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의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전개되어 온 남북관계는 큰 틀에서 근본적으로 왜곡된 비정상적 관계였다. 김대중(金大中)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이끄는 2개의 ‘친북좌익’ 정권은 ‘6.15 선언’을 근거로 “주어서 북한을 변화 시킨다”는 억지 논리를 내세워 ‘상호주의’ 원칙을 배제한 ‘퍼주기’ 일변도의 대북 경협을 추진했었다. 그러나 이때의 대북 ‘퍼주기’는 북한의 ‘변화’는 끌어내지 못한 채 북한 독재체제의 연명(延命)을 도와주면서 ‘주는 쪽’인 남측으로 하여금 오히려 ‘받는 쪽’인 북측의 ‘볼모’가 되어 북의 주문(注文)대로 꼭두각시 춤을 추는 왜곡된 남북관계를 초래했다.

남쪽의 ‘친북좌익’ 세력들은 ‘6.15 선언’의 큰 성과로 남북 간 인적 왕래의 확대를 거론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허구(虛構)였다. ‘6.15’와 ‘8.15’ 등이 계기가 되어 ‘민족’을 명분으로 남과 북에서 지난 수년간 진행된 각종 ‘축전(祝典)’ 행사는 물론이고 금강산 개성 관광 등 대부분의 남북 간 인적 교류와 왕래는 예외 없이 남쪽 사회의 주류 세력인 ‘보수 우익’ 세력은 철저하게 소외되고 배제된 가운데 북한과 남한 사회의 종북 세력만이 참가하는 ‘잔치판’이 되어서 “북의 주문대로 남이 길들여지는” ‘상층 통일전선’의 무대(舞臺)로 구실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2008년2월에 출범한 이명박(李明博) 정부의 당면 과제 중의 하나는 이처럼 왜곡된 남북관계를 정상적 모습으로 바로잡는 일이었다. 정상적인 남북관계는 남북한으로 분단되어 있는 한반도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반영하는 관계를 말한다. 한반도의 객관적 현실은 지난 60년간 남북한의 두 체제 간에 치열하게 진행되어 온 체제경쟁의 결과를 말한다. 이 체제 경쟁을 통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 실험은 5천년 민족 역사를 통해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기념비적 ‘성공담(成功譚)’으로 실증(實證)된 반면 북한의 ‘공산주의독재’와 ‘계획경제’ 실험은 비참하기 짝이 없는 ‘실패작(失敗作)’이라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이 같은 현실에 입각한 한반도의 남북관계는 ‘성공한 체제’로 ‘도움을 주는 쪽’인 대한민국과 ‘실패한 체제’로 ‘도움을 받는 쪽’인 북한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다. 더구나, 여기서 이루어지는 ‘경제협력’은 ‘성공한 체제’인 남의 방식으로 관리할 경우 ‘성공’할 가능성이 큰 반면 ‘실패한 체제’인 북의 방식으로 관리할 경우에는 ‘실패’할 확률이 커지리라는 것은 자명(自明)한 사리(事理)였다. 따라서 남북관계는 남이 ‘갑(甲)’이 되고 북이 ‘을(乙)’이 되는 관계로 전개되어야 했었다. 그러나 ‘6.15 선언’ 이후의 남북관계는 그와는 반대의 경우로 전개되었다. ‘받는 쪽’인 북이 ‘갑’의 입장에 서서 ‘주는 쪽’인 남을 ‘을’의 위치에 놓고 마음대로 좌지우지(左之右之)하는 왜곡된 관계로 전개되어 온 것이다.

정상적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 같이 왜곡된 관계의 교정(矯正)이 시급하게 요구되었고 특히 그렇게 하는 것은 2008년 10년간의 ‘좌익’ 정권을 끝장내고 ‘보수 우익’ 정권의 권토중래(捲土重來)를 이룩한 이명박 정부의 최중요(最重要)국정과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관한 이명박 정부의 성적표(成績表)는 좋은 것이 아니었다. 그 이유가 있었다. 남북관계의 재설정을 위해서는 우선 그 동안 진행되어 온 관계를 일단 정지(停止)시켜야 하는 데 그렇게 하는 것이 용이치 않았었다. 그러나 3월26일 발생한 ‘천안함’ 사건이 이 같은 상황에 돌파구(突破口)를 만들어 주었다.

‘천안함’ 폭침 사건은 한반도의 남북관계에서 근래에 드문 충격적 사건이었다. 북한 해군의 연어 급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 공격에 의한 것으로 밝혀진 ‘천안함’ 폭침 사건은 명백하게 ‘유엔헌장’과 1953년의 ‘한국전쟁 휴전협정’ 및 19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를 위반하는 ‘무장공격’인 동시에 ‘침략행위’였다. 유엔은 1974년12월14일자로 채택된 ‘침략’의 정의(定義)에 관한 총회결의 3314호에서 “한 국가의 군대가 다른 국가의 육해공군이나 해병대 및 공군기에 대해 가하는 공격”을 ‘침략행위’로 정의하고 있다. ‘천안함’ 폭침 사건은 바로 이 같은 정의에 합치되는 ‘침략행위’였다.

