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인간이 되려면
 
중국의 대도시들에서 건설노동자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농민공이다. 농민공이란 농민출신의 노동자들을 말한다. 농촌에서는 돈을 벌기가 어려워 도시에 몰려든 사람들이다.
 
그들은 친척들이나 한 고장 사람들끼리 어울려 다니며 일을 했다. 내가 식모로 일한 심양시 건설현장의 사람들은 대부분 산동성과 후베이 성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멀리 베트남 접경지역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거칠었다.
 
싸움을 할 때 보면 무서웠다. 거의 모두가 친척이나, 한 고장 사람들끼리 패를 지어 온 사람들이어서 한두 명의 싸움이 나면 그것은 곧 패싸움으로 번지군 했다. 거친 그들이었지만 좋은 점도 많았다.
 
그들은 "사람이 신용을 잃으면 설자리가 없어진다."는 공자의 말을 즐겨했다. 그들은 한 번 좋은 관계를 맺으면 끝까지 그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특징이 있었다. 한 마디로 신의를 귀중히 여겼다.
 
중국의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속에는 조선족이 적다. 내가 일했던 건설 현장에도 조선족은 사장 한 명뿐이었다. 사장은 나에게 조선족들은 워낙 머리가 좋아서 힘든 일은 안하고 산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한족들의 말은 달랐다. 그들은 조선족들이 워낙 깜찍한 사람들이어서 어지럽거나 힘든 일은 절대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족들은 대국의 우월감 같은 것이 있어서 소수민족들을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한족들과 소수민족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대립관계 같은 것이 있었다. 2004년 여름, 내가 일하던 건설현장에는 한 조선족 청년이 왔는데, 그는 열여덟 살 때부터 집을 떠나 객지의 노동판에서 살아온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연유로 한족(중국의 주류민족)들을 많이 상대해본 그는 그들에 대한 평가에 인색하지 않았다. 그는 친구를 사귀려면 한족을 친구로 사귀어야 한다고 말하군 했다. 그는 "조선족들이 한 달 친구라면 한족들은 십년친구"라고 말했다.
 
그 말은 한족들과 친구를 맺으면 그 관계가 오래 가지만, 조선족들은 이해관계나 처한 환경에 따라 의리나 우정이 쉽게 변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도 오랫동안 노동판에서 살아서인지 화가 나면 삽이나 벽돌부터 집어 드는 거친 성격이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상대해보면 마음이 곧고 어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허술해 보이면 업신 당하기 쉬운 노가다판을 잘 알기에 사나운 척, 자신만만한척 할뿐이었다. 그는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때문인지 나를 많이 도와주려고 애썼다.
 
내가 일하는 주방에 자주 들어와서 청소도 해주고 사람들이 주방에 와서 소란을 피우면 항상 그가 나서서 말려 주군 했다. 나도 성의를 표시하느라 그에게 때때로 술도 사서 주고 빨래도 해주군 했다.
 
그런데 그와의 관계가 나중에는 또 하나의 웅뎅이가 되어 나를 괴롭히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날 외출했던 그는 값비싼 옷을 한 벌 사가지고 와서 나의 방에 두고 나갔다.
 
나가면서 넌지시 이런 말을 했다. "젊은 아가씨가... 항상 낡은 옷만 입지 말고... 새 옷도 한 번 입어 보라구" 남자들은 파렴치한 족속들이라는 관념만이 머릿속에 꽉 차있던 나는 그의 호의에 겁부터 났다.
 
나는 그를 찾아가 옷을 다시 돌려주며 성의는 고맙지만 받지 않겠다고 이야기 했다. 그는 난색을 지어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어떤 다른 의도가 있어서 옷을 사준 건 아니야. 난 그저 네가 안쓰러워서... 나도 어릴 때 부모를 잃고 또 객지에서 고생도 많이 해봤어"
 
그는 여덟 살에 어머니를 잃고 열세 살에 아버지를 잃었다고 했다. 그 후 누이들의 손에서 컷고 열여덟 살부터는 객지에서 노동판을 전전하며 살아왔다고 했다.
 
그는 얼핏 보면 성격이 거친 것 같았지만 알고 보면 어릴 때 잃은 부모들에 대한 향수와 아픈 상처를 가슴에 묻고 사는, 불행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이름은 춘범이었다. 나이는 서른두 살이었다.
 
탈북자 정경옥. 정리 한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