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들은 전쟁을 원한다”

지난해 12월 강행된 화폐개혁 이후 북한이 처한 오늘날의 생생한 상황이 북한 방문이 잦은 한 재미교포에 의해 드러났다.

신분이 드러나기를 거부한 H씨는 12일 문서 형태로 본 방송에 전달한 체험기에서 “북한 주민들은 전쟁을 원하고 있다”며 “어차피 식량(사정) 등으로 삶의 희망이 없기 때문에 전쟁이 나면 달라지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과거와 달리 통제에서 벗어난 주민들의 이러한 생각에는 중앙정권의 약화된 권력이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H씨는 “(화폐개혁 이후) 주민설득을 위해 중앙당에서 오히려 지방당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며 “김정일은 뒤로 빠진 채 박남기 총살형으로 여론무마를 시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남기 전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은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지난 3월 총살당한 것으로 본 방송 보도에 의해 드러났다.

H씨에 의하면 화폐개혁 이후 북한 내부 상황은 통제불능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 경제가 10~15년 전으로 후퇴했다고 보는 시각이 만연하며, 국가유공자인 6.25참전용사들의 불만 표출도 나타나고 있다.

2012년 강성대국 건설 정책도 별다른 효과를 낳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심지어 많은 당 간부들도 중국 등을 방문해 자유로운 삶과 시장에 넘쳐나는 물건들, 특히 전기사용 능력을 목격하고 자신들이 정권에 속았음을 실토하고 있다.

사회혼란에 따른 강도 및 절도 등 각종 범죄도 성행하고 있다. 또한 지난 7년간 매년 찾아온 흉년이 식량난을 가중시켜 한 집에서 부모자식이 부엌을 따로 쓰고 식량도 나누어먹지 않는 패륜적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때문에 노인들은 다량의 얼음(마약)을 자살용으로 항시 소지한다.

평양에서도 경제난이 피부로 와 닿는 상황이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가정은 아파트 지하 보일러실 등에서 기거하고 있으며, 이를 단속하는 당 간부들에게 집단항의하는 현상도 처음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경지역은 자본주의가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 북중(北中) 국경지역에서는 밀거래가 성행하고 있으며,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분위기이다. 군부(軍部)도 체제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돈벌이 개념으로 이를 통제하고 있다.

하지만 약화된 권력에도 불구하고 정권의 대응 또한 빨라지고 있다. 해외 주재원들의 이탈 가능성 때문에 자녀들의 귀환을 지시하고 있으며, 시장의 급작스런 붕괴로 민심이 악화되자 다시 시장 상거래를 허용하는 한편 중국 등지로부터의 식량 수입을 승인하고 있다.

전쟁을 원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희박함을 알기에 주민들의 절박함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H씨는 “(외부에서) 들어온 식량들이 당 간부, 군량미 비축 등으로 돌려져 실질적으로 주민에게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많은 주민들이 남한의 원조에 대해 부정적 입장”이라며 “따라서 지금처럼 살다가 당과 함께 망하면 후손들은 잘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많다”고 밝혔다.

H씨에 따르면 북한정권이 화폐개혁을 실시해 이처럼 몰락을 자초한 것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작용했다.

중국 단둥(丹東)과 북한 신의주 등을 통해 상품이 대거 유입되면서 시장이 활성화되어 최고 10만 달러 이상의 재산을 소유한 신흥 부유층(중산층)이 등장하고, 체제에 대한 불신으로 주민들이 현금을 자택에 보관하는 현상이 늘어나며, 탈북자들이 송금한 현금이 시장에서 유통되고, 여기에 더해 정권의 재정 및 식량부족 등으로 배급이 어렵게 되자 화폐개혁을 단행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북한 정권이 그나마 지탱하고 있는 원인은 중국이다. H씨는 “중국이 북한 붕괴를 막기 위해 민간 영역에서의 시행을 조건으로 100만 달러를 지원하고 있다”고 밝히며 “중국의 대북 지원이 지속된다면 북한은 어느 정도 식량난을 해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에 진출한 국내 모 은행권 관계자는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에 1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한 기업이 100여곳이 넘는 곳은 중국밖에 없어 향후 중국이 북한 시장을 장악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H씨는 “북한은 급변사태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며 “건강 악화로 김정일의 대외활동이 어려워지거나 경제파탄으로 수습이 불가능해질 때 혹은 정보통신 기기의 발달로 외부정보가 무제한 유입되거나 핵 관련 유엔제재의 지속으로 대내외적 심각한 문제 발생할 때 급변사태는 일어날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정권은 3대 세습체제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H씨의 추정에 따르면 천안함 사건의 범인은 북한 정권으로서, 이를 후계자의 업적으로 돌리는 한편 민심 수습과 해군 사기양양까지 도모하기 위해 저질렀다.

잦은 북한 출입으로 북한 내부사정을 꿰뚫고 있는 H씨는 남한의 대북정책이 달라져야 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민간 차원의 대북전단 날리기는 매우 효과적”이라며 “풍선 안에 달러가 들어가 있어 주민들은 발견하면 신고 대신 집으로 가져가 읽고 있다”고 대북전단 등으로 북한을 내부에서부터 붕괴시켜야함을 촉구했다.

또 “남한 드라마와 광고방송 등을 통해 남한의 부유함을 간접 인식하고 있다”며 “시장에서도 남한 상품이 노골적으로 판매되고 있어 중국산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가격에도 인기가 많다”고 대북방송과 상품유입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오주한 기자 ohjuha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