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사람의 죽음이 살아 있는 자들을 짓누른다. 그러나 그 안타까운 죽음을 놓고도 꼴사나운 정쟁 부추김은 계속되고 있다. 망자(亡者)와 남은 가족들에 대한 극락왕생이나 천국으로의 인도, 연민의 마음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너 죽기 아니면 나 살기’ 식 논리만 보일 뿐이다. 국가 안위나 국민안보를 위한 대의의 절대 가치는 아예 없어 보인다.
국가정보원이 해킹프로그램을 이용해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야당의 의혹제기가 이어진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국가정보원 직원에 대한 얘기다. 오늘(20일)도 정치권의 설전은 그치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은 대북 방어용으로 국내 민간 분야에는 사용하지 않았다는 국정원의 해명이 있는 만큼 정쟁을 중단하고 진상 규명이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새정치연합은 해킹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국정원 직원의 자살로 민간인 해킹 의혹이 더욱 짙어졌다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음모론’까지 등장하고 있다. 야당은 국정원이 ‘카카오톡 해킹’ 등 국민들을 무차별 해킹하고 사찰한 증거를 지우기 위해 담당 직원이 자살하고 증거를 없앴다는 주장이다. 이 무슨 해괴한 언사인가?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사찰? 사찰에 대한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한 사람의 소중한 인명이 죽음으로 대신했다는 얘기라는 말인가?
유서 내용 중에 “…외부에 대한 파장보다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혹시나 대테러, 대북공작활동에 오해를 일으킨, 지원했던 자료를 삭제하였다…”는 부분이 발표되자 완전 드잡이에 나선 격이다. 그러기에 국가정보원의 해킹 프로그램 구매 및 소위 야권이 주장하는 민간사찰 의혹과 관련해 전방위적으로 나선 야권의 행보가 이례적이라는 평도 나온다.
복잡다단한 현대사회, 상대방이야 어찌되던 말든 내 이익만 관철되면 그만이라는 이기심이 팽배한 세상에서 나 자신의 사고와 관념, 행동방식을 달리하는 한 국가기관원의 죽음 앞에 얼마나 애도의 마음이 깊을 수 있을 것이며, 설령 있다 하더라도 행동으로 의사를 표시할 수야 있겠는가만 그럼에도 허언일지언정 한번이라도 고개 숙여 애도의 마음을 가지보지는 못했을까?
국정원 직원들은 19일 ‘동료 직원을 보내며’란 보도자료를 통해 시린 마음을 토해냈다. 이 보도자료에서 표한 것처럼 “사이버 작전은 극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매우 민감한 작업이다. “안보 목적으로 수행한다 하더라도 이것이 노출되면 외교 문제로도 비화될 수 있다. 그래서 국가안보를 지키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대상으로만 조심스럽게 사용하고 있다”고 밝힌 면에서 보듯 고도의 정보업무를 수행하는 국정원 직원들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는 국민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상상 이상의 고충과 고행이 따른다는 것임을 간접적으로 일깨워 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사회 실상은 이와는 전혀 대조적이다. ‘국정원’하면 대한민국 최고 권력을 향유하는 기관이자 소위 북한의 ‘5호 담당제’ 식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좌지우지 하는 거대 기관만을 연상한다. 마치 북한의 권력 핵심기구인 국가안전보위부를 떠올리는 것과 같다.
이미 언론을 통해서 발표된 것처럼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보위부)는 군 보위사령부와 더불어 2013년 12월 정권2인자 장성택의 숙청을 주도하고 김정은의 권력체제 구축에 크게 공헌하면서 명실상부한 북한 최고 권력기관으로 부상했다. 주로 체제 안정을 명분으로 3대 세습의 권력기반을 다지는데 핵심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나 보위부는 체제 유지의 최일선인 만큼, 고도의 보안이 생명으로 북한 내에서도 매년 개최되는 최고인민회의의 국가기관 개편 내용 발표 대상에서도 제외돼 일체의 변동사항을 쉽게 확인할 수 없는데서 알 수 있듯, 북한 권력체제의 핵심 중 핵심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국가의 중대사,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주요 핵심 사안을 다루는 국가정보원에 대해 우리 스스로가 보호코자 하는 보호의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어떻게 하면 더 큰 의혹을 발하고, 까발리며 발가벗겨 진탕수렁으로 내몰 수 있을 것인가에 더 몰두하고 골몰하는 것만 같다. 일부 종북좌파 시민단체가 그렇고 일부 정신 나간 정치꾼들이 그러고 있다.
