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주민들의 성분을 핵심계층, 기본계층, 적대계층으로 분류하고 출신성분에 따른 차별화 정책을 실시한다. 1970년대 초부터 북한은 개성과 황해남도에서 적대계층으로 분류된 주민들을 함경북도 북부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2006년 북한을 탈출하여 올해 3월 대한민국 입국에 성공한 박영희 할머니도 그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기자는 북한에서 적대계층으로 분류돼 억울한 삶을 살아온 박영희 할머니를 취재하고 그의 과거사 일부를 정리했다.
1939년생으로 개성에서 출생해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정국과 6.25전쟁을 겪으며 격변의 현대사를 체험했던 박영희 할머니, 그는 6.25전쟁이전까지 남한에 속해있던 개성에 거주하면서 북한군의 남침을 직접 목격한 산증인이다.
6.25전쟁 당시 9살이었던 박씨 할머니는 인민군이 새벽4시에 쳐들어 와 남한 땅이던 개성이 하루아침에 북한 땅이 되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는 개성에 쳐들어온 인민군이 제일먼저 순사(경찰)들부터 모두 잡아서 총살한 뒤, 간부들을 다 잡아 가는 것도 목격했다.
그러나 박영희 할머니는 북한에 사는 동안 아이들에게 미국 놈들과 괴뢰군 놈들이 쳐들어와 전쟁이 났다고 말해야 했다. 그러나 함께 탈북 한 그의 아들(38)은 남한에 와서야 6.25가 남침전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한국에서 텔레비전을 본 박씨의 아들은 “어머니! 이거 정말 북한에서 먼저 쳐들어왔습니까?’라며 반문했다.
박씨는 그런 아들에게 “그래 북한에서 먼저 쳐들어왔다.”라고 수십 년 동안 감추고 살았던 진실을 이때에야 말해 줄 수 있었다.
왜 북한에서는 그런 얘기 안 해주었냐고 묻는 아들에게 박영희 할머니는 난처하기만 했다. 가뜩이나 집안 성분이 안 좋은데다 말 한마디 잘못해서 온 가족이 다 죽을 것 같아 아들에게는 그 진실을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박씨는 개성이 북한에 넘어가면서 개성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적대계급의 성분으로 분류 됐다며, 특히 전쟁당시 미군과 국군을 도왔던 사람들은 강제로 회령 유선탄광으로 추방됐다고 설명했다.
그의 가족도 아버지가 개성에 들어온 국군을 도와 인민군 잔당들을 체포하는 작전에 참가했다는 죄로 유선탄광에 끌려갔다. 적대분자로 추방된 사람들은 유선탄광과 성남 탄광에 갈라져 배치돼 정비가 안 된 갱에 들어가 무리로 죽는 사고도 자주 발생했다. 수용소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그들은 먹지도 못하고 노역에 동원되었으며,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잡혀가 취조를 당했다.
박씨의 말에 의하면 “트랙터가 땅을 깊이 갈지 못해 곡식이 안 된다는 말 한마디에 온 가족이 없어진 사건은 비일비재 하다”며 거기서는 “성분 나쁜 놈은 무조건 반혁명분자다. 죽이라”는 소리가 아이들 자장가처럼 들리는 곳이라고 했다.
그는 성분이 나쁜 탓에 철도대학 입학시험 성적이 합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입학을 못하는 아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그래도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에서 무슨 일을 시켜도 그저 감사하게 생각하고 무조건 해라. 좋건 나쁘건 조건을 따지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강조하며 살길만 모색했다고 한다.
그의 가족들은 온갖 설음을 당하고 짓밟히면서도 열심히 일했지만 식량배급에서 맨 먼저 제외 되었다. 그래서 콩나물 장사를 시작했는데, 온 가족이 열심히 일한 덕에 잡곡밥이라도 먹으며 살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박씨의 가족을 탈북하게 만든 사건이 발생하게 됐다.
박씨는 작년 10월 김장을 담그기 위해 회령 역에서 소금80kg을 구입해 오다 단속에 걸렸다. 당시 소금을 실은 화차가 회령 역에 들어 왔는데, 화주는 운송의 번잡함을 덜기 위해 화차에서 직접 소금을 판매했다. 물론 시장가격보다 3분이 1이나 싼 가격에 말이다. 그 덕에 사람들이 시장에서 소금을 구입하지 않고 모두 그쪽으로 몰려들었다. 박씨도 싼 가격 때문에 역에서 소금을 구입했다.
그런데 회령시 안전부에서 불법행위라고 소금을 모두 압수했다. 그래도 회령시 안전부에서는 소금을 뺏긴 사람들이 찾아가면 소금은 몰수하고 얼마 안 되는 소금 값은 돌려주었다. 박영희씨도 아들과 함께 안전부에 소금 값 찾으러 갔다.
그런데 안전원은 문건을 뒤져 보더니 박씨와 아들에게 “개성에서 쫓겨 온 것들이 양심 있어? 어디서 소금 값 달라고 지랄이야. 비사회주의로 잡아넣기 전에 썩 나가” 라고 소리쳤다.
보안부에서 쫓겨나온 박씨는 시당위원회 신소과에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거기서도 “개성에서 온 것들이 조용히 살아야지”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어야 했다. 게다가 안전부에서는 박씨가 신소과를 찾아 간데 대한 앙갚음으로 박씨의 아들을 무직 죄로 노동단련대에 보냈다.
개성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간이하의 천대와 멸시를 받아야 했던 박영희씨는 단련대에서 나온 아들을 데리고 저주의 땅을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김대성 기자 lstarkim@naver.com
등록일 : 2007-11-01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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