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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4일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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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장마당이 인민들을 먹여살린다 (3)
고난의 시기에 '배급만 믿다가 굶어죽은 사람들'을 직접 목격한 대다수 북한주민들은...
김성민 
[주민들이 장사를 해야만 하는 이유]

최근 입국한 탈북민들과 북한의 시장과 관련하여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 특이한 현상이 발견됐다. 평양시 일부(중심 구역 제외)와 중앙 및 지방 간부들, 군관 및 보위-보안원들을 제외한 북한주민 대다수가 정부의 시책을 전혀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떤 말을 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주민들의 일상이 되어 버렸다. 

한편 시장의 활성화와 주민들의 사회일탈현상이 정비례 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극심한 식량부족과 경제난으로 무너진 것은 북한의 배급제 뿐이 아니었다. 과거에 북한이 자랑하던 '사회주의 도덕관'과 '공산주의적 가치관'은 물질만능의 세계앞에 철저히 부서져 있었고 원상복귀가 불가능해 보였다. 

이른바 고난의 시기에 '배급만 믿다가 굶어죽은 사람들'을 직접 목격한 대다수 북한주민들은 어떤 '짓'을 해서든 돈을 벌어야 내 가족을 굶겨죽이지 않는다는 '불변의 진리'를 터득하게 됐고 돈을 벌기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그러한 돈의 흐름이 시장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이는 북한의 장사 인구를 급속하게 증가시킨 주요 요인이었으며 동시에  북한당국이 가장 경계하던 '개인주의'와 '자본주의적 사상의식'의 확대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북조선 인민들의 사회일탈현상은 계속 증가되고 형국이고 권력기관 종사자의 월권행위, 뇌물수수 행위, 부정부패 행위도 아울러 늘고 있음을 엿볼수 있었다. 

국경일대 주민들 간에는 김정일-김정은에 대한 악평을 주고받을 정도로 주민들의 의식이 과거와 달라져 있었고  체제를 비판하는 삐라도 종종 나타난바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00 : 최근 2년간 북한의 농산물 수확량이 과거보다 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식량배급소가 문을 열지 못하는 것은 국가가 전쟁예비물자 및 군인들의 식량창고를 우선시 하고 그쪽으로만 식량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여전히 시장에 의지할 수 밖에 없고 이를 이용한 군대 및 권력자들의 시장개입이 성행하게 되어있다. 

신00 : 장사에 종사하는 주민들은 배급주는 것을 싫어한다. 배급이 실시되면 장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사를 마음대로 해서 이윤이 생기기 때문에 배급받는 것보다 훨씬 났다. 고지식하게 사는 사람들이 배급제를 좋아하지만 일년에 서너번, 그나마 기준치에 훨씬 못미치는 배급을 주고있을 뿐이다.

채00 : 우리는 기본적으로 배급을 받아서 생활했다. 대홍단군엔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배급이 나왔다. 옥수수와 감자를 4/1비율로 줬다. 하루에 성인 600그램 기준으로 1년에 6개월분을 줬다. 한국쌀은 1998년에 대홍단군 배급소에서 처음 받았다. 우리가족은 4명인데 1개월에 5키로 1년에 60키로을 받았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굶어죽은 사람은 없다. 

박00 : 제대로 배급을 주지 못하고 있지만 배급제도만은 없애지 않고있다. 지금도 배급제도를 없애는 문제는 쉽게 용단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일정 정도 수준으로 배급을 받는 사람들은 (시장 등에서)조금만 (식량을)보태면 되지만, 배급을 적혀 받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 다수가 장사를 해서 시장에서 사먹어야 한다. 

이00 : 지금도 식량배급 사정이 나아진 것은 전혀 없다. 배급소나 배급표는 존재하지만, 실제로 국가에서 주는 것은 없다. 그래도 내가 근무한 교육부문은 국가에서 조금이나마 신경을 써줘서 몇 번 받아 봤지만, 일반사람들은 거의 배급을 못받고 시장에 나가서 돈을 주고 구입한다. 어쩌다 국가적 명절 때에는 5일분이나 10일분, 설날에는 3일분 이렇게 가물에 콩나듯 배급을 줬다. 

