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군도를 중심으로 촉발된 미중 충돌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처럼 전쟁으로 비화할지 세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기존 강대국이 신흥 패권국의 흥기를 용납하지 않는 속성이 있고, 현재 미중상호 간 불신과 오해가 깊어 수십년 내 전쟁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군사 충돌을 회피하기 위한 미중 간 상호소통과 신뢰구축 차원에서 미중 비밀회담을 통해 북한 비핵화와 주한미군 철수를 교환하여 남북 평화통일을 추진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한반도 당사자인 우리 입장에서 볼 때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미국 내 현실주의 노선을 경계하며 한미동맹을 강화함으로써 국가생존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

심상치 않은 南사군도 美中 갈등

남사군도(南沙群島)를 둘러싼 미중 갈등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인공섬 건설에 강력 항의해 중국 주장 영해 12해리 이내에 구축함을 진입시키고,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이 항공모함에 승선해 항해하는가 하면 급기야 11월초 B-52폭격기 2대를 남사군도 상공에 발진시키기에 이르렀다. 힘에 의한 자유항행 원칙 관철 의지를 과시한 것이다. 중국 역시 남사군도에 대한 ‘영토주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하면서, 미국에 ‘무력 대결’을 경고하고 있다. 과연 양대 강국 간 충돌이 불가피해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이 현실화되는 것 아닌지 국제적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한반도에 미칠 영향이다. 한반도는 미중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쳐 북한의 도발이나 급변 등 유사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남지나해에서의 미중 충돌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구체적으로 분석되지 않고 있으나 자못 심대(深大)할 것이다. 미중 관계가 악화되면, 양국은 세계전략 차원에서 남중국해와 한반도를 연계시켜 종합적으로 다루려 할 수 있고 그 경우 한반도에 뜻하지 않은 위험이 초래될 수도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위크(The Week)지가 전문가 칼럼을 통해 미중 양국이 한반도를 빅딜 대상으로 삼아 전쟁을 회피하는 방안을 제시해 주목을 끌고 있다.

美中 상호불신의 배경

현재 세계 최강 패권국인 미국은 신흥 패권국 중국의 도전을 심각하게 받이들이며 경계를 감추지 않고 있다. 개발초기에 ‘도광양회(韜光養晦)’와 ‘화평굴기(和平崛起)’로 협력적 자세를 보였던 중국이 군사력 증강을 바탕으로 ‘대국굴기(大国崛起)’를 선언하며 세력팽창을 기도해 국제질서를 위협한다고 본다. 아울러 민주주의와 인권 등 보편적 규범을 위반하고 있다고 인식한다. 티베트 인권탄압과 천안문 사태 등에 우려를 표명해 온 배경이다. 처음 미국은 중국과 국제규범의 공유가 가능하다고 판단해 ‘협력론’을 제기했으나, 중국이 30년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2010~2011년 경부터 군사팽창을 노골화하자 ‘위협론’으로 급선회했다.

특히 중국이 대만 정치에 개입해 통일을 도모하고, ‘도련선(島鍊線)’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해상 방어방을 설정하여 미국을 동아시아ㆍ서태평양 지역에서 축출해 세계 패권에 도전하려 한다고 믿고 있다. 2015 국방백서에 나타난 중국몽(夢) 세계전략은 그 노골적 표명이다. 미국은 중국의 팽창주의가 세계질서는 물론 자국의 안보이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판단해 사활을 걸고 강력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에도 불구하고, “적대국에서 부동(不動)의 강고한 동맹”으로 미일동맹을 격상시켜 대응하고 있다. 과거 소련을 봉쇄했던 것처럼 주변국가와의 동맹 결성을 통해 대중(對中) 봉쇄정책으로까지 발전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진단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미국의 과거 국민당 지원과 6ㆍ25전쟁 시의 충돌을 떠올리며, 미국에 대한 강한 반감과 불신을 감추지 않고 있다. 곧 ‘미국이 중국의 발전을 방해한다’든가 ‘미국이 중국 국내질서를 파괴하려 한다’는 콤플렉스성(性) 인식이 그것이다. 예컨대 미국이 대만·신장·티베트의 독립을 지지한다거나 홍콩의 안정을 파괴하려 시도한다는 등의 비난을 펼치고 있다.  1950년대 중국공산당이 당시 미국 국무장관 존 덜레스의 ‘화평연변(和平演變·평화적 수단에 의한 사회주의체제 붕괴)’ 발언을 격렬하게 비판했던 입장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과연 미중 갈등의 핵심은 양국이 세계체제 규범에 입각해 상호의존 협력할 용의가 있는가로 압축된다.

