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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종교 탄압자와 집단은 김정일과 그의 공산수령세습독재이다.
고문과 학대는 상상을 초월
“죄수”들의 기름으로 찌든 독감방에서 이와 벼룩이와 싸우면서 하루하루를 버텨가던 나는 끝내는 병을 만났고 등에는 욕창이 생겨 진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등에 난 상처사이로 뼈가 보였고 파리와 온갖 곤충들이 모여들어 썩은 살을 파먹기 시작했습니다.
강옥주 
저의 고향은 함경북도 온성의 어느 작은 마을입니다.

앞에는 두만강이 흐르고 뒤에는 산으로 막혀있는 정말 누가 봐도 답답한 그런 마을 이였습니다. 늘 평화롭고 고독스러워 보이는 나의 고향에도 식량난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고 한명 두 명 가까운 이웃들이 굶어 죽어가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한 끼를 때울 식량이 없어 사람들은 소나무의 껍질을 벗기고 풀뿌리를 캐기 시작했으며 그것도 부족하여 방에 꼼짝 않고 누워 죽을 순간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늘어갔습니다.

어쩔 수 없고, 더는 살수가 없어 두만강을 넘는 사람들이 늘어갔고 두만강은 “도망강” 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 더는 먹고 살수가 없어 중국으로의 탈북을 결심하게 되었고 야심한밤 중국으로의 탈출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라고 모든 것이 공짜이고 먹을 것이 길거리에 널려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안의 눈을 피해서 다녀야했고 나를 신고할 것 같은 사람들을 피해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찾아 간곳이 교회였고 여기서 나는 겨우 숨돌릴만한 여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후, 교회전도사님들의 도움으로 나는 다시 중국의 하얼빈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여기서 본격적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스스럼없이 저의 마음속에 찾아오셨고 나는 하나님을 영접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면서 살기로 맹세를 다졌습니다.

이러던 저에게 불행은 예고도 없이 찾아 왔고, 나는 공안의 습격을 피하지 못하고 북송 당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숨어있던 곳이 한국 전도사들의 은신처였다는 문건이 중국으로부터 북한으로 넘어가면서 사실 나의 운명은 정해져있었습니다.

이들이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종교와 남한사람들과의 접촉, 남한으로의 망명시도였으며 이중에서도 종교적인 문제는 굉장히 폭압적이고 살인적 이였습니다.

나는 감옥에 수감된 첫날부터 독감방을 쓰게 되었으며 나를 향한 고문과 학대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사실 북한의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북한은 헌법상 종교와 사상의 자유, 시위와 집회의 자유, 망명의 자유 등 민주주의적인 법적제도를 대외적인 선전목적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법은 법대로 따로 놀고, 현실속의 법은 유명무실한 것이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르고 재판도 없이 처형당하는 형국입니다.

명시되어 있지도 않은 연좌제에 걸려 수많이 사람들이 죄 아닌 죄를 쓰고 처형당하고 있고 전시에나 있을법한 즉결처형의 대상이 되고 그야말로 무법천지의 범법국가가 북한이 아니겠습니까.

북한 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종교의 자유였지만, 나는 기독교를 믿었다는 죄 아닌 죄로 하루 6시간이상의 고문을 받곤 했습니다.

북한의 보위원들은 햇빛 한 점 안 드는 독감방에 나를 가두어놓고 시도 때도 없이 불러 내 구타했으며 정신을 잃을 때까지 때리고는 질질 끓어다 감방에 처넣군 하였습니다.

“죄수”들의 기름으로 찌든 독감방에서 이와 벼룩이와 싸우면서 하루하루를 버텨가던 나는 끝내는 병을 만났고 등에는 욕창이 생겨 진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등에 난 상처사이로 뼈가 보였고 파리와 온갖 곤충들이 모여들어 썩은 살을 파먹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그때 상황으로써는 며칠을 넘기기 힘들었고 내가 자신들의 관할 하에서 죽으면 귀찮다고 생각한 보위부는 나를 안전부로 넘겼고 안전부는 또 그들대로 자신들이 책임을 회피하려고 나를 할머니에게 떠 맡겨 버렸습니다.

그냥 집에 가서 죽어라! 이런 뜻이었습니다. 감옥에서 나와서는 한동안 기억이 없었습니다. 누워 숨쉬기조차 싫었고, 상처는 너무도 심해 보는 사람 모두가 머리를 가로 저었다고 합니다.

이런 내가 하나님의 기적과 할머니의 지극정성으로 다시 깨어나 세상을 볼 수 있었을 때 나는 살아있는 나 자신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나를 버리지 않으신 하나님을 느낄 수도 있었습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나는 얼마간의 몸조리를 거쳐 다시 탈북하여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나 같은 상황의 사람들이 살아 돌아 온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때 두 번 태어난 것 같은 나의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요.

북한에서는 외적으로는 평양의 칠골교회를 비롯한 선전용 종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천도교청우당이나 그리스도교련맹이라는 어용단체를 조직하여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종교탄압을 은폐하고 있습니다.

하기야 김정일 자신이 사이비 교주가 되여 자신을 신으로 만든 종교국가를 만들었으니 어떻게 다른 종교들을 용납할 수가 있겠습니까. 겉으로 그들은 종교의 자유와 인간의 기본권을 용납하지만 실제로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는 희세의 독재국가입니다.

이들이 진정으로 종교의 자유를 허락했다면 나는 이들의 손에 고문당하고 죽임 당할 뻔한 이유가 없었으며 북한의 수많은 사람들이 정치범수용소와 공개처형으로 희생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중국에서 북송당한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밥 한번 얻어먹었다는 죄로, 전도사의 설교한번 들었다는 죄로, 늘 동포들이 사는 나라라고 말하는 남한으로 가려고 했다는 죄로 처형당하고 죽임당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광폭정치를 외치고 그와는 정반대의 폭력적이고 무서운 독재정치를 펼치는 희세의살인마가 바로 북한의 김정일과 그 추종세력들입니다.

자신의 비위에 맞으면 살려두고 자신의 권력에 조금이라도 지장이 되거나 불필요하게 되면 없애버리는 잔인하고 무책임한 인간이 바로 북한의 김정일입니다.

수많은 국민들을 굶겨죽이고 처형해죽이고도 자신만을 믿으라고 강요하고, 하나님을 믿었다는 죄로 즉결 처형해 버리는 야만인이 바로 김정일입니다.

죄는 죄로 망하고야 맙니다. 김정일은 꼭 망하며 죽을 것입니다. 스스로 지은 죄로 인하여 영원히 고통 받게 될 것입니다. 그의 모든 죄악과 악행은 역사가 심판 할 것이며 이로 인하여 그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어지럽히며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김정일이 어떤 살인마이며 독재자인지를 똑똑히 알고 준엄한 심판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2007년 7월 24일 강옥주(2006년 탈북)

자료제공 : 자유북한방송
등록일 : 2007-10-08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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