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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장군이라 부르는 전교조 빨갱이
김구현 

김일성 장군이라 부르는 전교조 빨갱이

 

전교조 자료에는 그냥 김일성, 김정일이라고 하는 것이 없다. 김일성 장군 아니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는 그냥 부른다.

아무튼 전교조가 왜? 주사파인지 하나의 자료를 첨부한다. 설명보다는 증거가 설명을 필요 없게 만든다.

 

http://cafe.naver.com/antieduhope

http://redout.kr/index.html

전교조 없는 맑은 세상을 위하여


아래는 전교조 자료

날짜 : 2005년 5월 6일

주체 : 참교육 연구소

작성자 : 오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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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시대 민족∙통일교육 정립을 위한 ‘민족의 진로와 금강산이 여는 길’토론회

1차 민족교육 이념 재정립과 민족적 관점에서 금강산 새롭게 보기


  1차 토론을 진행한 사회자가 나왔던 이야기들을 나름대로 정리해서 하나의 틀 속에 넣었습니다. 내용이 빠지고 논리전개상의 어색함은 계속된 토론을 통해서 수정, 보완해 나갈 것입니다.

  앞으로 토론이 끝나면 토론자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은 나름대로 정리한 것을 올려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발제자들은 이렇게 토론을 정리한 것을 보고, 글을 보완해서 완성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통일문제를 논하는 자리에서 출발은 민족일반이 아니라 우리민족이다.


 민족일반에서 출발하기보다는 우리민족에서 출발함이 옳을 것이다. 이것이 민족교육현장에서 요구되는 첫 번째 헤게모니투쟁이다.

 

  민족국가건설은 단군조선때부터인데 이 당시 민족의식에 입각한 국가건설이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른다. 단군조선이후로는 그런 민족적 관점이 지속되었다는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선반도에 흩어져 살던 우리민족은 단군조선이라는 공통된 조상에 대한 인식은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공통된 조상에 대한 의식이 곧 민족의식은 아니다. 특히 신라-발해로 양립했을 때만해도 민족적 발언(공통된 뿌리에 대한 공유)의 흔적이 있으며  고려때는  공통된 조상에 대한 의식을 바탕으로 한 통일국가의 수립이 이루어졌다고 생각된다. 후삼국의 정립자체에서 보듯이 같은 조상이라고 같은 나라를 세우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의 민족형성은 이미 오래전에 있었던 것이다.

 

 소위 통일신라라고 일컬어지는 대신라(후기신라)가 점령이 아니라 통일이라는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이것은 통일이라 할지라도  오히려 지역세력의 각축전에서 승리했음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고려이후로 민족국가는 조선반도에서는 확고한 역사적 단위로서 즉 운명공동체로서 이어져 내려왔다. 계급적 갈등이나 지역적, 사상적 갈등이 있더라도 그것은 민족이라는 틀안에서 이어져 내려왔다. 우리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 탐라, 가야 또는 우산국 같은 틀에서 벗어나야 했다. 이 운명공동체 속에서 그 누구도 분리 독립할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언어적으로, 혈연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하나가 되었고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정치경제단위를 만들어 왔다. 

 

 첫째, 고려이후 우리는  소위 단일민족이라는  혈연공동체를 이루어왔다. 혈연에 대한 의식은 조상이 같다는 것과 핏줄이 같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 전달된다. 조상은 과거의 일이며 핏줄은 바로 현재의 일이다. 그러나, 이 핏줄은 혈통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그런 식의 선민의식이나 인종주의가 아니다.

 

 둘째, 반도라는 이 지역적 본토의식이 우리들에게 심어졌다. 만주는 우리민족의  땅으로서 안정적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다. 만주를 안정적 자기 본토(강토)로 인식한 민족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셋째, 우리에게는 하나가 되고자 하는 민족의식이 있다. 민족의식이란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려는 의지를 뜻한다. 우리는 민족이 있었고 그런 민족이 국가를 형성하고 그 의지를 이어왔다. 같은 민족에 대해 타 민족보다 친밀감과 동포애를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것은 자민족보호니 대한국주의니 해서 일종의 팽창주의노선을 택하는 제국주의와는 다른 것이다.   

