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겨울 기자가 살던 동네에서 있은 일이다.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협동농장의 강냉이짚 무지가 있었는데 그곳은 빌어먹고 사는 꽃제비들의 ‘소굴’이었다. 나이가 일곱 여덟 살 안팎인 그 애들은 빌어먹기도 하고 때로는 도적질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비참하게 연명해 갔다. 밤에는 강냉이 짚 속에서 웅크리고 자면서.
그 애들은 1997년 설날도 그렇게 보냈다. 설이 지난 며칠 후 그 애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동네 사람들이 몇 명 그들이 살던 강냉이짚 무지에 가 보았을 때.
사람들은 강냉이 짚무지 속에서 서로 꼭 껴안고 얼어 죽은 그 애들을 보았다.
어떤 사람은 그 애들이 굶어죽었다고 말했고 어떤 사람들은 그 애들이 얼어 죽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 침울한 어조로 웅얼거렸다.
‘겨울에 죽었으니 얼어 죽었다고 봐야지’
90년대 중반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얼어 죽을 때 김정일 독재정권은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치부했다. 함경남도 고원군과 평양시 간이역(기차분기점. 기차 길이 여러 지역으로 갈라지는 곳) 같은 곳에서는 하루에도 몇 십 명씩 죽는 어린 꽃제비들을 사체실에 냉동했다가 한차가 되면 한 번에 내다 묻어버리곤 했다.
죄라면 태어난 것이 잘못인 어린 꽃제비들, 그 애들에게 겨울은 죽음의 계절이었다.
북한에서 겨울은 봄을 기다리는 희망의 계절이 아니라 굶주림과 추위에 떨어야하는 악몽 같은 계절이다.
한국 사람들은 탈북자들의 이런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이유는 사람 사는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믿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왜냐하면 사람 사는 세상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집적 보아왔던 사람들은 지금도 겨울이 오면 기분이 울적해지는 것을 느낀다.
진선락 기자 dmsgur325@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