다시 국정원 직원들의 얘기로 돌아가 보자. “일부 정치인들은 이런 내용(국가기밀과도 연관된 사항)을 모두 공개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근거 없는 의혹을 입증하기 위해 국정원이 더 이상 정보기관이기를 포기하라는 요구와 같습니다. 국가안보에 어떤 해악이 미치는지에 대한 고려는 없습니다. 국정원은 이미 우리 국민에 대한 사찰이 없었음을 분명히 했고 정보위원님들의 현장 방문을 수용했습니다. 이미 합의한 절차에 따라 조용히 확인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국정원 직원도 민간인 사찰의 엄중함을 야당의원들 이상으로 절감하고 있으며, 새로운 국정원法으로 내부 통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가장 현실적인 꼬집음이자 대부분 국민들이 수긍하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야당 의원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믿지 않는 것이다. 아니 터럭만큼도 믿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이다. 국정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 항용 나오는 얘기가 있다. 고개부터 먼저 갸우뚱해 한다. 믿지 못하겠다는 의심부터 하게 된다는 얘기다. 왜 그런가? 이유는 자명하다. 과거 지난 정부를 통해 국정원 전신의 정보기관은 국가권력의 정점에 위치했다. 국민의 안위에 앞서 정권의 눈치, 정권유지를 위한 역에 더 큰 역할을 했다는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곱게 볼리 없었다.
하지만 시대는 흐르기 마련이고 변화는 있기 마련이다. 정보기관 자체가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당연히 변해야 산다. 변화의 시류, 물결도 거세게 불어 닥치고 있다. 정권이 변하고 국민이 변하고 있다. 무엇보다 국민의 눈높이가 달라지고 있다. 북한체제와 같이 극을 달리한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과거와 같은 정권 유지차원의 정보기관은 더 이상 존속하기 어려우며, 존재의 가치를 논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국가안보는 어떤 경우에도 단 한시 한눈을 팔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는 자꾸만 역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고자 하는 부류들도 존재한다. 국정원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거나 역사를 거슬러 퇴보를 하게 된다면 전체 국민의 힘으로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전체 숲을 보지 못하고 한그루 나무, 그것도 잎사귀만을 보고자 한 대서야 되겠는가?
국회의원은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헌법기관이다. 잘잘못을 냉철하게 따지고 확인해야 함은 국회의원의 책무다. 중요한 것은 자당(自黨)의 이익 논리에 앞서 국가이익을 우선 챙겨야 한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이탈리아 해킹팀 社로부터 우리 국정원이 구입한 것과 같은 프로그램을 35개국 97개 기관이 구입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각 국의 기관들은 모두가 조용하다. 우리나라처럼 의혹이나 논란 자체가 없거나 아니면 그들 나라에는 국회의원이 없어서 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걸 보노라면 대한민국은 참 대단한 나라라고 할 밖에.
“자국(自國)의 정보기관을 나쁜 기관으로 매도하기 위해 매일 근거 없는 의혹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나라는 우리 밖에 없다” 자조서린 얘기를 우리 대한민국 의원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못내 궁금해진다.
북한의 사이버 전 능력은 미국의 CIA를 능가할 정도로 포괄적이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북으로부터 수차례 받은 디도스 공격을 통해 생생히 체험한바 있다. 국정원이, 해킹 강자인 북한정권을 상대로 사이버전을 벌이려면 우리 스스로의 역량을 갖추어야 함은 물론, 북에 상위하는 전문 해킹수준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우리도 이제 국가이익을 먼저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 (konas)
이현오(코나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