美中 충돌 불가피한가?—‘투키디데스의 함정’

미중 전쟁이 과연 ‘투키디데스의 함정’처럼 불가피한 것인지가 현재 미국 안보전문가들의 주요 관심사다. ‘투키디데스 함정’이란 강대국이 기존 국제질서를 개편하려는 신흥 패권국의 흥기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다는 의미다. 고대 그리이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신흥 아테네와 스파르타 및 그 동맹국들 간의 오랜 갈등과 전쟁이 그리이스 전체를 몰락으로 몰고 간 역사를 빗대어 이르는 용어다.

위크誌(2015.10.19)의 칼럼니스트 노아 밀먼(Noah Millman)은 “미중이 전쟁을 피할 수 있는가? 역사는 그렇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Can the U.S. and China avoid war? History says otherwise.)제하의 칼럼에서 미중이 이 함정에 빠지기 쉽다면서 향후 수십년 내 양국 간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진단했다. 특히 양국 간 활발한 경제관계에도 불구하고, 예상하지 못한 대규모 충돌이 촉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1차 대전 전 영국과 독일이 긴밀한 상호 무역의존 관계를 형성했으나, 해군을 중심으로 한 군비경쟁을 피해가지 못했고 결국 전쟁이 일어났음을 예로 들고 있다. 또한 2차 대전 전 일본은 군국주의가 발흥하기 전에 미국과 우호적이고 상호 호혜적인 무역관계를 형성했으나, 1941년 12월 성공 가능성이 희박함에도 진주만을 기습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서태평양에서 미국을 몰아내지 않고선 군국주의 야망을 실현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미중상호 간 과소평가(underestimations)와 오해(misapprehensions)가 위기를 초래할 것으로 분석된다. 1차 대전을 초래한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 사건처럼, 강대국 간 긴장이 고조되어 있을 경우에는 단순 사건도 예상치 못한 재앙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왜 ‘함정’이라 불리는가? 기존 강대국이 신흥 패권국과 충돌할 때, 상호 대응과정이 불가피하게 전쟁으로 끌려가는 패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도전국에 화해정책을 추진하면 양보로 비쳐질 수 있어 역공(逆攻)을 불러올 수 있고 동시에 국내에서 강경 대응하라는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강경 압박 내지 봉쇄정책을 추진하면, 이를 위협시한 상대국으로부터 선제적 도발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패권국 간 전쟁을 회피할 수 있었던 두 사례는 19세기말 미영 간 패권 전이(轉移) 기간과 20세기초 미소 간 냉전 시기였다. 영미 간에는 문화적 유대가 존재했고 마침 히틀러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영국은 자연스럽게 패권 지위를 미국에 양도했다. 소련의 경우 실질적인 패권 능력을 보유했었는지 의문이다. 현재 미중 관계는 문화적 유대가 결여된 데다 중국은 소련에 비해 훨씬 규모가 큰 산업기지와 많은 인구 등 강한 국력을 보유하고 있어 더 위험하다.

