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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보안성의 만행을 고발한다(1)
누가 살인을 하고 시체를 감춘줄 알았다
정찰국 군관출신이라고 평소에도 우쭐거리기를 잘하는 보안원은 신고있던 강하군화로 그의 얼굴이며 옆구리, 무릎을 사정없이 짓이겨 놓았다.
출처 : http://www.freenk.net/ 김대성 

1990년대부터 시작된 북한의 식량난은 수백만의 목숨을 앗아갔고 남은 사람들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죄인 아닌 죄인이 되지 않으면 안됐다. 한평생을 오직 수령과 당을 믿고 고스란히 청춘과 생명을 바쳐 온 순진한 북한인민들은 그 알량한 충성심과 양심을 지키다 굶어 죽었다.

김정일은 수백만이 굶어죽는 와중에도 무너져가는 독재정치를 유지하기 위해 ‘선군정치’라는 새로운 폭압정치로 군대를 전면에 내세웠다. 인민군대가 혁명의 주력군으로 등장하면서 북한은 명령식 관료주의와 병영 식으로 모든 생활이 변했다. 그 속에서 2천 3백만 인민들은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살아남기 위한 생존활동을 벌려야 한다. 정치보위부와 인민보안성은 인민들의 생존활동 확대를 범죄시 하며 마구 잡아들여 고문, 학살, 강제노동, 공개총살을 감행하고 있다.

결국 인민들의 생존활동 그 자체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목에 걸면 목걸이와 같은 범죄활동으로 적용된다. 그 범죄활동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양심적인 주민들은 악마의 소굴, 북한을 탈출하여 인간의 참된 삶을 찾아 떠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북한이라는 악마의 감옥을 탈출한 사람들은 누구나 보위부와 보안성에 투옥되어 인간이하의 고문, 학대, 멸시를 받아왔다. 남한의 일부 비양심적인 사람들 특히 열린 우리당의 원내대표인 장영달씨는 북한 전체가 악마의 감옥이라는 현실을 망각한 채, 인간다운 삶을 위해 탈출한 그들을 “범죄자”라고 비난했다.

만약, 그 비난자들이 북한이라는 악마의 감옥에서 태어나고 살아가게 된다면 과연 어떤 행동을 했을까? “도적”아닌 “도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인간의 생존 형태가 “도적”유형으로 변하는 사회, 그로 인한 지역별 보위부, 보안서의 인권유린 실태, 그 사실들을 탈북자들의 수기를 통해 고발한다.

[누가 살인을 하고 시체를 감춘 줄 알았다]

[얼마 전 중국 조선족 자치주인 연길시 주변에 위치한 태양진이라는 곳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 최씨는 자기가 만난 한 탈북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얼마 전 아침에 일어나 소먹이를 주려고 짚단을 뒤지다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짚단 속에 웬 사람이 죽은 듯이 누워있는 것이 아닌가? 쓰레기장에서 주워 온 듯한 담요를 뒤집어쓰고 인기척에도 아무 반응 없이 누워있는 피골이 상접한 사람을 보고 한씨는 누가 살인을 하고 시체를 짚단 속에 감춘 줄 알고 기절할 뻔했다.

허기에 지쳐 짚 속에서 잠이 든채 끼어나지 못하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던 남자는 잡아 흔들어서야 겨우 눈을 떴다. 그는 최씨를 보자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을 달라는 말부터 했다. 남자를 집안으로 데리고 가 밥을 먹인 최씨는 그의 식성에 혀를 내둘렀다. 최씨네 다섯 식구가 먹으려고 해놓은 밥을 국과 반찬까지 남기지 않고 남자 혼자서 다 먹어치웠던 것이다. 음식을 목구멍까지 채워놓은 남자는 그제서야 최씨를 보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뼈가 앙상한 검푸른 얼굴, 움푹패운 눈확 속에서 번뜩이는 날카로운 눈길, 날이선 코, 손발은 터서 가뭄철의 논밭처럼 갈라져 피가 배여있는 남자는 최씨에게 자신은 북조선에서 왔고 이름은 리영호라고 소개하며 자신의 과거사를 얘기했다. 스스로 나이 40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먹은 나이보다 10년은 더 나이 먹어 보였다.

