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3대 세습 축하공연이 금강산에서 남북공동으로 진행되고 있다. 눈물이 앞을 가리고 콧물이 60년 만에 얼싸안은 가족의 때때옷 어깻죽지를 적신다. 하루 전 휴전선에서 예포가 울렸다. 북에서 먼저 두 발 울리자, 남에서 얼른 세 발을 울렸다. 이 시각 평양의 22호 아방궁 관저에서는 위성방송으로 김정일이 삐딱하게 누워 삼성전자의 100인치 LCD TV를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김정은을 향해 고개를 주억거린다. 매년 저런 쇼를 두 번만 보여 줘도 쌀 50만 톤과 비료 30만 톤이 꼬박꼬박 올라올 거라며, 두고 보라며 입 꼬리 한쪽을 치켜 올리며 씩 웃는다. 그러면 당장 3백만 노동당원과 2백만 군인을 배불리 먹일 수 있을 것이요, 증산된 식량 1백만 톤을 국정가격의 100배로 장마당에 내다팔아 대량살상무기를 양산할 수 있을 것이라며 무언의 미소를 주고받는다. 너무 세게 웃으면 중풍 맞을까 봐, 간신히 호탕한 웃음을 참는다. 이 시각 서울의 청와대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영부인과 더불어 삼성전자의 50인치 LCD TV를 바라보며 연신 눈가를 훔친다. 위원장님과 내정자님은 5천 톤이 너무 작다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안함 폭침 1년도 안 되어 보내는, 참으로 어려운 역사적 결단이었음을 십분 이해하고, 조만간에 민주당의 여론몰이와 한나라당 소속 민주당 2중대의 맞장구 여론몰이로 국민의 뜻을 결집하여 한국에서 남아도는 쌀 50만 톤과 언제든지 생산 가능한 비료 30만 톤을 보낼 터이니, 제발 중국식으로 개혁개방하라고 애원하고 기도하고 있다. 북한은 동아시아에 유일한 마이너스 성장 지역이다. 마이너스 성장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 전시 체제의 일제말보다 못 산다. 유럽에서 북아메리카로 이동했던 세계의 경제성장 축이 북아메리카에서 동아시아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지만, 오직 한 곳 북한만이 철문을 굳게 닫고 모택동식 문화혁명을 계속하고 있다. 중국이 문화혁명의 막바지에 달하여 증오와 파괴의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절대빈곤과 기아의 타는 목마름으로 아수라장이 됐을 무렵, 김정일은 삼촌 김영주를 밀어내고 후계자로 낙점되어 북한판 문화혁명을 시작했다. 그것은 3대혁명소조 운동이었다. 김정일은 북한 미녀 응원단의 구호로 잘 알려진 ‘사상, 문화, 기술’을 내걸고 북한판 홍위병을 조직하여 김일성의 내락(內諾) 하에 김일성의 관료체제를 때려 부수었다. 중국에서는 동방홍(東方紅) 모택동 마왕이 죽으면서 홍위병이 일망타진되고 등소평에 의해 전후복구가 이뤄졌지만, 북한에는 모택동보다 한 세대 아래인 김일성이 자연사하기에는 너무 젊어서 여전히 절대 권력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장차 개혁개방을 시도할 체제 도전자의 씨를 말린 다음, 그것도 안심이 안 되어 모택동에 빌붙고 스탈린에 빌붙은 자신의 행각을 속속들이 아는 불알친구들을 제거할 수 있는 문화혁명(세뇌) 권력을 김정일에게 건네주었다. 그것도 안심이 안 되어 김일성은 2세대 오진우에게 군사 권력을 몰아주고 그를 김정일의 수호신으로 삼았다. 김정일은 ‘70일 속도전’으로 경제를 결딴냈다. 자원과 인력을 총동원했기 때문에 다른 부문은 모두 결딴났지만, 김정일이 추진한 ‘70일 속도전’은 마치 화려하게 성공한 듯이 보였다. 여기서 그는 수천 명의 노력영웅과 인민영웅에게 훈장을 주어 새로운 충성파를 만들고 대대적인 선전선동으로 실정을 업적으로 둔갑시켰다. 대남 도발도 한층 격화시켰다. 눈엣가시인 전두환도 거의 암살할 뻔했다. 한국의 민간항공기도 폭파시켰다. 대남 선전선동도 한층 강화하여 모든 도발을 한국의 청와대와 안기부에 뒤집어씌우고 한국에 민주와 통일의 이름으로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과 친지김동(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 세력을 점 조직으로 급격히, 사회 곳곳에 광범위하게 키웠다. ‘강철서신’ 김영환 등 핵심세력은 특별히 반잠수정으로 불러올려 김일성을 만나게 해 주었다. 김일성이 죽자 돈맛을 안 러시아와 중국이 더 이상 공짜 원조를 안 했기 때문에, 북한은 곧바로 6.25 사변보다 처참한 비극의 땅으로 변했다. 300만이 굶어 죽었다. 그러나 김정일은 건재했다. 한국의 위수김동과 친지김동이 대활약한 덕분이다. 그들은 독일식 흡수통일에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여론을 조작하여 국민의 눈을 오로지 풍요로운 소비생활에 고정시켰다. 한국에는 이영희의 친절한 해석으로 모택동의 문화혁명에 잠 못 이루는 환희를 맛 본 세력이 곳곳에 퍼져 있었다. 김정일의 문화혁명에도 그들이 정통성을 부여하고 유토피아의 그림자를 본 것은 당연지사였다. 김정일은 3년상을 빌미로 지하궁전에 숨어서 핵개발 예고로 미국과 한국을 동시에 올가미에 끌어들였다. 