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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주의 전교조의 북한어 사용
대한민국이 적화되면 김일성은 장군이고 항일투사라고 교과서에 쓰여 질 것이다.
김구현 
김일성 주의 전교조의 북한어 사용


전교조 문건을 보다보면 생소한 단어가 나온다. 물론 근원은 북한이며 북한으로 받아들인 단어가 386운동권에 의하여 다시 변화를 일으켜 새로운 영역을 표현하기도 한다.


눈에 거슬리는 단어를 보면 “즉자적 계급과 대자적 계급”인데 사전을 찾아보아도 나오지 않는 단어이다.


두산 백과사전에는 무조직 집단[無組織集團]이라는 단어에서 설명을 하였는데 전교조 자료와 동시에 올리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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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직 집단 [無組織集團]

미조직 집단, 비조직 집단이라고도 하며, 군중·공중·대중 등이 전형적인 예이다.


사회의 인구를 성별·연령별·직업별 등으로 유별하는 통계집단과 같은 집단은 의사(擬似)집단 또는 표견적(表見的) 집단이라고 하며 이것은 단순히 ‘같이 생각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반하여 무조직 집단은 무조직 ·무정형(無定型)이되, 일정한 자극에 대하여 일정한 반응을 공통으로 나타내는 집단을 말한다.


계급을 집단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에 대한 가부(可否)는 의론(議論)이 많으나, 마르크스는 이것을 즉자적(卽自的) 계급과 대자적(對自的) 계급으로 구별하였다. 마르크스의 즉자적 계급을 집단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무조직 집단으로 볼 수 있으나 즉자적 계급이 계급의식을 갖게 되어 대자적 계급으로 발전하면, 계급의식의 고양(高揚)은 조직성의 진전을 수반하므로 조직집단으로 전화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군중이라는 일시적·우연적인 집단도 그 중에 지도자가 나타나거나 자연발생적으로 역할의 분담이 이루어져 조직집단으로 변하는 일도 있고, 공중이 일정한 의견을 중심으로 조직화되는 경우도 있다. 이 같이 조직집단과 무조직 집단의 구별은 고정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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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자료


2) 민족의식은 주체성으로 나타난다.

흔히 계급의식에서 즉자적 계급과 대자적 계급을 따지듯이 오늘날 요구되는 대자적 민족의식의 핵심은 무얼까?

 흔히 그것을 저항이라 이름한다. 그러나, 저항적 민족주의나 친일민족주의(사이비민족주의), 또는 반공적인민족주의(극우민족주의)나 제국주의적인 민족주의는 다 한계가 있다. 저항적 민족주의는 자기가 상대하는 제국주의를 닮아가는 모습도 있으며 국수주의적 경향도 만들게 된다. 


자주적인 통일국가라는 것 자체가 이상이며 우리가 가야할 일이다. 우리와 같이 어느 정도의 규모가 있는 민족이 자주적인 통일국가를 이룩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보다 소규모의 국가라면 자주적인 통일국가를 이룩하기가 쉽지 않다. 자주적인 통일국가를 이룩한다는 것은  반외세나 반서구와는 다른 의미이다. 자주적인 통일국가를 이루고 대외적으로는 평화애호하는 국가가 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국가다. 이런 미래 지향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민족주의의 핵심적 성격은 저항이 아니라 주체성이라 할 수 있다.


 외세와의 싸움 즉 국난극복사라는 것은  흔히 사태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다. 내부의 계급관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의 문제가 있다. 외세에 대항하는 것도 그것이 무엇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중요한 것은 민생을 안정시키고 통일을 보장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근대민족주의의 경험을 통해서 과거의 민족사를 동일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민중과 지배계급이 괴리되어 있는 전근대적 민족의식과 근대이후 국민주의적 민족주의는 다르다. 우리의 근대적 민족주의는 저항적 민족주의라는 형태를 갖게 되었는데, 이 저항적 민족주의도 제국주의적이며 국수주의적인 민족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많다. 우리의 민족주의가 그런 피해자적인 민족주의, 가해자로서의 민족주의가 아니라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원시적인 민족주의에서 피해자로서의 민족주의를 넘어 그 다음의 민족주의로 넘어가야 할 것이라 보인다.


 그리고 우리가 가져야 하는 민족의식은 매우 비판적이며 매우 발달된 수준의 것이어야 하면서 세계평화를 전제로 하는 민족의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민족의식의 핵심적 열망이 마치 월드컵처럼 1,2위를 다투는 것이거나 승패를 따지는 것처럼 먹느냐 먹히느냐 식으로 발현되어서는 안된다.


