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항쟁은 1987년 대한민국에서 전국적인 벌인 반독재의 자유민주주의화와 공산민주주의화의 운동이었으며 민중세력은 공산민주주의, 일반국민은 자유민주주의 운동이었다. 그러나 주체가 일반국민이 아니라 386운동권학생에 의하여 움직였으며 그 안에는 주사파가 주도적으로 진행하였다
민중세력의 주도적인 주사파와 그에 속은 일반 운동권학생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독재에 대하여 반독재라는 공산주의 전략전술적인 운동을 하였으며 일반국민은 단순히 독재에 반대한 운동이었다. 공산혁명은 무조직적으로 혁명을 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공산당은 각종악습과 관습을 철폐해야 한다고 하였으며 대한민국의 공산민주화 운동은 독재에 대응해 민주화(속뜻은 공산민주) 구호로 활동하였다. 해방 후 전평을 비롯한 공산주의 집단 역시 민주화(속뜻은 공산민주)의 구호로 활동하였고 이는 공산주의자들의 오랜 전략전술로 레닌은 적과 아군에게 다른 같은 뜻을 가지도록 하였다.
6월 항쟁은 경찰의 박종철 고문치사, 이한열의 시위도중 최루탄을 맞아 사망한 사건으로 전국적인 시위가 발생하게 되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6월 29일 대통령 직선제로 사건을 수습하였다.
그 때 전국적인 시위는 일제히 중단하게 되었으며 대통령 직선제는 좌익의 온상이 되어버린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롯하여 좌익 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을 등장하게 되었다. 6월 항쟁의 결말은 결국 대통령 직선제라는 직접민주주의를 통하여 대통령을 선거하게 되었으나 대학가를 중심으로 좌익에 의하여 좌경화가 된 나라는 결국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친북노선과 386운동권과 맥을 같이 하는 정권이 탄생하게 된 계기를 주었다.
이러한 것을 보면 결국 6월 항쟁이 386운동권의 주사파가 주도한 완벽한 공산민주주의 운동이었으며 효과는 최고치를 달한 공산주의 전략전술이었다.
전교조는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려고 합법적인 YMCA속에서 침투한다. 1981년 YMCA중등교육자협의회(Y교협)의 결성을 필두로 해서 흥사단 교육문화연구회, YWCA 사우회(여교사조직), YMCA 초등교육자협의회 등이 결성하였으며 아직도 좌익의 문화권이 흥사단과 YMCA에 남게 되며 좌익이 침투한 조직을 그들의 세력권 안에 있게 된다.
공개단체와 달리 소모임의 형태를 취하면서 지역별로 만들어지고 이를 지역모임이라고 하였다. 과거 386운동권이 교육단체에 침투하여 전략․전술로 전두환 정권의 가시권에서 벋어나려는 일련의 행동이었으며 지역모임을 실천을 매개로 퍼져 나갔다.
전교조는 지역모임을 통하여 이론적인 토대를 만들었으며 당시 교과서분석 사건, 민중교육지 사건, 민교투 사건 등이 일어났다. 이들은 이것을 보고 공안탄압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공안탄압이라고 하는 것은 전형적인 공산주의자들의 인식에서 비롯된다.
해직교사들은 기존교사들이 할 수 없었던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자 이론을 만들고 다듬기 시작하였으며 넓혀나갔다. 이들은 학교현장에서 모듬활동, 학급문집, 놀이지도 등을 개발하고 교육권(국민교육권, 교육의 3주체론)과 교사관(교육노동자관, 전문직 노동자관, 국민의 교사관)에 관한 논의를 통해 운동 이념을 만들어내고 이적이념으로 판명된 삼민이념을 교육론(민중교육론, 민족교육론, 민주교육론)으로 운용하였다.
1986년 5월 10일 전교조는 『교육민주화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교육민주화 선언에서 정치적인 중립을 내세우나 이는 좌익 전교조의 전략이었으며 선언 이전부터 공산주의가 개입된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즉 정치적 중립을 내세운 것은 명분에 지나지 않았으며 좌익 전교조의 ‘강령․규약해설’에는 『㉣ 과제 4: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한 민중의 정치세력화(궁극적으로는 정당 건설)』명시하여 스스로 정치적인 집단이 외부를 속이고 교육민주화선언(교육공산민주화 선언)이 전략적인 구호에 지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1986년 5월 10일 교육민주화 선언(교육공산민주화 선언)에 이어 같은 해 6월 항쟁이 맞이하게 된다.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은 1989년을 시작으로 386운동권이 교육계 침투하여 조직화된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게 되었으며 1987년 전두환 전 대통령은 88올림픽 개최를 이유로 호헌조치를 발표하며 이에 대하여 전교조는 정치적 중립성을 제창한 교육민주화 선언(교육공산민주화 선언)의 1주년을 맞이하여 “정치민주화 없이는 교육민주화가 불가능하다”는 전략․전술적 시국선언을 한다. 이것을 보면 2009년 서울대의 민교협과 전교조의 시국선언(망국선언)은 과거 1980후반의 선언과 전략전술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좌익 전교조는 변화된 정세에 대응하기 위하여 합법적인 결성을 원하게 된다. 1987년 9월 27일 전국전인 통일 교사단체인 전교협(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사협의회)을 결성한다. 좌익 전교조는 교육악법개정운동 전술을 대대적으로 전개해 나가며 ‘교사는 교장의 명을 받아 교육한다“(교육법 87조) 명시된 법을 봉건적인 독소적인 요소로 보고 운동하여 제거하고 교사의 노동3권의 보장, 교육위원의 주민직선과 교사의 교육위원 피선거권 부여, 교장의 선출임기제, 교무회의의 의결기구화, 사립교원의 신분 및 권리 보장을 위한 인사위원회와 징계위원회의 구성, 국정교과서제도 폐지, 학생의 자치활동권 보장과 징계시 변론권 보장 등을 주요한 내용으로 하여 전략전술적인 치밀함을 더하였다.
