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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30일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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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장마당이 인민들을 먹여살린다 (2)
김성민 
시장기능의 확대 

탈북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의 시장 규모와 거래되는 물량 및 품목의 종류 등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국가가 사용하는 자금의 50%가 '농민시장에서의 수입'이라고 말할 정도로 시장기능이 확대되였으며, 지방의 경제관리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상업 관리소','남새 관리소','봉사관리소' 등 공공기관이 직접 매점을 개설, 수입품목도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개인은 하루 1천~2천원 정도의 사용료를 지불하고 있으나 몫이 좋은 매대는 보증금 형태로 사전에 수 만원을 납입해야 한다. 각 개인간에 매대를 사고 팔 수도 있으며 좋은 몫의 매대는 가격이 대단히 높은 편이다. 돈이 있으면 못사는 품목이 없을 정도로 거래 품목은 다양이다. 

김00 : 지금 북한 주민들의 삶의 방식이 달라졌다. 자기 노력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국가가 통제를 선포한 일부 품목외에는 모든 품목에 대한 매매가 허용되었다. 돈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다 사고팔 수 있었다. 하다못해 짐승이 먹을 수 있는 풀도 팔렸다. 시장에서의 활동공간이 넒어지면서 주민들의 장사를 할 수 있는 여건도 넓어졌다.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경제적 여유가 생겼다는 뜻은 아니다. 
 
채00 : 국가의 전략물자나 통제물자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품목이 거래된다. 공장에서 빼오는 것은 통제물자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허용될 수 없지만, 실제로는 전동기, 변압기, 베아링 등도 거래된다. 그러면서도 "이거 어느 공장에서 나온 변압기냐, 이거 어디서 구했냐?"라고 묻지도 않는다. 감시도 거의 없어졌다. 세금 바치기를 싫어하거나, 바칠만하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장사하는 곳을 '메뚜기시장'이라고 하는데, 동마다 1개 정도는 있다. 

신00 :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 매대값으로 30만원 정도를 낸다. 그리고 하루에 1000~2000원까지 매일 세금을 거둬가는데, 매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한편, 청진지역의 물가는 함경남도나 다른 곳에 비해 조금 싼 편이다. 나진, 선봉, 신의주, 혜산 등에서 물건이 많이 나온다. 시장 밖에서 장사를 많이 하는데 보안원에게 걸리면 벌금 내지만, 나와서 또 하는 식이다. (현재 북한 노동자 한달 월급은 3000~5000원 정도. 편집자 주)

채00 : 회령의 장마당 크기가 한국의 지방도시 재래시장 정도 된다. 북쪽지역에서는 양강도 혜산 장마당과 청진 수남 장마당이 크다. 회령에는 큰 장마당이 하나, 작은 장마당은 몇 개 있다. 대체로 다른 지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은 물건을 넘겨주는 대거리고 기본적으로 장마당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주로 회령사람이다. 타지에서 온 사람은 친척이 대부분이다. 

대홍단군에는 7.1경제조치 이전에는 장마당이 없었고, 경제조치 발표 후에 하나 생겼다. 대홍단 농민시장이 생겼었는데 2003년 4월경에 농민자를 빼고 그냥 대홍단 시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나는 무산, 혜산, 청진 수남시장, 삼지연을 다 다녀봤다. 주로 쌀, TV, 녹음기 등을 취급했고 약장사도 했다. TV와 녹음기는 혜산에 나가면 (중국에서) 밀수해온 것들이 있는데 다른 지방보다 값이 싸다. 

쌀가격의 경우(1㎏당) 무산 장마당 4600원, 혜산 장마당 4800원, 삼지연이 제일 쌌다. 청진이나 무산은 비슷했고, 혜산쪽이 청진보다 조금 싸다. 공업품도 옷, 가전제품 모두 다른데, 옷 종류가 제일 잘 나가는 편이다. 가전제품(드라이버, 펜치, 전구, 등)도 잘 나가는 편이다. 

한국제품도 인기가 좋은데 대체로 옷 종류로서 양복, 운동복 등이 인기가 있다. 새것과 중고가 다 다른데 한국 양복은 혜산 장마당, 대흥단 장마당 등 모두 거래되는 가격이 1만원 이상이다. 물건은 중국을 통해서 다 들어온다. 

중고는 물건마다 가격이 다 다르다. 중국 것은 음식류, 옷 등이 잘 팔린다. 중국 월병, 쌀, 음료수, 맥주, 사탕 등이 잘 팔린다. 한국제품은 1997년부터 장마당에 나왔는데, 그때는 상표를 떼고 팔았다. 2002년부터는 노골적으로 팔았다. 7.1조치 이후에는 시장이 확대되어 다양하게 나왔다. 음식류가 많이 늘었다. 