 

 넷째, 문화, 사상, 예술의 측면에서 유불선이나 근대이후의 서구사상이 도래하기 전에 우리 나름의 전통이 있었고 한글창제이후에는 언어상으로도 남과 나를 분리시키고 비교함으로써 자기자신을 규정하는 문화적 독자성은 계속 이어왔다. 언어는 특히 자신의 고유성을 강화시킴으로써 민족적 특수성의 구심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2. 우리에게 필요한 민족의식은: 정체성, 주체성, 운명공동체성


1) 민족의식은 민족적 정체성으로 나타난다.

 우리의 민족의식은  맹목적적인 패거리로서의 우리라는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쩌면 우리가 민족이라는 것이 우리가 현재의 패거리의식을 과거에 투사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것은 매우 낮은 단계의 민족의식이다. (이 단계를 양재혁님은 즉자적 에토스나 모랄이라고 한 것 같다)

 

 원시적 인식수준의 우리라는 의식보다는 한 단계 올라간 민족의식이 요구된다. 이 민족의식은 제국주의적, 팽창주의적, 패권주의적 우월성을 뜻하지 않는다.

 

 구성원간에 평등과  민주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서 소속감이 생기고, 우리민족을 사랑하고 우리 민족의 구성원이 된 것에 만족감과 신뢰감을 느끼면 된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국민국가를 형성하게 된다. 이 민족적 집단의식이 바로 정체성이라고 하자.

 

 우리는 자기 자신을 단독자이자, 인류의 한 구성원이자 바로 민족의 한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감출 수 없다. 동포애가 인류에 보다 가깝고, 자기 민족의 일이 다른 민족의 일 보다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인간의 각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각성의 시작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 강토를 중심으로 한 역사가 우리의 역사며 이 강토를  중심으로 한 전통이 우리의 전통이다. 그것은 우리들의 주변에 있던 타자들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우리주변의 이민족에 의해 우리는 이 강토의 주인공으로 인정받았다. 우리의 전통과 역사를 이웃 나라나 민족의 전통과 역사로 만들 수는 없다. 우리가 친일잔재와 식민지잔재를 청산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중화주의, 친일잔재, 숭미주의는 모두가 우리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민족의 자기 정체성에 궁극적인 요소가 아니며 방해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강대국에 의해 강요되고 사대주의자에 의해 이식된 왜곡된 요소를 청산해야 한다.


2) 민족의식은 주체성으로 나타난다.

흔히 계급의식에서 즉자적 계급과 대자적 계급을 따지듯이 오늘날 요구되는 대자적 민족의식의 핵심은 무얼까?

 

 흔히 그것을 저항이라 이름한다. 그러나, 저항적 민족주의나 친일민족주의(사이비민족주의), 또는 반공적인민족주의(극우민족주의)나 제국주의적인 민족주의는 다 한계가 있다. 저항적 민족주의는 자기가 상대하는 제국주의를 닮아가는 모습도 있으며 국수주의적 경향도 만들게 된다. 

 

자주적인 통일국가라는 것 자체가 이상이며 우리가 가야할 일이다. 우리와 같이 어느 정도의 규모가 있는 민족이 자주적인 통일국가를 이룩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보다 소규모의 국가라면 자주적인 통일국가를 이룩하기가 쉽지 않다. 자주적인 통일국가를 이룩한다는 것은  반외세나 반서구와는 다른 의미이다.  자주적인 통일국가를 이루고 대외적으로는 평화애호하는 국가가 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국가다. 이런 미래 지향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민족주의의 핵심적 성격은 저항이 아니라 주체성이라 할 수 있다.