그것은 전기생산용일 따름이고 북한에는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도 의사도 없다고 친북좌파는 열심히 방송과 신문과 시위를 통해 발악적으로 홍보했다. 미국의 음모론을 대대적으로 퍼뜨렸다. 마침내 김대중이 정권을 잡자, 평화의 깃발을 앞세우고 민족의 꽹과리를 울리면서 달러와 쌀과 비료가 대대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일본과 미국과 UN도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김대중이 퍼 준 달러로 김정일이 핵무기를 개발하자, 일본과 미국과 UN은 더 이상 지원하지 않았다. 도리어 거세게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반미반일 운동이 한국에서 쓰나미처럼 거세게 일어났다. 명색이 한나라당으로 집권한 만큼 이명박 정부는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든 바로 김정일 살리기에 나설 수는 없었다. 10년간 퍼 준 덕분에 그렇게 급박하지도 않았고. 그러나 퍼 주기 불씨는 절대 끄지 않았다. 이제 다시 김일성의 죽음과 맞먹는 위기 상황이 북한에 닥쳤다. 김정일이 중병에 걸린 것이다. 김정일은 하는 수 없이 3대 세습을 공식화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한 3년 지원이 거의 끊기자, 3대 세습을 뒷받침할 달러가 떨어졌다. (스위스 비밀 금고는 빼고.) 식량도 없다. 김정은을 앞세워 150일 전투, 100일 전투, 화폐개혁, 마구 밀어 붙였지만 모조리 실패했다. 미사일 발사, 2차 핵실험, 이것도 별 반응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서해 도발, 1차는 실패했지만(2009년 11월 대청해전), 2차는 대성공이었다(2010년 3월). 1999년에 실패하고 2002년에 김대중의 ‘열중쉬어’ 교전수칙 덕분에 성공한 것과 흡사했다. 그때보다 더 성공적이었다. 물위가 아니라 물속에서 작전을 수행했기 때문에 발뺌하기에 아주 좋았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에서 김정일은 아버지처럼 변호하고 이명박과 오바마는 원수처럼 고소하는 여론이 갈수록 힘을 얻었다. 실은 청와대가 제일 먼저 여론을 호도했다. 뒤늦게 백악관의 압박과 협조로 물증을 찾아내자, 청와대는 슬그머니 백악관 편에 섰다. 북한에 특이동향이 없다고, 예단하지 말라고, VIP 메모로 국방장관을 윽박지르던 일은 어물쩍 넘기고 믿지 않는 야당을 개탄하지만, ‘그대들이 먼저 북한에 특이동향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대들면, 먼 산을 쳐다보며 나지막이 아침이슬을 읊조린다. 그리고는 비장하게 대북방송을 재개하고 풍선으로 삐라를 뿌리겠다던 대국민 약속은 0.1%도 지키지 않았다. 한국인은 금방 잊어버린다는 걸 잘도 이용한다. 요직에는 친서민 친햇볕 탕평책이라며 민주당 2중대 세력을 여기저기 심었다. 건망증이 심한 한국인을 어떻게 다루는지 청와대와 야당과 여당의 야당은 잘 안다. 너무 적다고 짐짓 아우성치는 야당을 그윽이 내려다보며 수재민을 도우라며 100% 김정은의 백령도 해전 승리 전리품이자 하사품으로 쓰일 쌀 5천 톤과 라면 3백만 개를 보내 주고, 인도적 차원에서 가족상봉 쇼도 냉큼 받아들였다. 정례화하자, 안 된다, 그럼 곤란하다, 음 좋다 정례화하는 대신에 쌀 50만 톤과 비료 30만 톤을 매년 올려 보내라, 글쎄 국민의 뜻을 살펴보고 ... 개인의 자유를 증오하던 공산권이 붕괴된 지 20년이 된 지금, 북한은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는 세계 유일의 땅이다. 북한에는 가족도 다른 군, 다른 시에 살면 마음대로 만나지 못한다. 하물며 남북 간이랴! 저 암울하던 일제시대에도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편지 주고받기도 마음대로, 가족 만나기도 마음대로였다. 외국에서 독립 운동하는 극소수 외에는 누구든지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고 사랑하는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도저히 왜놈 밑에서 살 수 없으면 만주로 상해로 도망가면 되었다. 그런 사람을 잡는 자도 아무도 없었다. 왜놈이 간악했다고 하지만, 김일성과 김정일과 김정은에 비하면 신사도 그런 신사가 없었다. 천만 이산가족 가족 중 단 한 가족도 자유왕래를 못하는 상태에서 화려하게 상연되는 가족상봉 신파극은 김씨왕조의 체제를 찬양하는 쇼에 지나지 않는다. 편지 한 통, 전화 한 통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그보다 천만 배 좋은 일이다. 그것은 돈도 거의 들지 않는 일이다. 김씨왕조에 절대 이용될 수 없는 참으로 인도적인 일이다. 천부인권이 명하는 일이다. (2010. 10.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