회와의 관계정상화 등 결과를 금융 회담과 6자회담 모두를 통해 최대한 빨리 얻길 원한다』(버시바우 대사 1월30일 아태정책연구원 주최 특별초청강연)

2. 이제 북한의 전제조건을 보자.

(1) 우선 북한은 소위 北美관계정상화를 요구하면서도 「비핵화」 의지가 없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3월5일 뉴욕에서 힐 차관보를 만나 『우리(북한)를 인도처럼 대우해 달라』며, 2005년 9·19합의, 올해 2·13합의 내용을 무시한 채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에서 수교하는 방안을 미국에 타진했었다. 

김계관 발언이 아니라도,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 믿는 자는 바보 아니면 親北세력이다. 김정일은 핵무기가 없으면 미국에게 공갈칠 수도 없고, 남한에 협박할 수도 없으며, 내부에서 통치할 수도 없다.

(2) 북한이 주장하는 美北관계정상화는 「미군철수」라는 對南전략의 일환으로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미국 주장과 근본적 차이를 보인다.

2·13합의 이후에도 북한은 「北美관계정상화 조짐으로 주한미군철수의 길이 열렸다」는 식의  선동을 선전매체와 親北단체를 통해 지속해왔다.

1) 3월5일 뉴욕 「北美관계정상화실무그룹」 회의와 관련, 『北美 서로가 적대적 관계 청산을 위한 역사적인 첫걸음을 시작함으로써 관계정상화의 최종목표인 수교(修交) 실현을 뒷받침하고 있다...냉전체제를 해체시켜 항구적인 평화를 실현하고 나아가 주한미군철수의 길을 활짝 열어놓았다』(先軍정치를 옹호해 온 한국민권연구소(소장 김승교 변호사)의 류옥진 연구원 3월13일 정세분석)

2)『북한의 核물리력에 굴복한 미국은 어쩔 수없이 北美관계정상화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北美관계정상화를 위한 논의가 시작되면 평화협정체결과 주한미군철수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를 것이다...우리는 주한미군철수가 6자회담 진행에 따라 밟게 될 수순이라 해도 결코 마음을 놓을 수 없다...한미동맹 구축을 파탄내야 하며 주한미군철수투쟁에 힘을 모아야 한다』(同연구소 양정은 연구원 2월22일 정세분석)

3)『北美관계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흐름은 필연적으로 주한미군의 존재를 건드릴 수밖에 없다...우리는 주한미군 주둔의 명분이 제로에 가까워진 유리한 환경을 놓치지 말고, 주한미군철수 구호를 全사회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주한미군이야 말로 분단과 예속의 원흉이다. 자주와 통일로 가기 위한 근본문제의 해결은 바로 주한미군철수에 있다』(김정일을 『구국의 영웅』 등으로 추종해 온 利敵團體 범청학련 3월20일 성명)

4) 『제반 사실은 미국의 한미연합사 해체나 전시작전권 이양합의란 한낱 허울에 지나지 않으며 그들의 지배주의적 야망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음을 명백히 실증해주고 있다...각계 민중은 미국의 교활한 속셈을 똑바로 보고 反美자주화투쟁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지펴 올려 美帝침략군을 완전히 철수시켜야 할 것』(북한의 對南매체 반제민전 3월2일 주장) 

5)『이 땅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강점과 지배가 지속되고 예속적이고 굴욕적인 한미관계가 존재하는 한 우리 청장년들은 미국의 식민지용병의 수치스러운 처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각계 민중은 치욕스러운 「한미관계」를 청산하며 당국의 對美굴종행위를 반대하는 투쟁을 더욱 힘차게 벌여 나가야 할 것이다』(반제민전 3월7일 주장)

3. 美北 관계정상화는 양방의 합의이자 계약인데 전제조건이 상이(相異)하다. 이것은 미국과 북한 어느 한쪽이 양보해야 실제 수교가 이뤄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하고 인권개선 나아가 위폐제조 등 불법행위를 중단하거나,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한미동맹을 폐기한 뒤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할 것인가?

(1)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위폐·마약제조, 생물무기·화학무기, 미사일을 폐기하며, 적화야욕을 버린 후 개혁과 개방으로 나가는 正常국가화는 지난 60년간 세계가 바래왔던 북한의 미래였다. 그러나 金正日 정권에게 이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환상(幻想)임이 확인된 상황이다.

(2) 미국의 양보 역시 불가능하다. 주한미군 철수는 남한의 포기임에 앞서, 동북아에서 중국의 패권에 굴복하는 것이다. 미국은 日本오키나와로 철군한 뒤 중국의 영향력 아래 들어간 남북한과 힘겨운 줄다리기를 벌여야 한다. 남한을 포기한 대가로 잃게 되는 손실은 상상이상이다. 당장 무기판매가 어려워 질 것이다.

(3) 조금씩 양보하는 야합도 있을 순 있다. 미국은 비핵화를 요구하지 않고, 북한은 미군철수를 포기한 채 수교하는 것이다. 이 모델은 근본적 모순이 있다. 북한이 수교를 바라는 것은 소위 對北적대정책을 폐기시켜, 평화체제를 맺어, 체제안전을 확보한 뒤, 서방세계의 금융지원을 얻기 위함이다. 북한의 체제안전을 위해선 △한미동맹 시스템 하의 주한미군이 해체되거나, △2000년 6·15당시 김정일 주장처럼 주한미군이 “평화유지군” 형태로 변질돼야 가능하다. 주한미군이 후자로 변질되면 주둔목적이 상실된다. 결국 북한이 美北수교를 통해 바라는 핵심은 미군철수이다. 

미군철수는 미국과 북한의 사활적(死活的) 국익이다. 비핵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인권이나 북한의 정상국가화도 낭중지침이다. 결코 사라지지 않을 의제들이다. 김정일을 추종하는 좌익들은 美北수교-미군철수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미국입장에선 핵을 그대로 둔 채 미군만 떠나는 형태를 선택할 실익이 현재로선 없다.

물론 이런 가정도 2007년 대선 이전에 유효하다. 대선에서 좌익이 승리하고 연방제가 성립한다면 모든 가정이 근본적으로 뒤틀릴 것이다. 미국은 원치 않아도 한반도를 떠나야 할 것이다. 핵문제 해결은 폭력이 동원되고, 남북은 전화(戰禍)에 휩싸일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결국 美北수교 여부, 전쟁의 촉발 여부는 2007년 12월19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