장00 : 그래도 군관들이 좀 좋아졌다. 군인가족들은 생필품과 배급이 우선적으로 다 배급되고 노임도 5,000원까지 올라갔다. 남들은 쌀을 1키로당 700~800원에 살 때, 군인가족들은 쌀도 국정가격에 살 수 있다. 시장에 나오는 쌀은 절반이상이 군대에서 나오는 쌀이라고 보면 된다. 나머지는 중국 등에서 들어오는 쌀이다. 

'양정사업소'에 상주하고 있는 5.14(식량 전진공급을 위해 민간에 파견된 군관)군인들이 있는데 이곳에는 군부계획에 따라 어는 양정사업소는 1년에 어느 부대에 얼마를 보내고 한다는 계획이 다 되어 있었서 생산되는 쌀은 거의 모두가 군대로 가게된다. 

어느 해엔가 UN에서 배급을 주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감시단이 나왔었는데 국가가 짜고 하는 거짓말을 당하지 못한다.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들을 속일 수 있다. 감시단에게 사진 찍으라고 상황까지 만들어 준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가고나면 그만이다. 

이00 : 내가 탈북할때까지 국가에서 식량공급을 제대로 한 적은 없다. 하지만 무산광산 노동자의 경우 2006년부터 지금까지(2013년 2월)한 달에 10일분씩의 식량을 공급하는것으로 알고 있다. 무산광산이 돌아가야 하기 때문인것으로, 주민들도 광산 노동자들만 배급을 주는데 별 의견이 없다. 

김00 : 개천탄광의 경우 화폐개혁 이후 월급을 꼬박꼬박 주었다. 그런데 모두 준것이 아니라 늘 절반짜리 월급이었다. 중대가 계획량을 100%했어도 월급은 늘 절반이였다. 3천원 정도씩 받았는데 쌀 한키로 값도 안되었다. 그러니 누가 직장에 나가 일할 생각이 나겠는가. 하지만 안나갈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장사밑천 만드느라고 제정신이 아니다. 

탄광엔 물이 차는 것을 막기위해 24시간 양수펌프가 돌아가야 하는데 양수기가 통째로 없어지는 일이 다반사고 노동자들은 직장에 나올 때 바게쯔를 한개씩 들고 나오는게 일이다. 탄가루라도 퍼 담아서 장마당에 들고 나가야 그나마 죽이라도 얻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00 : 먹는것도 먹는 것이지만 물이 안나오고 전기가 없는 것이 더 큰 문제엿다. 전기는 정말 한심한 상황이다. 군 단위로 지역을 몇개로 나눠서 이쪽은 아침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저쪽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이런 식이다. 220볼트로 들어와야 될 전기가 20볼트 이하로 들어온다. 있는 사람들은 변압기를 한 대 놓고 전기를 끌어다가 TV한대를 겨우 본다. 그래서 화재사고도 많이난다. 전기사정은 해마다 더 어려워지고 있다. 

난방은 나무와 탄을 사서 땠다. 목욕은 군(구역)마다 1980년대에 지어진 목욕탕이 하나씩 있는데 주민들로부터 목용비를 받아 그것으로 땔감을 사서 땐다. 그나마 목용탕에서 땔감을 사들이기 때문에 가진것 없는 사람들이 땔감을 만들어 팔수 있는 형편이다.  

김00 : 2004년부터 물가가 더 올랐는데 사람들은 그 원인으로 남한과 국제사회의 지원이 줄었기 때문이다고 했다. 그래서 쌀값이 4천원 이상 웃돌기 시작했고 지금은 5천원까지 한다. 노동자 한달 월급이 4천원이라고 하면 이 돈으로 쌀 한키로 사기도 어렵다. 결국 도둑질을 해서라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게 됐다. 

