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진실이요,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이 황장엽이요, 제일 무서워하는 방송이 자유북한방송이다. 신포시 금호지구에서 KEDO의 경수로사업이 한창이었을 때, 북한 노동자가 한국의 자동차에 타게 되면 제일 먼저 부탁하는 말이 라디오를 끄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성춘향이란 존재 자체가 본인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변학도를 유혹했듯이 한국 방송 그 자체가 일순간에 그들을 정신이 아득하도록 유혹했기 때문이다. 단지 라디오에서 흘러나와서 듣는 것뿐인데도 고자질 당하면, 생활총화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정신적 고문을 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간첩죄를 뒤집어쓰고 강제수용소로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 전체가 끌려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남조선’ 방송 한 번 들었다고!
북한에서 가장 성분이 좋은 청년들이 10년간 정기휴가 한 번 없이 휴전선에서 군 복무할 때 가장 큰 낙은 한국의 대북방송 듣는 것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저건 거짓말 저것도 거짓말 저것도 거짓말, 하며 마음속으로 씩씩하게 사상투쟁하지만, 차츰 정확한 일기예보를 비롯하여 신속정확한 북한 소식(한 달 후에나 어쩌다 확인되는 것) 등에 자신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되고, 북한의 군가를 유치하고 썰렁하고 답답하게 만드는 한국의 간드러진 유행가도 마음속으로 절로 따라 부르게 된다.
그게 바로 대포와 총으로 싸우는 무력전보다 무서운, 말과 노래로 싸우는 사상전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무렵 휴전선을 사이에 둔 남북한군의 방송에 의한 사상전은 한국군의 완승으로 끝나가고 있었다. 북한의 거짓과 비방이 한국의 진실과 비판을 이길 수 없었고, 북한의 증오와 협박이 한국의 사랑과 설득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대로 5년만 더 계속했으면,” 하고 휴전선을 통해 월남해서 [DMZ의 봄]을 쓴 주성일은 몹시 안타까워 한다.
대북방송 프로그램은 아주 잘 짜여져 있었습니다. 남한으로 넘어 오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에 충분하죠. 그런데 그걸 중단했으니 이제 따로 (북한 인민군에서는) 사상 교육을 할 필요가 없겠네요. 5년만 더 진행했더라면 북한 사회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텐데요.--데일리엔케이
독일의 자유평화통일은 방송에 힘입은 바 크다. 동독주민은 서독의 TV를 마음껏 볼 수 있었다. 소련과 동구도 서구의 방송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김일성을 흉내 내던 차우세스코의 루마니아에서도 벌레 취급을 받던 인민들이 이웃 나라의 TV는 볼 수 있었다. 서구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미 사상전에서 공산권에 압승해 버렸다. 민심이 완전히 돌아서서 공산당 타도의 도화선에 누군가 성냥불만 슬쩍 그어도 일시에 불붙을 참이었다.
휴전선의 대북방송보다 더 훌륭한 방송이 있었다. 그것은 KBS의 사회교육방송이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기 이전에 KBS의 사회교육방송은 가감 없는 진실과 부드러운 목소리와 달콤한 노래로 이불 속에서 숨어 듣던 북한 주민에게 희망의 빛줄기요 구원의 복음이었다. 그러나 ‘민족공조’란 말로 ‘정권공조’하기 시작하면서 KBS는 상호간에 비방방송 안 한다며 남의 나라 얘기하듯 하는 사회교육방송으로 김정일 비위 맞추기에 급급하다. 몰래 듣는 북한주민을 헷갈리게 하고 분노하게 만들었다. 대신에 북한은 전 매체를 동원하여 한국의 보수야당과 정통우익에게 대놓고 협박을 일삼지만, KBS는 어쩐 셈인지 한 마디도 항의하지 않는다. 24시간 헛소리나 해댄다. TV나 라디오 양쪽으로 24시간 헛소리나 해댄다.
2000년 이후 한국은 일방적으로 북한과의 사상전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다 익은 밥을 떠먹기만 하면 되는 찰나에 느닷없이 완장을 차고 나타난 자들이 재를 뿌리고 쓰레기통에 내다버린 셈이다.
천만다행으로 KBS의 옛 사회교육방송을 재현한 인터넷 라디오 방송이 한국에 탄생했다. 그것이 바로 FNK 곧 자유북한방송이다. 탈북자들이 2004년 4월에 개국했다. 북한에서 13년간 군에서 예술선전대 작가로 활동하다가 1997년 한국에 온 김성민이 겸손하게 사장 대신 국장이란 직함으로 기술요원 2명 외에는 전원 탈북자로 구성된 10명 안팎의 인원으로 하루 1시간씩 북한에 남북한의 진실과 4800만의 동포애를 전하는 자유북한방송을 ‘똑소리’나게 이끌고 있다.
황장엽이 방송위 위원장으로 사상전의 선봉에 서 있고, 김영삼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명예 위원장의 감투를 쓰고 있다. 조갑제, 이동복, 강인덕, 김성욱, 전경웅, 란코프, 김필재, 김용범 등 각각 북한의 1개 군단을 능히 세 치 혀로 무장해제 시킬 수 있는 분들이 맹활약하고 있고, 류현태는 유행가에 간간이 클래식을 섞은 세계음악여행으로 북한주민의 영혼을 촉촉이 적신다.
KBS의 사회교육방송 프로그램 중 제일 인기 있었던 3개는 그대로 살렸다. ‘노동당 간부들에게’는 강인덕 전 통일부장관이 맡고, ‘역사의 진실’은 김용범 중앙대 교수가 전 KBS 사회교육 방송 ‘역사의 진실’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계속 일하고 있다. ‘탈북자들의 증언’은 ‘탈북수기’란 이름으로 진행된다.
2006년 조사에 따르면 탈북자 200명 중 17%가 북한자유방송을 들었다고 한다. 김정일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진실이요,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이 황장엽이요, 제일 무서워하는 방송이 자유북한방송이다. 얼마나 소름이 끼쳤으면 남북장관회의에서 북한은 정식으로 이를 없애 달라고 부탁했을까. 한편 한국에선 누군가 북한 보위부의 무지막지한 협박 솜씨를 전수 받았는지 한국의 저질 무당으로부터 비법을 전수 받았는지 모르겠으나 욕설과 저주와 손도끼와 붉은 페인트와 식칼로 황장엽과 김성민을 위협한다. 쥐새끼 같은 놈들이다.
북한주민에게 한 푼도 직접 전달되지 않는 남북협력기금이 2006년에 2조원이 넘었고, 시민단체의 재벌 대상 인민재판이 끈질기게 이어지다가 마침내 정부가 ‘성역 없는’ 수사 방침을 천명하자마자 사회에 환원되는 돈이 1조원이니 8천억 원이니 했지만, 4800만을 노예로 만들려는 북핵과 110만 북한인민군과 김정일에 목숨을 걸고 당당히 맞서 그들을 각기 고철과 허수아비와 알거지로 만들어 버리려고 거짓 아닌 진실과 증오 아닌 동포애를 무기로 외롭게 싸우는 자유북한방송은 정부나 대기업으로부터 10원도 지원 받지 못한다.
다행히 한국에서 자유민주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도와 주고 이역만리 미국에서도 늦게나마 꽤 도움을 준다. 김성민은 요덕수용소의 산 증인 강철환과 더불어 백악관에 초대되어 부시 대통령도 만났다. 중동에 발이 묶이고 북핵에 손이 묶여 부시는 갈팡질팡하지만, 그 면담이 자유북한방송에게는 한 줄기 희망의 끈이 되는 것 같다.
free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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