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각오하고 살얼음 낀 압록강을 건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나의 고향은 양강도 혜산이다. 

형제는 6형제인데 위에 오빠 두 분dl 계시고 여동생 네 명, 바로 밑에 동생은 산후탈로 26살에 먼저 갔으며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그나마 안전부에서 안전원 생활을 하신 아버지 덕분에 굶지는 않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친척들이 중국에 있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출세의 길이 막혔고 그 일로 친 켠 식구들은 어머니와 헤어지라고 하였다. 몰래 우시는 어머님을 보면서 많은 의문이 생겼던 적이 있다. 

결국 아버지는 안전부에서 나와 어느 상사의 자재지도원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짜증을 많이 내시 군 하셨다. 아버지 형제 중 막내 고모부는 보위부장까지 하고 있었고 다른 친척들도 한자리 하는 분이 많았다. 

어머니 때문에 출세의 길이 막혀버린 아버지는 자식한테도 아내한테도 도저히 관심이 없었고 오직 당에서 하라는 대로만 하라고 우리를 교양하곤 하였다. 지금도 졸업할 때 일이 잊혀 지지 않는다. 

의학대학을 가고 싶은데 우리학교에는 의학대학에 한명만 갈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학급에 도행정위원회 부위원장 딸과 보위부장 딸이 있었으니, 내 차례가 올리 만무했지만 한가닥 희망을 갔고 아버지한테 부탁했었다. 

중앙당에 있는 사촌 언니 남편한테 좀 부탁해 달라고 하니 아버지는 가차 없이 거절하였다. 당에서 다 알아서 하는 것인데, 누구한테 부탁하고 말고가 있냐고 하셨고, 결국 나는 2지망이었던 교원대학도 못 가고 말았다. 그리고 졸업후 집단 진출이라는 명목하에 건설현장에 배치되었다. 

몇칠동안 고민에 빠져 직장에 출근 않았고, 노동지도원이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당의 방침인데...그래도 출근하지 않으면 노동교화소에 보낼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울며 겨자 먹기로 다음날부터 출근한 것이 2년 동안을 그곳에서 일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끔찍하다. 배치 된지 얼마 후 당에서 ‘120일 전투’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철없던 우리반 친구들은 일을 잘하면 현지 입당도 시켜준다는 말에 하루 한두 시간씩 자면서 현장에서 밤새 일하곤 했다. 

하루는 인공 블로크 60kg을 메고 압록강연선 뚝을 오르던 금선이란 애가 블로크와 함께 강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때 그 아이의 키는 145㎝정도였고 몸무게는 40kg정도밖에 안됐다. 그러던 그가 무리한 무게와 과로에 쓰러진 것이었다. 

그 후 그 아이는 병원치료를 받고 퇴원했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출근도 못했다. 그의 어머니가 보상금을 요구하니 직장에서는 본인 잘못 이라면서 한 푼의 보상금도 주지 않았다. 

그때 우리는 누가 먼저 입당 하는가 내기하자면서 18살 어린나이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만 했었다. 결국 나도 2년 만에 장티브스라는 전염병에 걸려 5개월 동안 입원생활을 하게 되였다. 생사기로를 헤매면서도 병때문에 남보다 늦게 입당하게 됐다는 게 제일 아쉬웠다. 

아버지는 그때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사람이 살고나서야 입당이지... 인젠 마음 푹 놓고 치료 받고 나와서 네가 하고픈 공부나 해라’ 하며 한숨을 쉬는 것이었다. 후에 아버지는 그 때 딸을 잃는 줄 알고 가슴이 철렁 했다고, 너무 야속한 세월이라고 한탄 하시는 것이었다. 

퇴원 후 아버지 말씀대로 직장도 옮겼고 재교육대학 (야간)2년 과정도 무사히 마쳤다. 나는 그 때 속으로 생각했다. 아버지 어머니처럼 고지식하게, 가난하게 살지 않겠다고... 그 후 나는 평남도 쪽으로 시집갔었는데 내가 출가할 당시는 앞 지대로 시집가면 잘 가는 거라고 모두 부러워하였다. 

“너는 백안령을 넘었네”, “신랑이 잘 생겼다”, "친구들 중에서 시집 제일 잘 갔다"는 말을 들으며 백안령을 넘어 신랑을 따라 평안남도 쪽으로 갔지만 이후의 생활역시 순탄하지만 않았다. 

아들 5형제의 둘째아들한테 시집간 나는 째지게 가난한 시집살이에 2개월도 안 되서 영양실조에 걸릴 정도였다. 날마다 도토리묵. 도토리 밥으로 끼니를 때우려니 임신한 나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본가에 갔다. 

그렇게 첫 아이, 둘째 아이까지 낳고 따로 세간을 냈지만 도무지 생활 유지가 안 되였다. 노동자인 남편은 아이 엄마인 나를 생각해 밥도 반 그릇 정도만 먹고 배가 부르다며 일하러 나가군 하였다. 

그 때 남편은 내게 노동당원이라고 속였었다. 첫 아이 낳은 후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당시는 입당 못한 남자는 어디 가서 발언권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남보다 주먹이 센 이유로 당위원회에서 입당시켜 주겠으니 일 안 나오는 청소년들을 일나오도록 하라고, 사로청 초급단체 위원장이란 직함을 주었다. 

남편은 밤과 낮이 따로 없이 현장에서 밥을 날라다 먹으며 일하였지만 1년, 2년, 3년이 지나도 계속 조금만 기다리라는 대답 뿐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터지고 말았다. 나의 남편과 한 작업반에 있는 다른 사람이 입당한다는 것에 분격한 남편은 초급당비서실에 가서 왜서 저 사람인가. 결근도 많고 일도 성실히 하지 않는 저 사람이 어떻게 입당하는 가고 따지고 들었다. 

하지만 당 비서는 당에서 하는 일에 무슨 반박인가고 하였고, 이 말에 배신감을 느낀 남편은 의자로 당비서를 때려 그가 병원에 실려가게 되었다. 그 일 이후 남편은 안전부에 끌려가 한 달 동안 감옥 생활을 하다 나왔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 사람은 당 비서한테 돼지 한 마리를 뇌물로 고였다고 한다. 출소 후 남편은 자꾸 놀라며 말도 못 하고 끙끙 앓았다. 무엇 때문에 그러냐고 물어보니 비행기고문 까지 당하고 5×5각자로 때리고, 밤에는 감방 지하실에서 울리는 비명소리가 너무 귀에 울려 잠을 못자겠다고 하였다. 

이렇게 되어 남편은 한동안 병원생활도 했다. 그 후 나는 이왕 사는 이상 남편 입당 시키려고 별의별짓 다했지만 결국 성분이 걸린다는 이유로 뜻을 이루지 못 하였다. 그후 이제는 내가 직업도 잡고 돈도 벌어 잘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생각처럼 되는 일이 아니었다. [다음호에 계속]   

탈북자 이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