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도망

북한여자들이 팔려 가면, 중국인 남자들은 처음에는 중국어를 배워주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팔려온 북한여자들이 중국말을 알면 도망친다는 인식, 낡은 노예제도의 주인관념 같은 것이 있었다. 북한여자들을 돈 주고 살 때에도 중국말을 조금이라도 알면 중국인들은 머리를 젓는다. 북한여자들을 돈 주고 산후에도 주변사람들과의 소통을 철저히 통제한다.

나도 그랬다. 중국인 주인은 내가 중국말을 배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중국말을 배우려고 동네에 살고 있는 북한 언니에게서 얻어온 책을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그 후부터 그는 내가 동네의 북한여자들과 만나는 것을 경계했다. 뒷집에서 사는 금화언니의 집에 가는 것도 싫어했다. 나중에는 노골적으로 나에게 동네에 사는 북한여자들을 절대 만나지 말라고 강요했다. 그는 내가 북한여자들을 계속 만나면 목이 날아난다는 손시늉을 해보이군 했다.

나는 처음에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내가 고분고분 할수록 중국인 주인은 마음대로 나를 다스린다는 생각, 일종의 반항의식 같은 것이 생겨나는 것을 느꼈다. 이를테면 배짱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배짱 같은 것은 중국인 주인의 포악함 앞에서는 아무런 효력도 나타낼 수 없는,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그는 내가 자신의 말을 거역하면 서슴없이 때렸다. 그는 나를 손으로 때리지 않았다. 주방의 연탄집게로 사정없이 두들겨 패군했다.

그때 내가 제일 부러워한 것은 중국인 주인의 딸이었다. 중국인 주인은 딸에게는 꽤 자상한 아버지였다. 오상시에 나가 공부하는 딸이 어쩌다 집에 올 때면 마치 명절 같았다. 중국인 주인은 맛있는 음식들을 준비하고 딸이 조금이라도 불편을 느낄세라 세심히 보살피군 했다. 중국인 주인의 딸은 나보다 다섯 살 어렸다. 나는 중국인 주인이 자기 딸을 보살피는 것 절반만큼이라도 나를 관심해주면 그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군 했다.

나는 매를 맞고 서러워 울 때마다 북한의 아버지 생각을 했다.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라는 것은 곧 원망이었다. 나의 아버지가 중국인 주인처럼 자식에게 자상스러웠다면 내가 집을 떠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아버지가 나를 팔아먹지만 않았어도 낯선 이국땅에서 짐승처럼 팔려 다니는 치욕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나는 그때 어린 나이에도 인간이 동등하게 살아가는 첫째 조건이 법률의 보호라는 생각을 해봤다. 중국의 법률과 정책에 따르면 나는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어온 범죄자 일뿐이었다. 중국인 주인에게도 나는 사람들(인신매매범)이 흔히 말한 것처럼 "죽여서 묻어버려도 찾는 사람이 없는" 짐승이나 장사물건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중국인주인은 나에게 마음대로 포악했다.

내가 오상시에 팔려간지 석달이 조금지난 2003년 1월 초에 있은 일이다. 나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그날 저녁 중국인 주인은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동료를 한 사람 데리고 들어왔다. 그들은 다른 때처럼 술상을 펴놓고 나에게 술을 따르라고 강요했다. 그런 일을 많이 겪었던 까닭에 나는 아무런 내색하지 않고 술을 따라주었다.

탈북자 정경옥. 정리 한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