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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보고]극한의 생존 현장
‘땅굴’의 내부를 가다 -제3부
오주한 기자 

노동력 착취의 현장. 중국인 업주들은 오갈데 없는 탈북자들을 자의든 타의든 공장으로 데려와 이처럼 하루종일 고된 노동을 강요한다. 물론 임금은 '0'원. 하지만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중국 정부의 난민 불허가 방침이 존속하는 한 중국에서 그들은 합법적인 취업도 공부도 이주도 할 수 없는 영원한 이방인일 수 밖에 없기에. Copyright ⓒ 2003-2007 by 유상준


 

["300만 주검을 넘어 탈북한 우리를 기다린 것은 한 줌 햇살조차 들어오지 않는 흙구덩이 아래 지하였다!" 강제북송 피해 산간오지 지하로 숨어든 탈북자들의 처절한 현장 보고서 - 제3부]



노동력 착취의 현장 한 켠에 산더미처럼 쌓인 장작더미. 저 장작들을 하나하나 쪼갤 때 마다 탈북자들의 가슴도 함께 산산히 쪼개졌으리라. Copyright ⓒ 2003-2007 by 유상준




언젠가 청진집결소에서 벽이 무너지는 바람에 4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 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이 남자는 하지만 쇄골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어야만 했다. 아무런 안전장치도 보상도 없이 무방비로 노동착취 현장에 내몰리는 그들. 수술한 흔적이 여실한 살가죽 안으로 부러진 쇄골을 고정시키기 위해 넣은 삽입물이 보인다. Copyright ⓒ 2003-2007 by 유상준




화룡시 용서마을의 한 탈북자. 중국인 업주에게 임금을 달라고 항의한 결과 돌아온 것은 무자비한 폭력뿐이었다. 중국인 업주의 폭력에 윗니의 전부와 아랫니 일부가 모두 부러져나간 모습. 하지만 그는 왜 그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그 어디도 오갈데 없고 받아주는 곳 없는 '탈북자' 이 세 글자의 족쇄 때문은 아닐까. Copyright ⓒ 2003-2007 by 유상준


[유상준(44)]

함북 청진 출신으로 98년 북한 전역을 덮친 극심한 식량난 속에 아내와 차남 故 유철웅 군을 잃었다. 이를 계기로 중국으로 탈북한 그는 두리하나선교회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 입국했고, 뒤이어 2001년 8월 중국에 홀로 남겨졌던 장남 故 유철민 군을 데려오기 위해 국내 한 NGO단체에 의뢰했으나 철민군마저 중국-몽골 국경지대 사막에서 잃었다.

사막의 모래 아래 묻혀있던 아들의 시신을 몽골 정부의 협조 아래 수습해 2003년 9월 1일 파주 통일전망대에서 장례를 치른 그는 이후 2007년까지 중국내 탈북자들에게 자유로 가는 길을 일러주는 인도자의 길을 걷게 되며, 2007년 8월 누군가의 밀고로 중국 공안에 체포되는 그 순간까지 무려 수백 명에 달하는 탈북자들을 자유 세계로 인도했다.

중국 공안에 체포된 그는 변호사 선임도 거부한 채 죽음을 통해 사랑하는 가족의 곁으로 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 국내 인권단체들에 의해 대대적인 구원 활동이 전개되었고, 2007년 12월 4일 네이멍구 시린궈러밍 중급 인민법원의 판결에 따라 벌금 3만 위안을 물고 같은 달 15일 추방 형식으로 석방되어 16일 오후 1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다시금 한국 땅을 밟았다.