김00 : 9월말쯤에 텃밭에서 옥수수 수확을 한다. 9월에 남편 생일도 있고 돈이 필요하니까 일부 팔고, 남은 식량을 초봄까지 맞춰서 생활한다. 6월에서 9월까지는 생활하기가 힘들다. 5월초 밭에 곡식을 심은 다음부터, 약초 뿌리 캐서 장마당에 팔고 그 돈으로 식량을 구입했다. 작년에는 산에 약초가 없어서 하나도 못 캤다. 재작년까지는 군부대가 있는 산에 들어가서 약초를 캐서 팔 수 있었는데, 군부대가 자기네 구역에 있는 것은 자기들이 캐서 팔면서, 일반인이 자기네 구역에 들어와 캔 것은 모두 빼앗갔다. 

김00 : 농촌은 먹을 것이 없으니까 힘도 없고, 비료도 없으니 농사가 잘 될 리없다. 9~10월까지 먹어야 하는데 겨울 내내 죽을 쑤어 먹어도 2월부터 식량이 떨어진다. 6월부터는 감자가 나와서 먹어야 되는데 그것도 어려워 풀만 먹는 사람도 있다. 

[빈부격차의 심화현상]

북한의 빈부 격차는 확대일로에 있다. 외화벌이에 종사하며 한몫 챙긴자, 뇌물수수에 능한 권력기관 종사자, 장사로 돈을 번 사람들은 봉사위원회가 경영하는 상점을 빌려 큰 규모의 수입상품거래점이나 '수매재생상점'을 경영하는가 하면, 손실기업(적자기업)에 돈을 대주거나 기업 자체를 인수받아 생산공장을 운영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수십만 달러의 외화를 보유하고 있으며 돈 놀이(고리대금업)를 하는가 하면 큰 주택에서 호화롭게 생활하고 있다. 

김00 : 등급이 높은 국가 편의시설인 공업제품 판매상점 중 전혀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점은 개인에게 빌려준다. 형식은 협동관리이사회 이름을 빌려서 한다. ‘수매재생산점’이라는 간판을 달고 협동관리이사회에서 파견한 것처럼 하는데, 실제로는 개인이 운영하는 것이다. 

상점뿐만 아니라 식당도 개인 운영할 수 있게 되었는데 점차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한 상점이나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수십만 달러의 외화를 소지하고 돈 놀이(고리대금업)도 하면서 큰 주택에서 호화롭게 살고 있다. 

식량배급 중단, 고난의 행군을 겪고 나면서 빈부격차가 더 심해졌다. 장마당을 국가가 인정해 놓으니까 장사꾼이 장사하기가 더 편해졌다. 장사가 활성화 되면서 돈 많은 사람은 더 많은 돈을 벌게 됐다. 자본주의 사회의 원리와 같아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중간계층도 있지만 "저건 돈주네 집이다, 저건 바닥네 집이다"라는 소리를 할 정도로 명확히 나누어져있다. 주로 돈주는 재포(북송동포), 화교, 친척이 있어서 중국 가는 사람, 해외연고자, 국내에서 장사를 잘하는 사람 등이 있고 최근에는 탈북한 사람들의 가족도 쉬쉬하면서 잘 살고 있다.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은 큰 집으로 이사를 간다. 넓은 평수의 집을 사고파는 행위는 예전부터 괜찮았지만, 표면화되면 안 된다. 편리성 때문에 집을 바꿨다고 해야지 돈이 오고갔다고 하면 안 된다. 그런 부잣집 애들은 좋은 학교에 가고, 먹고 쓰는게 다르다. 커피를 마시고, 남방과일을 먹는다. 가전제품은 말할 것도 없다. 잘 사는 사람들은 간부들보다 더 높은 경제적 수준을 누린다. 