 

 외세와의 싸움 즉 국난극복사라는 것은  흔히 사태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다. 내부의 계급관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의 문제가 있다. 외세에 대항하는 것도 그것이 무엇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중요한 것은 민생을 안정시키고 통일을 보장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근대민족주의의 경험을 통해서 과거의 민족사를 동일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민중과 지배계급이 괴리되어 있는 전근대적 민족의식과 근대이후 국민주의적 민족주의는 다르다. 우리의 근대적 민족주의는   저항적 민족주의라는 형태를 갖게 되었는데, 이 저항적 민족주의도 제국주의적이며 국수주의적인 민족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많다. 우리의 민족주의가 그런 피해자적인 민족주의, 가해자로서의 민족주의가 아니라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원시적인 민족주의에서 피해자로서의 민족주의를 넘어 그 다음의 민족주의로 넘어가야 할 것이라 보인다.

 

 그리고 우리가 가져야 하는 민족의식은 매우 비판적이며 매우 발달된 수준의 것이어야 하면서 세계평화를 전제로 하는 민족의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민족의식의 핵심적 열망이 마치 월드컵처럼 1,2위를 다투는 것이거나 승패를 따지는 것처럼 먹느냐 먹히느냐 식으로 발현되어서는 안된다.

 

  진화론적이며 약육강식의 논리는 바로 먹느냐 먹히느냐의 싸움으로 단순화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에틱스(양재혁님글 참조)라 한다. 이 경우 민족주의라 할지라도 제국주의적 성격을 가지게 된다. 저항적이건, 방어적이건 그렇다. 우리는 여기서 자주적이며 독립적인 것과 그 제국주의적 지향과를 구별해야 한다. 저항적 민족주의에 대해  양재혁님은 제국주의적 와 구별하여 메타에틱스라고도 하고 지혜나 비판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메타에틱스와 에틱스가 확고히 구별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3) 민족의식은 운명공동체의식으로서 나타난다.


우리민족은 운명공동체라는 의식은 적어도 우리강토에서는 민족이 하나의 역사적 단위였다는 사실에서부터 온다. 또는 우리강토의 역사가 우리민족을 하나의 단위로 형성했기 때문에 우리는 운명공동체다. 민족은 역사의 단위이며 역사와 사회인식의 단위다. 

 

 이 땅의 역사는 다른 나라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의 역사이므로 다른 어떤 역사보다도 우리에게 교훈이 되며 바로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 땅에 살던 사람의 특수성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일반에서 출발하기 보다는 우리민족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맞기는 하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이 강토를 중심으로 살 수 밖에 없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외세니 계급이니 하는 말을 쓸 때도 국가나 민족이라는 단위에서 가능한 일이다.

 국가도 단위가 되지만 민족보다는 공고한 단위가 아니다. 민족이 상상적 공동체일지는 모르지만 그 민족이 현실적으로 하나의 역사적 단위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우리의 역사의 정체다. 그러므로 역사의 단위가 민족이 아닐지라도 지금까지 우리 역사의 단위는 민족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운명공동체로서 민족은 우리들에게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힘을 우리들에게 관철시켜 나간다.

 

 이 운명 공동체 의식이 바로 양재혁님의 글에 나오는 메타에틱스가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저항하는 가운데 싹트게 되는 것이며 저항하는 가운데, 비판과 성찰을 통하여 깨닫게 되는 것이라 본다.

 

 그리고, 이 메타에틱스는 인류애를 지향할 때만이 제국주의적 에틱스로 전락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신의(즉 호혜와 평등)라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데, 그것은 현재로서는 요원하다. 그리고 메타메타에틱스는 메타에틱스를 해체하고 등장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즉, 우리는 민족애를 바탕으로 하여 인류애를 실천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의식속에는 에토스, 모랄, 에틱스, 메타에틱스, 메타메타에틱스가 중층적으로 존해한다. 우리는 이 현실을 인정해야 하며, 어떤 한가지 민족의식만을 고집할 수도 없다. 우리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과학적이고 비판적인 민족의식만 다룰 수는 없다. 문제는, 과학적이고 비판적이며 민중적이며 세계인류를 지향하는 그런 민족의식이 교육현장에서 헤게모니를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민족교육의 두 번째 헤게모니투쟁이다.


