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해온 지 만 4년이 되는 한 탈북 노인을 우연히 전철에서 만났다. 몇 년 전 탈북민들의 송년회 모임에서 북한에 있는 사위의 이야기로 화제가 되었던 노인이었다. 반가웠다. 우리 탈북민들은 만나면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안부부터 먼저 묻는다. 탈북 길에서 모두 상상할 수 없는 고생을 하면서 왔지만, 그 고생은 이미 물 건너갔으니 우리들이 살아가는 얘기는 이야깃거리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에 대한 생각은 옹이처럼 가슴에 박혀 떠나지 않는다.
 
나는 북한에 있는 할머니의 사위소식이 궁금했다. 사위인 김 모 씨는 북한의 평양 가까이에 있는 곳에서 산다. 할머니는 딸과 손자까지 셋이서 먼저 탈북했다. 사위는 가족들이 무사히 탈북하는 것을 지켜본 다음, 후에 오기로 했다. 한국에 무사히 도착한 할머니는 브로커를 통해 소식을 알리고 사위를 데려올 작전을 펼쳤다. 3년 전, 그렇게 사위의 탈북이 시작되었다. 국경이라면 탈북하기가 쉽지만, 멀리 북한 안쪽에서 탈북자 가족이 국경까지 오는 길은 더 위험하다. 이미 보위부에 꼬리표가 붙어있고 감시가 여러 형태로 얽히어있기 때문이다.

북한에 있을 때, 탈북자 가족인 나에 대한 감시는 이중삼중이 아니라 삼중사중이었다. 옆집과 옆집의 감시, 매일 드나드는 인민반장의 감시, 직장에서의 감시, 매일 집으로 찾아와서 사람이 있는가를 체크하는 담당보위원의 감시, 친구 사이의 감시, 친척 사이의 감시…. 거기에다 정작 떠난다고 해도 전기가 없어 열차가 중도에서 서는 일이 많아서 국경까지 들어오자면 최소 일주일은 걸린다, 그 속을 뚫고 국경까지 온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죽음을 각오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사위는 보위부의 장기적인 감시를 뚫고 국경까지 오는 데 성공했다. 브로커들의 도움으로 국경을 넘으려는 순간, 양쪽에서 달려드는 국경경비대와 보위원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알고 보니 시시각각 감시하고 있던 보위부가 집을 떠날 때부터 뒤따랐던 것이다. 보위부는 사위뿐 아니라 연결된 브로커들까지 다 잡아내려고 작전을 펼치고 추격해왔던 것이다. 사위는 비참하게도 혜산에 있는 도 보위부에 끌려가고 말았다. 탈북인가, 한국행인가는 엄연하게 차별되어 처리된다. 일반 탈북일 경우에는 그냥 감옥에 가지만, 한국행 탈북에 걸리면 곧바로 정치범 수용소행이다. 이미 브로커들의 입으로 한국행 탈북이 드러났다. 정치범 수용소행이면 죽음이나 같다. 결국 비극적인 탈북이 되고 말았다.

그때 다행히도 브로커에게서 연락이 왔다. 돈을 보내주면 사위를 살릴 수 있다는 소식이었다. 북한 보위부는 브로커를 통해 한국 돈으로 1500만원을 요구해왔다. 탈북민들이 한국까지 오는 데 드는 비용과 맞먹는 돈이었다. 할머니와 딸은 임대주택을 담보로 받은 돈 1000만 원과 거기에 아꼈던 돈 500만원을 더 보태서 북한 보위부에 찔러주고 한 달 만에 사위를 죽음에서 구출해내는 데 성공했다. 다행이었다. 그때 할머니와 딸, 손녀는 밤잠을 못자고 마음고생을 했다고 한다.

“올해도 사위가 왔다가 그냥 돌아가고 말았어.” 할머니의 이야기는 이렇게 다시 시작되었다. 이 말은 사위가 탈북하려고 국경까지 왔다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갔다는 소리였다. 보위부에 잡혔다가 돌아간 후에도 탈북의 꿈을 버리지 않고 벌써 두 번째로 국경으로 왔다가 돌아갔다고 한다.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고 국경탈출은 전과 같지 않다. 거미줄을 얽어매듯이 감시가 심하고 일단 중국에 넘어갔어도 잡히는 사람들이 많아서 브로커들도 쉽게 결심을 못한다고 한다. 한 사람이 잡히면 두세 명의 브로커들이 함께 잡힌다. 그러면 한 사람을 살리자고 했다가 몇 사람이 목숨을 잃는 셈이다. 그래도 행여 탈북할 기회가 주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올해도 국경으로 왔다가 탈출이 쉽지 않아 도로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탈북할 연줄과 기회가 없어서 못하는 북한사람들이다. 북한에 있을 때 나의 한 친구는 달러도 많이 가지고 있었고 이미 한국드라마와 한국방송을 많이 본 상태였다. 나에게 혹시 탈북하게 되면 함께 갈 수 없냐고 제발 자기도 좀 데려가 달라고 간절하게 매달리던 생각이 난다.

해마다 국경행을 하는 할머니의 사위, 열 번을 왔다가 돌아갈지언정 그는 한국행을 하겠다는 욕망을 버리지 않는다. 이것은 이 노인에게만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 모든 탈북민들, 그리고 북한에 있는 가족들, 전체 북한 인민이 겪는 비극이며 아픔이다. 한시바삐 통일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