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칼럼]북한 금강산 온정리에서 연탄보일러 1,000개 전달
3월 29일부터 3월 31일까지 3일간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새천년생명운동본부 자문위원 자격으로
연탄보일러 1,000세트를 전달하는 행사에 참석하고,
북한서민들의 생활실태를 파악하는 것이 방문 목적이었다.
방문 이틀째인 3월 31일 오전 9시 40분에
금강산호텔 2층에서
북측의 금강산관광총회사 과장 등 3명과
우리측 새천년생명운동 김흥중(목화정공 사장)이사장과
국회의원 이재오, 배일도, 김애실과 나, 4명 등
20여명이 회의를 했다.
회의를 마치고 우리 일행 27명은 버스를 타고
금강산관광지를 벗어나 검문소를 통과하여
인근 온정리마을에 있는 북한 금강산관광총회사 마당으로 갔다.
2구3탄 연탄보일러 1,000대를 싣고
남쪽에서 막 도착한 25톤 트럭 4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측은 플래카드도 내걸고 주민들이 박수를 치는 가운데
전달식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북측에서는 우리가 만들어 간 플래카드를
세관에서 압수해버리고 돌려주지 않았다.
주민들은 단 한사람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철저하게 격리시켜버렸다.
너무 비인간적인 데 충격을 받았다.
북측 담당자 조차도 전달트럭 앞에서
우리와 사진 찍는 것을 부담스럽게 받아들였다.
2억 5천만원 어치나 되는 엄청난 물량의 연탄보일러를 전달했으나,
우리는 단 한사람의 주민으로부터도 박수 한번 못 받았다.
슬펐다.
안타까왔다.
전달식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사진하나 찍고 인수증을 받은 다음
그 전에 제공되어 설치되어 있는
연탄보일러를 둘러 보았다.
날씨가 따뜻해졌다고 하여,
불은 피우지 않았으나
요긴하게 연탄보일러를 쓰고 있었다.
오후에는 고성읍내에 있는 현대아산의 영농장에 갔다.
북측군부에서는 요즈음 공개처형 테이프 때문에
신경이 몹시 날카로와져서
초청장에 나와 있는 12명 이외는
단 한사람도 더 못간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27명이었는데 누가 빠질 것이냐하는
어려운 문제에 부딪쳤다.
분위기는 무겁고, 야속하고, 미안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북측에서 제공하는 작은 승합차로 갈아타고
우리 13명은 금강산관광지구를 벗어나
고성읍내로 갔다.
고성읍내를 다 통과한 다음에
현대영농장이 있었다.
우리가 보낸 연탄보일러가 설치되어 있는
영농장에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 한분 만
우리를 맞이했다.
나머지는 모두 들판에 나갔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도 우리 일행은 주민을 만날 수 없었다.
명함을 주어도 도로 돌려주었다.
모두들 눈치를 보면서 명함을 돌려줄 때면
우리도 난처했다.
고성읍내는 마침 장날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길게 줄이 늘어져 좌판을 벌여 놓았으나
멀리서 보니 물건이 없고
거의 모든 사람의 옷이 검은 계통색이었다.
아낙네들은 두꺼운 마후라를 머리와 목에 두르고 있었다.
원산 가는 고속도로 위에는 차를 보기 어렵고
트랙터 한대가 남녀노소 15명 정도를 태우고 천천히 지나갔다.
빨리 가는 트럭화물칸에는 20여명의 남녀노소가
빽빽하게 타고 갔다.
자전거가 여러대 다니는 편이었다.
그러나 베트남의 자전거에 비하면
1,000분의 1도 되지 않을 정도다.
"구보로 달리자!"는 구호가 고속도로에 표지판으로 돌에 새겨져 있었다.
고속도로 위에 차는 보이지 않고
걸어 다니는 사람이 가장 많다.
등짐 진 사람이 많았다.
땔감을 지고 가는 아낙네들도 많았다.
땔감이라고 해봐야 회초리보다 조금 굵은 나뭇가지 10여개를
등에 지고 갈 따름이었다.
등짐을 지기 위해 보따리를 메고 가는데
넣을 것이 없어 무거운 짐진 자는 보기 어려웠다.
작은 손수레를 끄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그러나 수레바퀴에는 고무가 없고,
바퀴도 접시만큼 자그마한 것이었다.
손수레에 실을 물건이 있어야지.
고성읍내에는 "국수집"(냉면집), "아동리발관",
"미장원", "복합미생물비료공장"등 간판이 붙어 있으나
장사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도로와 거리에는 여기저기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있다.
어떤이는 도로옆 비탈에 그냥 누워 있다.
그 옷차림이 색깔이 없다.
낡아서 먼지 묻은 것처럼 희끄므레하다.
작은 꼬마들이 땅바닥에서 앉아 있기도 하고
서 있기도 하지만 활기가 없다.
뛰어 놀 힘이 남아 있지 않나 보다.
고성읍에서 금강산관광특구로 돌아 오는 길에
양지마을 연탄보일러 설치 시범가정인
아주머니 집을 들렀다.
30평쯤 되는 규격화된 마을 집이었다.
연탄보일러는 부엌에 설치되어 있었다.
부엌 아궁이는 4개였는데
연탄아궁이 하나만 사용하고 있었다.
바깥 문간방에는 바깥에서 연탄보일러가 설치되어 있었다.
집안의 작은 밭에는 아직 작물이 심어져 있지 않았다.
개 한마리 뿐, 닭은 없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연탄보일러 감사하다"면서
삶은 고구마를 내어왔다.
반가왔다.
내가 오히려 고마왔다.
열등감 때문인지
아무리 가져다 주어도
고마운 표시를 하지 않는
북측의 태도 때문에 절망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돌아 오면서 들판의 철로를 보니
철교 머리 부분에 있던 철로가 홍수 때문인지
엿가락처럼 휘었다.
열차가 다닐려면 얼마나 보수를 많이 해야할지
헤아리기 조차 어렵다.
전봇대에 걸려 있는 전깃줄도 송전할 형편이 못되어 보인다.
비참한 우리 동포들의 삶의 모습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금강산관광특구의 호텔이 편할수록,
나는 견디기 어려웠다.
음식점 고기가 맛 있을수록,
나는 괴로왔다.
관광상품이 화려할수록,
나는 무거워졌다.
교예단의 공연을 보고
음식점으로 들어 오던 길에,
내 눈에는 눈물이 쏟아졌다.
공중에서 그네를 뛰며
초인간적인 묘기를 보여줄 수 있기까지
얼마나 지독한 훈련이 있었을까?
혹독한 훈련의 비인간적 모습이
나를 울립니다.
남과 북
너무나 먼 당신!
2005. 3. 31 김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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