시장에는 사람이 맣이 모여든다. (청진시)수남 시장 같은 경우 최소 1만 명은 늘 모여있는것 같았다. 사람들 말소리가 십리 밖에서 들릴 정도로 개구리 울음소리처럼 와글와글 시끄럽다. 시끄럽게 떠들며 사라요~ 한다. 시장이 활성화되니까 나가면 몽땅 친척들이고 그렇다. 함북도 사람들이 대체로 수남 시장에 다 모인다. 

박00 : 예전부터 북한의 농민시장은 국가가 법적으로 허락을 하지않았을 뿐이지 주민들의 유일한 생활터전이었다. 국가가 아무리 통제해도 시장활동은 중단된 바 없으며 이를 기화로 국가가 시장을 승인하도록 '주민들이 밀고 들어온'형태라고 보는 것이 옳다.

주민들 자체가 국가의 승인을 받아낸 셈이다. 국가가 인정하든 안하든 농민시장의 규모나 유통되고 있는 각종 농업품, 공업품이 판매됐고 그 과정이 사실은 7.1조치 이전이나 이후의 흐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주민들이 살기 위해선 뭔가 팔아야 되고 사야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국가가)장마당을 허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 7.1조치다. 7.1조치 이후 농민시장에서'농민'이라는 글자를 빼고 그냥 '시장'으로 바꿨다. 과거 농민시장이라는 것은 쌀과 채소(텃밭에서 나오는 농산물)만을 팔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지금은 농민시장을 시장으로 바뀌면서 신발이나 의류 등 공업품을 팔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이전에는 공업제품을 판매하는 것에 대해 인민보안성,6.4그루빠, 인민위원회 등이 집중적으로 단속을 했는데, 그 사람들이 시장에 나타나면 농민시장에 폭탄이라도 떨어진 듯이 장사하던 사람들이 다 달아났다. 

그러나 7.1조치 이후 이런 일은 없어졌다. 이것이 과거와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북한사람들은 7.1조치라는 말도 안한다. 한국에 와서 '7.1경제조치','새로운 경제관리체계'라는 말들을 들었을 뿐이다. 

박00 : 합법화된 시장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괜찮은 편이었다. 신발 장사하는 사람들의 경우 그 무겁고 부피가 큰 걸 안고 다니면서 팔다가 단속이 뜨면 산으로, 들로 뛰어 도망갔던 상황이 바뀐 것만으로, 다시 말해 편하게 장사를 하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했다. 

김00 : 원개 발전된 나라라면 공장기업소가 생산한 상품이 시장으로 들어가 판매되고 그자금으로 임금을 주고 또 경영도 해야 하는데, 북조선의 경우 경제가 마비되어 생산품이 없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임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결국 시장에서의 수입을 통해 생활비(임금)를 마련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국가가 이용하는 현금자금의 50%가 농민시장에서 나올 정도로 시장기능이 확대되었다. 상업관리소, 남새관리소, 봉사관리소 등의 공공기관이 직접 상점을 개설, 운영하고 있지만 국가적인 상품과 운영자금이 없기 때문에 실리(實利)를 얻기는커녕 건물임대료도 내지 못하는 등 국가에 손해만 끼치고 있다. 

결국 인민봉사위원회(위원장 김경희)지시로 국내상품이 없을 경우 나진, 선봉지대로 들어오는 외국상품을 가져다 팔도록 했다. 그러나 국가기관이 자본주의 상품을 가져다 파는데에는 사상문제가 걸리기 때문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개인이 국가의 명칭을 빌려 상점을 운영하는 경우가 생겨났다. 상점경영자는 국가에 바치는 몫을 제외하고 나무지 순이익을 갖는 것이다. 따라서 향후에는 국영상점이나 식당이 모두 돈이 있는 개인에게 넘아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7.1조치는 장사꾼이들을 살리는 조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김00 : 시장은 예전에는 보통 3일에 한번 열렸지만, 지금은 매일 열린다. 2003년 1월3일 평양시 칠골 시장을 시찰한 김정일은 현지교시에서 "나는 시장을 좋아하지 않지만 현재 인민생활을 높이고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시정을 확대할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 앞으로 전국적으로 방침사업을 조직하여 각 도 시․군 책임자들과 이 부분 관련 일꾼들은 시장을 평양시 칠골시장만큼 규모와 숫자를 확대하라"로 강조했다. 이후 시장의 규모도 커지고 거래품목도 많아지게 되었다. 