‘유엔헌장’은 제51조에서 이 같은 ‘무장공격’이나 ‘침략행위’에 대해서는 피해 회원국의 ‘자위권’ 행사를 인정하고 있다. “이 헌장의 어느 조항도 유엔의 한 회원국에 대한 무장공격이 자행되었을 때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국제평화와 안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 이전에 해당 회원국이 보유하는 고유한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방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의한다면, 대한민국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자위권’ 행사의 차원에서 북한에 대해 군사적 보복을 단행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같은 ‘자위권’의 행사는 이를 통해 “도발을 하면 반드시 값비싼 대가(代價)를 지불하게 된다.”는 교훈을 일깨워 줌으로써 그 같은 ‘도발’의 재발을 억제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이명박(李明博) 정부는 ‘천안함’ 사건에 대처함에 있어서 ‘자위권’의 발동을 택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에 의한 ‘자위권’ 행사는 다시 이에 대한 북한의 반발을 불러 일으켜서 한반도에서 새로운 전면전(全面戰)을 촉발할 위험성이 없지 않다고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그 대신 ‘자위권’ 행사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도발이 재발될 때는 반드시 이를 행사한다.”고 경고(警告)하는 공포탄(空砲彈)으로 마무리하는 한편 ‘천안함’ 사건을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부의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러나 유엔안보리 부의 선택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유엔안보리에서는 상임이사국들인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았고 그 결과 이 문제에 관한 유엔안보리 토의는 결의안 채택은 고사하고 “죽도 밥도 아닌” 내용의 '의장성명‘을 채택하는 것으로 귀결이 났다.

그런데, 46명의 귀중한 젊은 생명들의 희생을 강요한 이번 ‘천안함’ 사건은 그 동안 왜곡되어 온 남북관계를 정상적 관계로 재설정하는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절호(絶好)의 기회를 만들어 준 사건이었다. 이번 ‘천안함’ 사건은 그로 인한 엄청난 충격파(衝擊波) 때문에 기존의 남북관계를 일단 정지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5.24 특별담화’가 그것이었다. 이를 통해 이 대통령은, 비록 ‘개성공단’과 ‘영유아(幼兒)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예외로 했지만, 남북 간의 모든 ‘교역(交易)’과 ‘교류(交流)’를 전반적으로 동결, 중단시키는 조치를 단행했다. 이뿐 아니라, 이 대통령은 그 동안 허용되었던 북한 선박의 대한민국 영해 내 무해항행권도 취소했다.

이 같은 교역교류 중단 조치는 김정일(金正日)의 북한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지 않을 수 없다. 교역 중단만 하더라도 북한은 이로 인하여 연간 2억5천만 달러 전후의 외화 수입 손실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이 같은 외화수입 손실은 가뜩이나 실패로 드러난 작년 11월의 화폐개혁과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내용으로 하는 유엔안보리 결의 1718 및 1874호, 그리고 ‘천안함’ 사건 이후 강화하고 있는 미국의 대북 금융 봉쇄 조치 및 지난 수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농사 실패로 인한 식량난 등과 함께 북한 정권에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북한은 지금 악화되고 있는 김정일(金正日)의 건강으로 인하여 그의 3남 정은(正銀)에게 3대 째 이어지고 있는 권력세습 과정을 서두르고 있음이 틀림없다. 이 같은 권력세습이 북한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김정은으로의 권력이동이 이루어질 경우 북한이 과연 당면한 경제난국을 헤쳐 날 여력이 있느냐는 것이 문제다. 이 때문에 김정일은 지난 5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중국을 방문,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의 정상외교(頂上外交)를 전개했다. 이 대중(對中) 정상외교를 통해 김정일은 3대 째 권력세습의 불가피성을 인식시켜 그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지지를 호소하는 한편 그 같은 정치적 변동 시기에 중국으로부터의 경제지원을 중심으로 안전보장 약속을 얻어내려 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후진타오 등 중국 지도부는 이 같은 김정일의 요청을 원칙적으로 수용했지만 이에 대한 대가로 ①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속개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 ② ‘천안함’ 사건으로부터의 최소한의 출구(出口) 전략 및 ③ ‘중국식 개혁개방’의 수용 등을 요구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이에 대해 북한은 9월에 소집한 ‘조선노동당 대표자회의’에서 김정은에 대한 공식적인 직책과 임무 부여를 중심으로 하는 ‘당’ 및 ‘정권’ 지도부 개편과 함께 특히 ‘개방’은 외면한 채 사이비 ‘개혁’ 조치를 위주로 하는 국면 타개 방안을 내놓기 위해 내부적인 진통을 겪어 온 것으로 보이며 이 작업의 난항으로 ‘9월 상순’으로 예정했던 대표자회의를 9월28일로 연기하여 소집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 같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조치로 중국 지도부를 만족시키고 북한이 당면한 위기 상황을 해소시킬 수 있을 것인지의 여부는 미지수다.

