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요즘 그 손님이랑 자주 만난다며?" 아직 점심도 전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울린 전화는 내 담당이었던 고객의 사망소식을 전했고, 허겁지겁 출근을 서둘러 시신을 인계받고 예정되었던 장례절차를 밟았다. 오늘의 주인공인 할아버지는 주무시는 중에 돌아가셔서, 가족들이 아침에서야 알았다고 한다. 그 정도면 호상(好喪)이다. 염습(殮襲)하는 과정에서 나를 호출한 티모시는 시신 처리실의 문을 열어주며 대뜸 물었다. "무슨 소리야?" "그 있잖아, 왜. 다이영(die young)"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렸다. 불쾌한 기색을 눈치 챘는지, 티모시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를 따라 들어간 시신 처리실 안에는 상품처럼 비닐포장이 되어있는 시신이 누워있었다. 시신에 투여된 방부제 냄새에 코 안쪽과 목구멍이 껄끄러워진다. 익숙한 광경인데도 갑자기 불편한 기분이 되어, 나는 시신 쪽을 보지 않으려고 애쓰며 티모시가 부탁한 것들을 건넸다. 유족들이 준비한 생전 사진과 옷가지들이었다. "할아버지 얼굴 좋으시네. 편안히 가셨나봐." 목소리를 낮추며 티모시가 말했다. 퓨너럴 디렉터(funeral director)인 그는 사진을 놓고 핏기 없이 마른 시신의 얼굴에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관 뚜껑을 열고 영결식을 하는 이곳에서는 꼭 필요한 작업이었다. 유족들이 영결식에 입혀달라며 가져온 옷이 한복이었기 때문에 나는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여자한복 보다도 더 까다로운 남자한복을 입히는 것은 내가 도와줘야 할 터였다. 나는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제대로 알게 된 대님 매는법을 생각하는 데에 애써 정신을 집중했다. 벽 쪽을 바라보고 서있는 나에게 티모시가 말했다. "내가 가끔 꾸는 악몽이 뭔지 알아?" 그는 선생님 몰래 잡담하는 학생들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지의 깊은 잠을 깨우기라도 할까봐 그러는 듯. 나와 같은 연배인데다 동양계인 티모시는, 자주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였다. "아침에 출근해서 여길 들어왔는데. 내가 아는 사람이 누워있는 거야. 누군지는 매번 달라. 싫은 기분인건 똑같지만." 차갑고 건조한 공기속의 방부제 냄새는 어딘가 병원의 냄새와도 닮아있었다. 나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종이봉투 속의 한복을 크게 부스럭거리면서 꺼냈다. 그래도 티모시의 작은 한숨소리까지 들려왔다. "너한테 묘지를 산 손님이야. 언젠가는 여기서 만나게 된다고." "알고 있어."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손에 들린 상아색의 한복을 내려다보았다. 레슬리의 색 고운 옷가지들이 떠올라 손이 무거워졌다. 아침에 티모시가 한 말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레슬리가 나를 찾아왔다. 두리번거릴 것도 없이 산책로를 걷고 있는 그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스하키 팀인 New Jersey DEVILS의 로고가 들어간 모자를 눌러쓴 얼굴이, 나이보다도 훨씬 어려 보였다. 그는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나는 어쩐지 무거워진 것 같은 발걸음으로 다가갔다. "왔어?" "지금 바빠요?" 나는 고개를 저었고, 그는 다행이다 라며 웃었다. 우리는 잠시 동안 말없이 길을 걸었다. 오늘따라 조용한 그가 마음에 걸렸지만 나도 쉽게 말문이 열리지 않는다. 한가하고 느긋한 걸음을 걷는 그의 흰 캔버스화를 내려다보다가 물었다. "여기가 좋아?" 레슬리는 걸음을 멈추고 무슨 말이냐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날도 좋은데, 늘 여기만 오는 것 같아서. 다른데 가보고 싶은 곳 없어?" "왜요. 나 귀찮아요?" 그런 게 아닌데. 내가 난감한 표정을 하자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면 많지 않을까. 가보고 싶은 곳이나 만나고 싶은 사람, 그리고 못해봐서 아쉬운 일들. 