이00 : 이전에 시장에서는 농토산물 위주의 물품만 판매가 허용되고 옷, 비누, 칫솔 등 공업품은 판매를 허용하지 않아서 암거래 되었다. 7.1조치 이후에는 기계설비, 금속부품, 국가전쟁물자 등 일부 국가재산 품목을 제외하면 모든 농토산물, 공업품을 팔 수 있게 되었다. 법기관에서도 인민들이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게 도와주라하고 한 것으로 주민들은 알고 있다.

이00 : 회령의 경우 장마당이 생긴 지는 오래되었는데, 7.1조치 이후 더욱 커졌다. 장마당에서 장사를 할 때는 장세를 내고 시작했는데 공업품이면 공업품매대 등 각 상품마다 다 자기 자리가 있다. 지금은 장사를 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어렵다. 시내에 사람은 너나 없이 장마당에 모이니까 사람이 많아지고, 시장이 커진다. 

농촌에 사는 사람은 농사를 못지으면 먹고 살기 힘들지만, 시내에 사는 사람은 장사를 못하면 먹고 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장마당에 못나가면 집에서 술장사를 하거나 빵, 두부 등을 만들어서 팔고 골목에 매점을 차려서 하기도 한다. 매점의 경우 허가를 받아야 한다. 50만원 정도면 할 수 있다고 한다. 힘있는 사람, 검찰소 검사나 보안부장을 알면 그 사람이 관할하는 사람한데, 이 사람이 도와주라고 한마디만 하면 집에서도 장사를 할 수 있다. 
 
장00 : 지금 북한 전역에 장마당이 생겨났고 평양시에도 장마당이 제법 활성화되어 있다. 평양시 송신장마당, 평천구역 장마당 같은데서는 물건들 대부분을 달라로 사고 판다. 남새와 땔감 정도만 북한돈으로 판매되는데 오죽하면 남새장사꾼들이 "우리도 밸이 있다. 무와 배추도 딸라로 팔겠다"고 하겠는가. 

김00: 청진지역의 경우 수남 장마당이 제일 크다. 유명하다. 그 외 청년공원 장마당, 수원장, 남향장, 산업장, 포항장, 송평장, 남청진 장마당 등 한 15개 정도 된다. 이전에는 개수로 하면 10개 정도로 규모가 작았는데, 지금은 바닥에 콘크리트를 치고, 담장도 올리고, 위에 지분도 씌우고 했다. 그래서 장마당이 더욱 활성화되었다. 

장마당에서 전기설비를 팔아본 적이 있다. 처가 장마당에 나가서 3년 정도 장사를 했다. 처음에는 규모가 작아서 구석에 가서 얼른 팔고 들어왔다. 그후 처가 남새파는 자리를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남새는 교외(시내 밖)에서 받아다가 팔던가, 전문적으로 가져오는 사람에게 새벽에 장마당에서 넘겨받아서 이윤 붙여서 팔았다. 

박00 : 시장은 그 전에도 있었는데, 장사하는 사람들은 살기가 쉬워졌다. 시장이 더 넓게 개방되면서 시장세만 내면 크게 통제하는 것이 없어졌으니 편해졌다고 볼 수 있다. 그 이후 장사에 더 많은 사람들이 뛰어 들었다. 사람들이 돈을 안 벌고는 살 수가 없으니까 돈을 벌려고 노력한다. 돈에 대한 개념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 작년에 청진의 쌀값이 5000원 이상 오른적도 있다.

장00 : 시장의 물건값이 오르고 물건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무산지역의 시장 관리원이 물건 종류별로 하루에 2000원씩 받아간다. 시장 나오는 사람들은 그 돈이 아까워서 안주겠다고 한다. 그래서 싸움하고 싱갱이 하는 경우도 맣다. 

북한의 장마당 하면 꽃제비 들이 먼저 떠오른다. 아줌마들이 먹는 것을 채가고 하는 경우도 많았다. 2012년 부터 꽃제비가 별로 없어졌다. 

최00 : 시장도 대폭 많이 늘어나고 크기도 엄청 커졌다. 판매되는 물건의 가격도 많이 올랐다. 사람들은 시장이 커진 것은 좋아하지만, 수입에 대비해서 지출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도 한다. 시장의 자릿세를 누구나 다 내야 한다. 이전에는 세금내는 것이 없었다. 

시장의 매대에 앉게 되면 매대값과 땅값도 낸다. 청진 수남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만 수만명이라고 한다. 장마당이 상당히 크다. 예전에는 5천명정도밖에 안되었는데, 지금은 많이 늘어났다. (계속)
 
 
 
등록일 : 2014-08-31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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