美中 충돌과 한반도

미중이 화해하면 한반도가 순항하지만, 갈등관계에 놓이면 한국의 외교선택이 불가피해진다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다. 상기 위크誌는 11월 밀먼(Millman)이 작성한 “미중 간 전쟁을 어떻게 회피할 수 있나? 북한에서 시작해야”(How can America and China avoid war? Start with North Korea. 2015.11.12) 제하의 칼럼에서 미중 간 전쟁을 회피하기 위한 정책 대안으로 북한 문제를 거론했다. 먼저,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충돌을 피하기 위한 필수적 전제로서 미중 간의 충분한 소통과 이해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신형대국 관계론”에서 시진핑은 미중 간 핵심이익이 다르더라도 냉전사고(冷战思维)와 제로섬 게임을 벗어나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미국 내에서 ‘중국에 전략적이고 도덕적인 동격(parity) 지위를 양보할 수 있다’는 강한 반대에 부딪쳐 효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미국과 동등한 지위로 대국관계를 형성해 세계를 공동경영하면서 국력 증강의 기회로 삼으려는 중국의 전략을 간파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중 양국 간 실질적인 협력 토대를 만들고 윈-윈(win-win) 성과를 낳을 수 있는 사례로 한반도가 제시된 것이다. 북한의 대남도발이나 북한붕괴 시 미중이 무력 충돌할 가능성이 상존하는 지금이 양국 간 잠재적 충돌 소지를 제거하고 화해와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적절한 기회라는 것이다.

곧 미국이 중국과의 솔직하고 쌍무적인 비밀회담을 통해 한반도 장래에 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한다면, 상호신뢰를 구축하는 계기가 형성되어 여타 지역 곧 남중국해상에서의 충돌을 회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반도에서 어떻게 타협을 이룰 것인가? 밀먼은 구체적으로 북한 비핵화와 주한미군 철수를 교환하여 남북한 간 평화통일을 추진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과의 신뢰회복 차원에서, 미군이 철수하는 대신 비핵화된 한반도 통일을 실현해 미국의 대중 봉쇄 위협인식을 불식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한반도를 미중 대결 완화와 상호이해 증진의 제물(?)로 삼고자 하는 방안이다.

실현성은 높지 않겠지만, 한반도에 살고 있는 당사자인 우리 입장에서 볼 때 매우 위험천만한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남사군도를 둘러싼 미중 충돌이 한미동맹을 약화시켜 뜻하지 않은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고다. 최근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이 화두로 떠올랐다. 미국이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현실주의 노선으로 회귀할 수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美中 충돌에 대처하기 위한 안보과제

미중관계가 악화되면서, 주변국들은 잠재적 전쟁위험성을 간직한 채 외교노선 선택이라는 딜레마에 봉착하고 있다. 대체로 중국의 흥기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미국과 연합하여 대중(對中) 포위정책에 가담하는 모습이다. 인도, 일본, 싱가포르,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지아 등이 미국 주도의 중국 억지 연합세력 구축에 동참하고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에도 미중 간 新냉전 여파가 불어닥칠 전망이다. 미어샤이머가 지적하듯, 한반도가 2차대전 전 폴란드의 비운을 따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당시 폴란드는 동서 양쪽에 독일과 소련이라는 적대적 강대국이 위치해 있어 동시 침공을 피하지 못한 채 양분돼, 나라가 망하고 국민은 재앙과 불행을 피하지 못했다. 19세기말 우리는 청일ㆍ러일 간의 전쟁터로 변해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다행히 지금은 한반도에 영토적 야심이 없는 최강 패권국가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어, 여타 열강들의 위협을 막아내고 있다. 미중 충돌에 관한 한 “침묵은 금”은 해답이 될 수 없고 위험한 단견(短見)이다.

북한 유사시 자위대 진입과 관련한 나카타니 겐(中谷元) 일본 방위상의 “한국 지배의 유효 범위는 휴전선 이남”이라는 한반도 영토주권 부정 발언은 원래 일본 입장이 과거에도 종종 그렇게 표명된 것으로 차치하더라도, 카터 미 장관의 포괄적이고 불분명한 언급은 우리에게 경고성 함의를 준다. “한국의 생존이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는데 달려있다”는 국제 석학들의 견해를 간과해선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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