단지 나이를 먹어갈 뿐인 나도 그런 것들이 체념처럼 조용히 들어차는 것을 느끼는데. 아무런 미련도 아쉬움도 없는 것만 같은 그의 모습이, 나에게는 오히려 아릿하게 남는다. "가고 싶은데 있으면 말 해. 내가 데려가 줄게." "아저씨." "왜...?" "나 불쌍해하지 말아요." 불쌍하다는 게 아니야. 이런 기분은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지. 그러나 나조차도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마음을 말로 표현하기란 불가능했다. 나는 그저 손을 뻗어 그의 빈손을 잡고 멈추었던 걸음을 다시 걸었다. 전해지는 온기로 조금이나마 말 하지 못한 진심이 느껴지길 바라며. "나 별로 아쉬운 것도 없고, 미련 남는 것도 없어요. 지금은, 이렇게 얘기하는 시간이 내가 내보는 유일한 욕심 이예요." 나즈막한 그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나는 깨달았다. 어쩌면 불쌍한 것은 오히려 내 쪽일 런지도 모른다는 것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내 어머니가 그랬듯, 슬픔이란 언제나 남겨지는 사람의 몫이었으므로. 산책로를 따라 한참을 걷다가 그가 다시 걸음을 멈췄다. 그의 시선 끝에는 묘지를 찾은 이들의 모습이 있었다. 묘비 앞에 내려놓은 꽃들. 강렬한 원색의 꽃잎들이 흰 묘비와 대비되어 더욱 선명했다. 그 광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레슬리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그곳에 눈길을 준채로 입을 열었다. "한국에선, 제사라는 거 지내죠?" "응." "한 번, 본 적 있어요. 예전에 잠깐 동안 한국에 살았었거든요."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의 말은 그리운 듯한 음색을 띄고 있었다. 우리 집은 오랫동안 매년 제사를 지냈다. 제사가 있는 그 날 하루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날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꼬맹이 때부터 동네 교회의 주일학교에 나가기 시작한 동생을 따라 교회에 다니시는 어머니였지만, 한 해도 제사를 거른 적은 없었다. 나의 미국행이 결정된 이후, 어머니는 아버지 제사에 술은 누가 올리느냐고 아쉬움을 대신 말하셨다. "멋진 거 같다. 일년에 하루쯤은 죽은 사람을 기억해 준다는 게. 그렇지 않아요?" 나는 한번도 그 일이 멋지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연년생의 형제를 남겨두고 너무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는, 동생은 물론이고 내게도 큰 상실감이나 빈 자리를 느끼게 할 만한 시간도 가지지 못했다. 아버지의 제사일은 그저 연례행사처럼 지나왔을 뿐이다. 어릴 적에는 제사가 끝나고 나서 제사상에 올렸던 술을 드시며 소리 내지 않는 울음을 우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봐야했기 때문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 날이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그의 말에 처음으로 그 날들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이 들었다. "일년이나 지난 뒤에, 누가 날 위해서 슬퍼해주겠어요." 가슴이 먹먹했다. 조금 잠긴 듯한 목소리에, 그의 눈을 가린 모자챙을 들어보았다. 그림자 안에서 드러나며 나를 보는 눈은 울고 있지는 않았다. 나는 그를 마주 안아주며 내게 기대도록 했다. 울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해줘야 할 것 같은 눈이었다. "내가 할께. 내가 그렇게 할께." "아저씨는 왜 자꾸 내가 욕심 부리게 만들어요." 내게 얼굴을 묻은 채로. 혼잣말처럼 하는 그의 말은 공기 중으로 흩어지지 않고 내 심장 부근에 바로 닿았다. 티모시가 꾸는 악몽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나도 알게 될 것 같은 생각에 숨길 수 없이 몸이 떨려온다. 내가 떨고 있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나는 내 어머니가 어린 나를 달랠 때 그랬던 것처럼 그의 등을 토닥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