1988년 전교협은 38,643명의 서명을 받은 교육법개정안을 국회에 청원하고, 11월 20일 여의도 광장에서 “참교육실천을 위한 전국교사대회”를 1만여명의 초 중 고 교사와 2천여명의 사범대생, 유치원교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개최하였다
공산주의 전략인 기본방침으로 일부사학의 비리에 대하여 척결을 외치고 민주화(공산민주)를 이루기 위한 투쟁으로 전개한다. 이들은 학교운영에 있어서 족벌체제구축, 교사의 편법채용, 교직원의 봉급착취, 단체행사비의 착복, 정원 외 입학생모집 등의 사학비리를 해결하기 위해 <사립학교교육정상화추진위원회>를 결성하게 된다.
이러한 오랜 시간의 사립학교에 대한 운동으로 좌익 전권시절 사립학교법이 민주당에 의하여 통과되고 문제로 등장하게 되며 사립학교는 좌익 전교조에 위험을 느껴 단합하는 계기가 되었다.
좌익 전교조는 전교협(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사협의회)의 이름으로 초중고를 중심으로 활동하였고 대학교는 민교협(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민교협은 대학과 사회의 민주화를 실현시키는 사회운동의 일환이라는 거짓구호로 1987년 7월 21일 창립하게 된다. 1986년 3월 28일 고려대교소의 시국선언을 시작으로 개헌논의 개방, 학원자율화 요구선언,1986년 6월 2일 전국 대학교수단 명의로 이루어진 연합시국선언, 1987년 4,13 호헌책동의 철회를 요구하는 대학단위의 교수성명이 이루어지면서 민교협은 전국단위 교수협의기구의 결성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과거 좌익 전교조가 거짓 참교육으로 국민을 속인 것과 같이 좌익들의 용어혼란전술의 대표적인 구호인 민주화(공산민주)에 속아 교사들이 많이 참여를 하였듯이 대학교수들도 참여하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좌익 전교조와 같은 이념을 가진 민교협의 이러한 내용은 공산주의 전략전술과 일맥상통하고 있으며 거짓명분이자 용어혼란전술의 결합이었다. 거짓명분은 민주화(공산민주)이며 전략전술은 계급성과 대중성이었다.
좌익이 주장하는 즉자적 계급(일반대중)과 대자적 계급(조직적이고 의식화된 계급)에서 일반인은 좌익이 보기에는 즉자적 계급에 지나지 않았지만 전교협과 민교협은 대자적 계급으로 활동하였고 당시 공산주의 전략전술을 모르는 정부와 사학 그리고 학교 관계자는 무참히 당 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 민교협은 시국에 대한 견해 표명 및 개혁요구, 교육관련악법 철폐요구, 대학내 부조리 척결요구, 대학별 교수회 결성지원 등을 위주로 하여 이루어졌다. 민교협은 제 2회 정기총회에서 민교협의 활동이 한국사회의 변혁운동에 통합되는 의미있는 활동이 되어야 한다는 결의를 함으로써 전체운동으로서의 사회민주화운동과 부문운동으로서의 대학민주화운동을 연결시키는 중심매체로서의 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을 표방하게 된다.
좌익 전교조 자료에 의하면 민교협의 대학교수들이 전교조에 가입한 교수는 52개 대학에서 475명에 달하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1987년 당시 이정도의 숫자가 전교조에 가입하고 있는 실정에서 2009년은 전교조에 동조하거나 가입한 숫자는 더욱 많을 수가 있다.