  진화론적이며 약육강식의 논리는 바로 먹느냐 먹히느냐의 싸움으로 단순화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에틱스(양재혁님글 참조)라 한다. 이 경우 민족주의라 할지라도 제국주의적 성격을 가지게 된다. 저항적이건, 방어적이건 그렇다. 우리는 여기서 자주적이며 독립적인 것과 그 제국주의적 지향과를 구별해야 한다. 저항적 민족주의에 대해  양재혁님은 제국주의적 와 구별하여 메타에틱스라고도 하고 지혜나 비판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메타에틱스와 에틱스가 확고히 구별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3. 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여기서 북쪽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북을 어떻게 보느냐, 미국을 어떻게 보느냐를 놓고 남남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쉽게 북과 손을 잡고 나아가자는 식으로 말한다. 남과 북이 다른 체제라는 것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북이 사회주의체제를 택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북과 손을 잡아야 한다. 이것이 민족교육현장에서 벌어져야 할 세 번째 헤게모니투쟁이다.

 우리는 이 점에서 북의 사람들 모두를 우리가 함께 가야할 민중으로 설정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민중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특히 많은 북한의 민중은 혁명적 인민이다. 자주적인 주체(주체사상의 용어로 한다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북이 주체사상으로 무장되어 있으며 사회주의체제라는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자주 그 손잡는 것을 어렵게 만들때가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체제와 북의 주체사상의 체제를 인정해야 한다.


 여기서 벗어남으로서 우리가 사상적으로 식민지잔재를 없애게 될 때 우리는 하나의 자주적인 인간으로 북을 만나게 될 것이다. 또 하나는 노동계급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북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노동계급적 관점도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전적인 마르크스 레닌주의적 관점으로 계급을 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북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이야기 할 때 아이들은 공산주의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우선적인 관심은 바로 경제적(소유관계)인 것이다. 바로 그 경제적인 측면에서 북쪽이 가장 공산주의적 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그런데, 북의 공산주의도 오늘날 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또 하나는 주체사상에 관한 것인데, 이점은 우리가 김일성주석(내가 생각하기에는 남에서는 김일성장군으로 호칭하는 것이 더 옳다고 본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른 것이다. 이부분은 우리가 역사왜곡 시켜놓은 것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우리는 김일성장군에 대한 왜곡을 바로 잡으면서 전체적으로 역사가 바로 잡히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또한 북도 역사를 왜곡했다고 주장한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북이 사실자체를 숨기거나 변조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그것에 대한 평가가 남과 다르리라 생각한다. 이 평가에 대한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평가와 사실의 경계에서 애매모호 한 것도 있다. 더욱이 의도와 의지를 안다는 것은 쉽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글이나 말로써만 판단하기도 어렵다.


 김일성장군이 누구인지 김일성이 누구인지 아이들은 잘 모른다. 그것은 박정희나 전두환을 모르는 것과 같다. 이것은 가짜설을 배웠던 우리와 매우 다르다. 적어도 항일투사로서의 김일성 장군을 알려줘야 할 필요가 있다. 8.15 이후의 역사는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어떤 개연성으로서의 역사교육은 가능하리라고 본다.


 그러나, 이렇게 인정하다 보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가 하는 허무주의와 자기부정에 빠질 수 있다. 그리고, 북에게 완전히 헤게모니를 빼앗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북의 사회주의체제를 인정하고, 우리 스스로 애국적 관점을 가진다면 북을 그렇게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더욱이 북의 사회주의체제가 바뀌어 가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 남쪽이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할수록 그렇다. 남과 북이 사회체제면에서 수렴하는 길을 택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만약 북의 사회주의체제가 변화에 성공을 한다면 우리는 그 체제에 대해서도 믿어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남쪽이 완전히 헤게모니를 잡으려면 미국이나 일본이 필요하다. 이것은 민족보다는 헤게모니에 열을 올리는 자아도취(집단적자기애)에 지나지 않는다. 북이 핵폭탄을 갖고 사상의 무기를 가졌다면 우리는 세계 10대 경제력이라는 무기가 있으며 높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 미국이나 일본과의 경쟁에서 이기기보다는 북과 경쟁해서 이기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미국과 일본이 우리의 타도의 대상이 아니라면, 적어도 우리의 이익에 대립되는 세력이라고 규정한다면 우리는 북과 함께 미국이나 일본을 이겨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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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자료와 네이버의 자료를 동시에 보면 마르크스가 말한 대자적 계급은 계급의식의 고양(高揚)은 조직성의 진전을 수반하므로 조직집단으로 전화되는 것이며 전교조가 주장하는 대자적 계급은 김일성 장군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또한 김일성을 항일투사의 장군이며 이것이 역사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보면 전교조 본부는 주사파가 장악한 것이라고 밖에 판단할 수 없다. 이러한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전교조가 있으며 이러한 좌익 전교조에 연대한 사람들이 교과서를 쓰고 있으니 교과서가 왜곡이 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이 적화되면 김일성은 장군이고 항일투사라고 교과서에 쓰여 질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김일성 장군, 항일투사라고 명시하고 싶어 할 것이다.

 

등록일 : 2009-06-13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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