황해남도 옹진군이 고향인 그는 소학교와 중학교를 마치고 군에 입대해 4군단에서 8년간 포병으로 복무하고 제대 되여 고향에서 농장원으로 일하다가 함경북도 명천군에 이사하여 역시 농장원으로 일했다.

그는 처와 2남 1녀를 둔 한 가정의 가장이였다. 그런데 집안에 먹을 것이 떨어져 친정집에 도움을 받으러 간다던 아내는 떠난지 3년이 되도록 소식이 끊겼다고 한다. 그는 중국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노동자들은 배급이 없으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지만 농장원들은 농사를 지으니 떡 만지는 사람이 떡을 먹게 되는 것처럼 배를 곯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너무 모르는 소리라고 했다.

그는 농사를 짓는다고 해야 가을에 양곡을 국가에 다 수매하고 다시 분배를 받는데 분배 받은 것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농사가 잘 되지 않아 분배량이 형편없이 적은데다 부식물이나 고기,기름같은 것을 거의 먹지 못하고 밥그릇에만 매달려서 노상 허기지고 한창 자라는 애들은 배가 고프고 기운이 없어서 뛰놀지도 못하고 항상 먹을 궁리만 한다고 했다.

이씨는 애들의 엄마가 행불 된 다음 날부터 13살,11살 되는 아이들은 학교에도 못가고 일년내내 산으로 들로 헤매 다니면서 먹을 수 있는 풀이란 풀은 다 뜯어다가 우려서 소금이나 된장을 풀어 소여물처럼 삶아 먹었다고 했다.

그는 8살된 딸애도 이젠 그런 음식아닌 음식을 삼키면서도 투정조차 부릴 줄 모르고 굶주림에 시달려 뼈에 가죽만 씌워놓은 것 같은 애들이 전기불도 없는 어둑 시큰한 방바닥에 쭈구리고 앉아서 풀죽을 먹을 때면 마음이 아파서 죽고 싶은 생각 뿐이였다며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학생시절부터 학교에서 이름난 마라톤선수였던 그는 남들처럼 공부에도 그닥 취미가 없어서 최우등은 못했지만 착해빠졌다는 말을 많이 들으면서 자랐고 품행만은 전교의 모범생이였다고 한다. 그래서 군복무시절에도 그랬고 사회에 나와서도 마찬가지로 일 잘하고 집단행활에서는 늘 본보기를 보인 법 없이도 살 사람이였다.

하지만 자식들이 굶주려서 죽어가는 꼴을 보면서 더 이상 국가와 당에서 시키는대로만 하면서 착하게만 살다가는 다 굶어죽는다는 생각에 그도 남들처럼 농작물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면 도적질을 시작했던 것이다. 도적질이라고 해야 봄철이 되면 농장 밭에서 시금치나 남새를 훔치고 가을철이 되면 밤에 강냉이 밭 경비를 서면서 강냉이를 훔쳐서 이삭채로 배낭에 져 나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훔쳐온 강냉이를 절구나 방아에 찧어서 애들에게 옥수수밥이나 죽을 해먹이면서 죽지 않고 생활을 유지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불행하게도 강냉이 배낭을 메고 집으로 오다가 마을어구 외통길에서 순찰을 돌던 분주소 보안원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새볔1시에 강냉이배낭을 지고 오는 그를 잡은 주재원은 다짜고짜 분주소에 끌고 갔다. 속이 한줌 만해진 그는 제발 용서해 달라고 손이야 발이야 빌었다. 그러나 평소에 “김악당”이라고 소문난 별명을 가진 보안원은 마치도 큰도적이라도 잡은듯이 사납게 으르렁 거리면서 시멘트 바닥에 끓어 앉히고 개 패듯이 두들겨 팼다.

정찰국 군관출신이라고 평소에도 우쭐거리기를 잘하는 보안원은 신고있던 강하군화로 그의 얼굴이며 옆구리, 무릎을 사정없이 짓이겨 놓았다. 그를 두들겨 패는 그의 얼굴에는 결승경기에서 상대를 수세에 몰아넣고 공격하는 권투선수마냥 희열과 쾌감이 어려있었다. (계속)


김대성 기자 lstarkim@naver.com

http://www.freenk.net/

등록일 : 2007-08-07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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