현재 그는 중국 정부에 의해 입국이 전면 거부된 상태이지만 늘 입버릇처럼 되뇌이는 “내가 이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라는 겸손한 말과는 달리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 또 다른 방식들을 통해 여전히 북한 인권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입국 당시 그는 현장에서 나가 있던 본 기자와의 첫 만남에서 “탈북자들은 정치난민이다. 사회에 무사히 적응하여 각 분야에서 일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으면 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기자 주 - 중국 내 땅굴의 존재는 이미 2006년 6월 21일자 연합뉴스 보도를 통해 우리 사회에 알려진 바 있다. "지난 5월 말 지린성 연변자치주 안투(安圖) 근방 야산에서 땅굴을 파고 숨어 지내던 탈북자 3명이 중국변방대에 붙잡힌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당시 기사의 일부)" 하지만 이 보도는 큰 이목은 커녕 작은 관심조차 끌지 못한 채 그대로 파묻히고 밀려나 끝내 잊혀지고 말았다. 탈북자 인권을 먼 나라 사람들 이야기 보듯 하는 우리 사회의 무관심. 그 무관심이 그들을 더 깊고 어두운 땅굴 속으로 몰아넣은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드는 것은 지나친 상념 때문일까)



무너진 땅굴로 가는 가파른 경사길. 산새 지저귀는 소리와 신발에 밟히는 나뭇잎 소리만이 들려올 뿐 그 어디에도 인기척은 느낄 수 없다. Copyright ⓒ 2003-2007 by 유상준




드디어 무너진 땅굴의 터가 드러났다. 다행히 시신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 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은 땅굴이 무너지기 전 이미 오래전에 중국 공안의 단속을 피해 떠난 듯 했다. 땅굴의 깊이가 언뜻 보아도 사람의 키를 훌쩍 넘긴다. 탈북자들은 단독으로, 혹은 두엇이 함께 오직 삽 한자루에 의지해 며칠 몇달을 파낸 것이다. 오직 '살아야만 한다'는 집념으로. Copyright ⓒ 2003-2007 by 유상준




무너진 땅굴의 바닥. 덩그러니 깨진 그릇 조각만이 사람이 남긴 흔적의 전부이다. Copyright ⓒ 2003-2007 by 유상준




전체적인 모습을 찍기 위해 보다 높은 곳에 올라가 내려다보았다. 사각형으로 파내려간 땅굴의 전반적인 윤곽이 보인다. Copyright ⓒ 2003-2007 by 유상준




땅굴의 벽면. 가운데 보이는 구멍은 공기를 들여보내고 연기를 내보내는 환풍구의 역할을 한다. Copyright ⓒ 2003-2007 by 유상준




대륙을 횡단하던 중 또다시 발견된 무너진 땅굴. 유 씨의 발걸음이 다시금 빨라졌다. Copyright ⓒ 2003-2007 by 유상준




모습을 드러낸 땅굴. 하지만 이 땅굴은 자연적으로 무너진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무너진 것이라고 한다. 공안, 그들이 다녀간 것이다. 언뜻 보아도 정교하게 무너진 것이 사람의 손이 거친 흔적이 역력하다. 그 때 불현듯 유 씨의 머릿 속을 스쳐가는 생각. '그렇다면 이 곳에 머물던 탈북자들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Copyright ⓒ 2003-2007 by 유상준




무너진 땅굴의 한 구석. 땅굴 내부까지 잡목이 자란 것이 무너진지 꽤 오래된 듯 하다. Copyright ⓒ 2003-2007 by 유상준




또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땅굴. 훗날이지만 유 씨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공안의 습격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탈북자들은 무사히 탈출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서울 도심 어딘가 따뜻한 안 방에..? 아니면 또 다른 땅굴 속에..? 기쁨도 잠시,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Copyright ⓒ 2003-2007 by 유상준




대륙 어딘가에서 맞닥뜨린 시커먼 입구. 산 한가운데에 떡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저 땅굴은 외형만 보더라도 지금까지 보아온 땅굴들 중 가장 은폐되고 철저히 감추어진 형태이다. 내부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 곳에서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햇볕 한 줌조차 허용하지 않는, 이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잊혀지고 닫혀버린 그 곳 지하 땅굴의 내부가 이제 곧 공개된다. Copyright ⓒ 2003-2007 by 유상준


-계속-

오주한 기자 ohjuhan@hotmail.com
등록일 : 2008-06-0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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