뿐만 아니라, ‘천안함’ 사건을 하나의 전환점으로 하여 지금 한반도의 안보상황에 일대 변화가 진행 중이다. 남쪽의 이명박 정부가 이 사건을 계기로 지난 10년간 ‘친북좌익’ 정권 아래서 이완되고 해이해진 국가안보 태세를 대대적으로 정비, 보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그 같은 변화의 일환으로 한-미 안보동맹이 전면적으로 강화, 보완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조치가 2012년4월17일이었던 ‘한국군 전시작전 이양’ 시한(時限)을 2015년12월31일로 연장한 것이다. 이와 아울러 ‘천안함’ 사건 이후 한-미 양군은 미국의 9만2천 톤급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 호까지 동원한 합동 해군 기동훈련을 한반도의 동서해 해상에서 연달아 실시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위원장: 이상우 전 한림대 총장)를 한시적(限時的)으로 가동시켜 국방정책을 전반적으로 점검했다. 이를 통해 정부는 우선 종래의 ‘소극적 방어전략’은 ‘적극적 억지전략’으로 대치하여 “북한이 다시 도발하려 할 경우 북한의 지휘체계와 주요 공격수단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선제타격’(preemptive strike) 능력을 구축하는 조치를 취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1980년대 미국 레이건 행정부의 대소 ‘신봉쇄전략’(New Containment)를 벤치마킹하여 북한으로 하여금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파탄까지 무릅쓰도록 강요하는 방안도 모색 중에 있다. 해군은 한 동안 ‘대양해군(大洋海軍)’을 지향하던 해군 작전개념을 다시 ‘연안해군(沿岸海軍)’ 개념으로 환원시키고 있으며, 그 동안 추진하던 군 사병 복무기간의 18개월로의 단축을 백지화하고 24개월 또는 21개월로의 연장을 검토하고 있고 육해공 3군의 합동 강화를 위한 획기적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최근 김정일의 퇴장(退場) 이전에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성사(成事)시켜 국면 타개를 꾀하려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일련의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납북했던 어선과 어부를 돌려보내는 것이라던가, 느닷없이 이번 추석(9월22일)에 즈음한 1회성 ‘이산가족 상봉’(각기 1백명 규모)을 제안한다던가 하는 것들이 거기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최근의 홍수(洪水) 피해를 구실로 대규모의 쌀과 비료 및 시멘트 뿐 아니라 중장비 지원까지 요청하고 금강산 관광의 재개도 슬그머니 요구하는 강심장(强心臟)을 과시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남측의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 잠복해 있는 북한의 ‘우군(友軍)’ 세력도 입을 모아 대북 경제 지원을 주장하면서 ‘정상회담’ 분위기 띄우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 같은 북한의 움직임은 전형적인 ‘간조기(干潮期)’ 전술에 입각하여 ‘담담타타(談談打打)’를 시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우리는 금강산에서 박왕자 여인의 사망을 초래한 북한군의 총격사건과 ‘천안함’에 대한 어뢰 공격에 대한 북한의 시인 및 사과와 재발 방지 조치를 요구하는 우리의 원칙적 입장을 견지함으로써 이를 통해 북한이 앞으로는 남북관계를 남쪽이 ‘갑’의 입장에 서고 북이 ‘을’의 입장을 수용하는 관계로 재설정하는 것을 수용하도록 하는 한편 추진 중인 대북 및 국방정책의 대대적인 재정비와 함께 대미(對美)대중(對中) 통일안보 외교의 질적 강화를 통해 북한의 내부로부터의 붕괴를 포함하여 체제 변화를 촉진하는 노력을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일환으로, 비록 이미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정부 내부에 대한 인적 쇄신을 단행하여 특히 대북 및 안보 정책 영역에 아직도 정부 안팎에 널리 포진하고 있는 ‘햇볕정책’ 잔존세력을 발본색원(拔本塞源)함으로써 그들이 정부 안팎에서 북한의 ‘우군’ 세력으로 암약(暗躍)하는 것을 봉쇄하는 것이 더욱 급선무로 제기된다. ‘6.15 선언’ 발표 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할 것을 주장하던 친북 인사가 대통령의 ‘사회통합’ 수석비서관으로, 그리고 ‘친북반국가’ 행적으로 재향군인회로부터 제명 처분을 받은 예비역 장성의 아들이, 그의 아버지의 시국관을 공유하고 있음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을 담당하고 있는 상황이 더 이상 용납되는 것은 그 자체가 ‘천안함’ 사건 이후의 시대 흐름에 부합되지 않는 일이라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된다. [끝]

<한국발전리뷰> 제179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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