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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29일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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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0년 차이] 북한 주민들이 딱 한번 허리 펴는 계절
박소연 기자(서울) 

“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안녕하세요. 해연 씨를 여름에 봤는데 이렇게 가을에 다시 만나네요.

이해연 :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아요. 벌써 단풍도 예쁘게 들었습니다.

박소연 : 맞아요. 북한은 요즘 실로 뜬 스웨터나 동복을 입고 다니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이해연 : 남한과 북한은 날씨 차이가 꽤 납니다. 지금 북한은 거의 가을 막바지라 단풍도 예쁘게 들었을 텐데... 남한은 지금 시작이네요.

 

박소연 : 그래도 지금이 북한 주민들이 허리를 펴고 쉴 수 있는 유일한 계절입니다. 식량 가을도 끝나가고 특히 양강도, 함경남북도 같은 지역은 10월 10일이 지나면 김장을 시작해요. 그래서 북한 주민들한테는 지금이 조금 여유 있는 시기인 것 같아요.

 

이해연 : 가을엔 추석이 끼어 있잖아요. 북한에서 추석은 반은 슬프면서도 반은 즐거운 날입니다. 산에 가서 성묘하면서 제를 지낼 때만큼은 돌아가신 분들이 보고 싶고 그러잖아요. 그럴 때는 좀 슬프기도 하지만, 성묘하고 나서 묘 옆에서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즐겁게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선배님은 이번 추석에 잘 지내셨나요?

 

박소연 : 오, 이제 해연 씨가 저에게 질문을 다 하고… (웃음) 바쁘게 보냈어요. 남한에는 추석에 실향민들과 탈북민들을 위해 경기도 파주에서 합동 차례 행사를 해요. 파주 임진각에는 북한이 보이는 곳에 제사를 지낼 수 있는 단이 마련돼 있고, 거기에다 음식을 차리고 해마다 망향제를 지내고 있어요. 이곳에 북한이 고향이라 갈 수 없는 실향민들과 탈북민들이 함께 모여서 차례를 지내는데 이번에 취재차 다녀왔습니다.

 

이해연 : 망향제가 뭐에요?

 

박소연 : 말 그대로 고향을 그리는 행사입니다. 추석과 같은 명절 때, 고향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타향에서 지내는 제사를 의미하는 말인데요. 해마다 남북하나재단 홈페이지에 행사와 관련된 공지를 합니다. 행사에는 탈북민들, 탈북민 출신 자원봉사자, 실향민 심지어 외국인도 와서 구경했어요. 탈북민들은 전국에서 올라왔어요. 부산에서도 오고 심지어 제주도에서도 옵니다. 행사장 주변에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계셨어요. 어떻게 여기까지 오시게 됐어요?라고 물어봤더니 실향민이라고 하셨어요. 할아버지는 함경도, 할머니는 흥남이 고향이시라는데 6.25전쟁 때 고향을 떠났다며 눈물을 글썽이시더라고요. 매년 오신대요… 우리는 이제 나이들었지만 탈북민들은 제발 살아서 고향에 가서 가족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시는데 눈물이 울컥했습니다. 원래 망향제는 6.25 실향민들을 위해 하는 것이지만 지금은 새로운 실향민인 탈북민들을 위한 행사이기도 해요.

 

이해연 : 남한에 처음 왔을 때 하나센터 선생님들이 파주 망향제 얘기를 해주셨는데 지금까지 잊고 못 가봤네요. 나중에 꼭 한번 가보겠습니다.

 

박소연 : 파주 임진각에서는 망향제 행사뿐 아니라, 생태공원도 있어서 볼거리가 많고 다양한 문화 예술 행사나 축제들이 열려요. 추석에는 임진각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온 나라 사람들이 다 온 것처럼 느껴졌어요. 잔디밭에서 사람들이 분홍색, 노란색, 빨간색, 하얀색의 다양한 모양의 연들을 날리고 있고… 처음 망향제를 볼 때 우울했던 기분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망향제가 끝난 뒤에 탈북민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공원 주변을 청소하기도 했고요. 너무 제 얘기가 길었네요, 해연 씨는 올해 추석을 어떻게 보냈어요?

 

이해연 : 올해 추석 연휴가 정말 길었잖아요. 임시 휴무일까지 합해 6일이나 쉬어서 긴 연휴를 잘 다녔습니다. 경기도 가평 쪽에 정말 볼만한 곳이 많더라고요. 수목원도 있고, 파주 퍼스트 가든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가는 곳인데 예쁘더라고요. 이번 연휴 동안 가고 싶었던 곳들을 하나씩 지워가면서 다녔습니다.

 

박소연 : 전번 방송에서 차를 뽑았다는 등 엄청 자랑을 많이 하셨는데…

 

이해연: 제가 직접 운전하고 갔죠. (웃음) 얼마나 설렜는지 몰라요. 차가 있으니까 가고 싶었던 곳을 하나하나 다니는데…이번에 두 개나 지웠습니다.