규약․규정집 제2장 제6조의 조합원 자격에는 ① 전국의 유치원 및 초·중·고등학교의 교원은 조합원이 될 수 있다. 단, 사용자를 위해 일하는 자는 조합원이 될 수 없다. ② 사범대학, 교육대학 또는 이에 준하는 대학이나 학과에 재학 중이거나 적을 두었던 자 중 조합의 강령·목적 및 사업에 적극 찬동하는 자는 소정의 절차를 밟아 준조합원이 될 수 있다. ③ 퇴직한 조합원은 소정의 절차를 밟아 명예 조합원이 될 수 있다. 고 명시하고 있다.
즉 대학교수도 전교조의 강령, 목적에 적극 찬동하는 자는 준조합원이 될 수 있으며 전교조의 강령, 목적은 공산주의 이념을 가지고 적화통일론에 동조하는 자이므로 현재 전교조에 가입한 모든 대학교수는 서류의 해석상으로 반역자임에 틀림없다.
이번 시국선언(망국선언)이 서울대 대학교수에 이어 릴레이 형식으로 선언을 하는 것은 과거 선언을 통하여 전략적으로 세를 확장한 좌익의 전략전술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특히 서울대 교수는 교소라고 하기에는 낮 간지러울 정도의 수준 낮은 성명서로 망국선언에 동참하였다. 교과부에서 좌익 전교조의 적극 가담자를 검찰에 고발을 한다고 하였는데 대학교수들의 책임은 전교조 보다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교과부는 전교조와 함께 서울대 교수도 검찰에 고발하여 교육자로서, 공직자로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교과부가 대한민국 국가 정통성을 지키고 해맑은 학생의 눈망울을 보고 있다면 반드시 원칙을 지켜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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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자료
노동과 정치, 사회와 문화 제 영역에서 반성은 시작되었다. 1987년의 대선 실패로 군부독재는 이어지고 있었지만 상당히 개량화되고 있었으며, 이미 봄물처럼 터진 노동조합 설립 운동으로 이미 사회적 대변혁은 시작되고 있었다. 블루 칼러 부문 노조를 넘어서서 화이트칼러 노조도 설립되었으며, 국가출연 연구소의 연구원 노조의 탄생은 노동조합 운동이 단순히 노동조건 보호를 넘어서서 사회의 전면적 구조 변혁을 요구하는 이념적 사상적 각성과 궤를 같이 하고 있음을 뜻하였다. 노동조합 운동으로 대변되는 실천과 현장 부문의 반성은 이론 부문의 반성을 촉구하였으며, 그것은 기존 학계를 극복한 비판적 연구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대학강사의 처우개선 및 사회와 교육의 민주화를 취지로 1988년 8월 3일 <전국대학강사협의회>가 결성되었다. 전강협의 다음의 창립취지문은 1987년의 6월 항쟁이 각 분야의 운동을 점화시키고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고 있음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전국의 2만 대학강사들은 민주의 거대한 사회변혁 창조력을 목격하면서 역사적 현실에의 주체적 참여와 이를 통한 사회변혁에의 기여가 우리의 현실적 과제임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존현장이자 연구의 장인 대학사회가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 대학운영의 민주화, 강사에 대한 처우개선 측면에서 일대 변혁이 단행되어야 함을 내외에 천명하는 바이다.” (중략)
이러한 1987년 6월 항쟁을 전후로 한, 교사, 교수, 강사들의 전국적 규모의 조직체 결성은 1989년 5월 2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결성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5.16 군사정권에 의해 <한국교원노동조합>이 와해된 지 30년만에 경찰의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연세대에서 1천 5백여명의 교사들이 모인 채 출범하게 된다, 전교조는 1987년 6월 말에 130개 지회, 600개 분회, 2만 회원이 가입하는 대중적인 조직으로 발전하게 된다. 전교조는 기존의 전교협 가입단체인 지역교협과 미가입단체인 평교사회와 교내의 각종 공개 비공개조직까지를 포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민교협은 전교조 대학위원회에 전교조 부위원장을 포함 임원직을 능동적으로 맡고, 전교조 가입교수가 있는 대학은 빠른 시일 안에 분회를 결성하여, 15개 시도지부에 대학위원회를 두겠다고 밝히면서 교사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한다. 이 당시에 전교조에 가입한 교수는 52개 대학에 475명에 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교조 결성에 대하여 정부 당국은 1522여명의 교사를 파면 해임시키는 극단적인 탄압을 자행하게 된다. 19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이후에 노태우 정권은 기층 노동운동을 탄압하면서, 중산층을 이데올로기적인 공세와 기만적 개량적 제스처로 사로잡아 보수대연합을 실현시키고자 하였다. 1989년 문익환 목사의 방북을 기화로 하여 대대적인 공안정국을 조성하여 사회운동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전개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산층의 대표적 집단이라할 수 있는 교사집단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된 것은 이러한 구도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교원과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나라가 극소수에 불과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반민주주의 수준인 기본적 권리의 보장조차 한국 사회의 지배세력에게는 근본적인 위협이 되었던 것이다. 전교조의 결성선언문은 다음과 같이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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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09-06-20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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