김00 : 북한도 자본주의 사회처럼 경쟁이 벌어져 부가 한쪽으로 치우치쳐지는 경향이 강한다. 대량으로 물건을 독점하는 사람이 가격을 맘대로 정하니까 밑에 사람은 더욱 힘들어진다. 실지로 장마당에 가면 배급소의 쌀 가격은 통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그보다 20배 이상 비싼 가격으로 거래된다. 극소주의 사람들이 실제 거래가격을 정하고 모든 걸 다해먹자 그 만큼 하층민의 먹고살기가 힘들어지게 되었다. 

신00 : 지금 북조선의 빈부차이는 심해하다. 없는 집은 정말 한심할 지경이다. 그릇 몇 개밖에 없고 먹는 것도 통강냉이, 풀어진 국수 몇 젓가락, 소금국 등을 먹는다. 기름 한 방울도 없는 사람도 있다. 배급 안주지, 밑천도 없으니까 몇 백원 가지고는 국수장사 외에는 다른 장사는 못한다. 

노동자들은 살기가 더 힘들어졌고 외화벌이 하는 사람들은 너무 잘 산다. 청진시내에서 잘 사는 사람은 집도 크고 없는 게 없을 정도이다. 일제가전제품, TV, 냉장고, 녹음기, 녹화기, 흡진기(진공청소기)등을 모두 다 갖추고 있다. 

우리집에도 다 있었다. 나 같은 경우는 혼자서 한 달 생활비가 먹는 데만 5만원 정도 들었다. 일반 식당은 맛이 없어서 못 간다. 관광호텔하고 천마산 호텔, 그리고 외국인 숙소 등에 가서 사 먹었다. 천진관광호텔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데, 1상 1일분에 3만원이다. 거기에 맥주(중국맥주, 용성맥주)도 마신다. 

옷을 구입하면 더 많은 돈이 든다. 중고 의류, 중국에서 들어오는 한국산, 중국산 의류 등을 산다. 시장에서 파는 북한산 의류는 못 입는다. 청진에서는 부자를 '돈주'라고 한다. 잘 산다는 뜻인데, 주로 외화벌이 하는 사람을 말한다. 몇 천 달러 이상은 갖고 있다. 청진에서 10%정도 될 것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어렵게 산다. 농촌은 더 힘들게 사는데, 최근에도 굶어죽는 사람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채00 : 대흥단군에는 당 간부들이 부자다. 군당 책임비서는 월급보다도 뇌물로 들어오는 게 더 많다. 그 사람들이 첫째 부자이고, 다음으로 법관들(경찰들)이 뇌물을 많이 받는다. 그리고 차를 이용해서 장사하는 중소기업 간부들, 자기 권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부자다. 
장마당의 공업품 장사들, 중소기업 간부들은 차 1대를 사서 감자도 10톤씩싣고 청진 같은 곳으로 나가서 넘긴다. 그 사람들은 보안부 다 끼고 하니까 걸릴 염려도 없다. 고위직 당간부나 중간간부의 경우 자기가 직접 움직이지 않고 아내나 친척들이 움직이는데, 남편은 증명서 등 필요한 것을 준비해준다. 

사는 모습들이 완전히 하늘과 땅 차이다. 그래서 로동자들의 불만이 많다. 

이00 : 최초 식량 배급이 중단되었을 때에는 전체적으로 다들 못살았지만, 지금은 무산지역도 빈부격차가 심해졌다. 큰 돈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고, 심지어 몇 십억씩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꽤 있다. 

이00 : 우리 기업소는 전체 50명 정도 있는데 5~6명 정도가 돈을 번 사람들이다. 돈을 번 사람도 있지만 망해서 일어서지도 못 하는 사람도 있다. 돈을 버는 사람들은 사업수단이 좋은 사람들이다. 사업능력이다, 국경경비대에 잡혀도 돈으로 다 해결하고, 보안부, 보위부에 줄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다. 

장00 :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은 집을 짓는 사람도 있고, 큰 평수의 아파트를 두채 사서 하나로 만들어 사는 사람도 있다. (계속)

정리 김성민
 
 
 
등록일 : 2014-09-06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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