 

박소연 : 잘했어요! 솔직히 추석 전에 해연 씨 걱정을 했어요. 혼자여서 외롭게 보내면 어쩌나 하고요. 듣고 보니 괜한 걱정을 했네요. (웃음) 아무튼 외롭지 않게 보냈다니 좋네요.

 

이해연 : 사람은 다 외로운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외로움을 어떻게 채워가는 지는 본인의 노력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외로움이 더 밀려오고 잡생각도 많아져요. 그래서 저는 외롭다고 생각될 때는 무작정 어디론가 갑니다. 외로울 시간을 없애 버리는 거죠.

 

박소연 : 솔직히 방송에서 제가 10년 차이 나는 선배라고 하는데 해연 씨를 선배 자리에 올려놓아야 하지 않나… (웃음) 남한은 보통 추석을 3일 쉽니다. 추석 당일을 전후로, 전날에는 준비한다고 하루, 다음 날에는 고향에서 귀가를 하는 날까지 계산해서 3일을 쉬곤 했는데 올해는 유난히 길었네요, 추석 연휴가 6일이었습니다. 추석 전 남한 대통령이 TV 뉴스에 나와 추석과 개천절 사이 중간 요일을 휴일로 정해서 추석 연휴를 길게 했다고 하는데 놀랐습니다. 대통령이 국민들의 휴식까지 직접 나서서 얘기한다는 사실이 남한 정착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어요.

 

이해연 : 국민들이 그러면 좋아하니까 직접 말한 것 아닐까요? (웃음)

 

박소연 : 그렇죠. 대통령도 자기 생색을 내는 건데…(웃음) 그래도 여하튼 사람들은 쉬는 걸 좋아하니까… 긴 추석 연휴가 여러모로 좋았습니다.

 

이해연 : 작년에는 특별히 기억할 만한 것도 없이 이모님 집에 가서 얼굴 한번 뵙고, 밥 같이 먹고 올라온 기억밖에 없네요.

 

박소연 : 1년 사이에 해연 씨의 변화가 보이네요. 작년 추석은 하얀 백지에 달랑 두 줄을 썼다면, 올해는 적어도 다섯 줄 정도는 쓴 것 같아요. 차도 생겨서 좋은 곳을 많이 다녀왔으니 내년에는 16절지를 다 채울 것 같은데요.

 

이해연 : 이번 추석이 길기도 했지만, 주로 당일치기로만 다녀왔어요. 내년쯤에는 2~3일 정도 날짜를 잡고 가보려고요. 그런데 선배님남한의 추석은 좀 이상하지 않나요? 추석에는 성묘하고 차례를 지내고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고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남한 사람들은 그러지 않더라고요. 추석에 여행 갈 곳을 검색하는 분들이 많아요. 유튜브나 네이버를 검색하면 추석 때 갈 여행지 추천이 나오고요. 추석은 당연히 조상의 묘를 성묘하고 차례를 지내야 하는데 여행 갈 생각을 하다니 저에게는 신기하기만 합니다. 북한에서는 상상도 못 하잖아요. 만일 그랬다간 무례하다거나 못돼 먹은 인간이라고 비난받기 딱 좋죠.

 

박소연 : 저도 좀 이해가 안 됐어요. 정착 4~5년이 될 때까지도 욕을 했어요. (웃음) 그렇지만 생각해 보면 자기 마음이죠. 어디든, 어떤 방식이든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면 될 것 같고요.

 

이해연 : 그리고 또 이상한 게 북한에는 산마다 여기저기 공동묘지가 많잖아요. 그런데 남한에서는 거의 못 봤네요. 묘지는 어딨어요?

 

박소연 : 저도 아직 못 봤어요.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가끔 길옆에 수령님 묘지처럼 멋지고 화려하게 꾸며놓은 묘를 본 적은 있어요. 저 묘지는 아마 돈 많은 지주의 묘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공동묘지가 있긴 하지만 도로 안쪽으로 들어간 곳에 마련한 곳이 많고요…

 

 

“삶의 만족이 따르는 곳에는 죽음의 의무가 따른다”, 30년 전 북한 책방에서 읽었던 책 속에 한 구절입니다. 그때는 만족한 삶을 살다 죽으면 원이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남한에서 삶의 만족을 느끼며 살고 있지만, 가끔은 내가 죽으면 묻힐 곳이 있을까? 라는 걱정을 했습니다. 고향을 떠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고민일 텐데요. 다행히 이번 추석 행사를 다녀오면서 지금까지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사연은 다음 시간에 이어갈게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녹음총괄제작에디터 : 이현주 웹팀 이경하

 

 

 

 

등록일 : 2023-10-1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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