3. 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여기서 북쪽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북을 어떻게 보느냐, 미국을 어떻게 보느냐를 놓고 남남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쉽게 북과 손을 잡고 나아가자는 식으로 말한다. 남과 북이 다른 체제라는 것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북이 사회주의체제를 택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북과 손을 잡아야 한다. 이것이 민족교육현장에서 벌어져야 할 세 번째 헤게모니투쟁이다.

 

우리는 이 점에서 북의 사람들 모두를 우리가 함께 가야할 민중으로 설정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민중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특히 많은 북한의 민중은 혁명적 인민이다. 자주적인 주체(주체사상의 용어로 한다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북이 주체사상으로 무장되어 있으며 사회주의체제라는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자주 그 손잡는 것을 어렵게 만들때가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체제와 북의 주체사상의 체제를 인정해야 한다.

 

 여기서 벗어남으로서 우리가 사상적으로 식민지잔재를 없애게 될 때 우리는 하나의 자주적인 인간으로 북을 만나게 될 것이다. 또 하나는 노동계급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북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노동계급적 관점도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전적인 마르크스 레닌주의적 관점으로 계급을 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북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이야기 할 때 아이들은 공산주의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우선적인 관심은 바로 경제적(소유관계)인 것이다. 바로 그 경제적인 측면에서 북쪽이 가장 공산주의적 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그런데, 북의 공산주의도 오늘날 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또 하나는 주체사상에 관한 것인데, 이점은 우리가 김일성주석(내가 생각하기에는 남에서는 김일성장군으로 호칭하는 것이 더 옳다고 본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른 것이다. 이부분은 우리가 역사왜곡 시켜놓은 것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우리는 김일성장군에 대한 왜곡을 바로 잡으면서 전체적으로 역사가 바로 잡히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또한 북도 역사를 왜곡했다고 주장한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북이 사실자체를 숨기거나 변조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그것에 대한 평가가 남과 다르리라 생각한다. 이 평가에 대한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평가와 사실의 경계에서 애매모호 한 것도 있다. 더욱이 의도와 의지를 안다는 것은 쉽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글이나 말로써만 판단하기도 어렵다.

 

 김일성장군이 누구인지 김일성이 누구인지 아이들은 잘 모른다. 그것은 박정희나 전두환을 모르는 것과 같다. 이것은 가짜설을 배웠던 우리와 매우 다르다. 적어도 항일투사로서의 김일성 장군을 알려줘야 할 필요가 있다. 8.15 이후의 역사는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어떤 개연성으로서의 역사교육은 가능하리라고 본다.

 

 그러나, 이렇게 인정하다 보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가 하는 허무주의와 자기부정에 빠질 수 있다. 그리고, 북에게 완전히 헤게모니를 빼앗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북의 사회주의체제를 인정하고, 우리 스스로 애국적 관점을 가진다면 북을 그렇게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더욱이 북의 사회주의체제가 바뀌어 가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 남쪽이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할수록 그렇다. 남과 북이 사회체제면에서 수렴하는 길을 택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만약 북의 사회주의체제가 변화에 성공을 한다면 우리는 그 체제에 대해서도 믿어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남쪽이 완전히 헤게모니를 잡으려면 미국이나 일본이 필요하다. 이것은 민족보다는 헤게모니에 열을 올리는 자아도취(집단적자기애)에 지나지 않는다. 북이 핵폭탄을 갖고 사상의 무기를 가졌다면 우리는 세계 10대 경제력이라는 무기가 있으며 높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 미국이나 일본과의 경쟁에서 이기기보다는 북과 경쟁해서 이기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미국과 일본이 우리의 타도의 대상이 아니라면, 적어도 우리의 이익에 대립되는 세력이라고 규정한다면 우리는 북과 함께 미국이나 일본을 이겨내야 한다.


4. 외세와 반국적 관점에 대하여

 우리가 분단된 것은 외세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 부분을 다음 조영건교수님이 해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있다. 왜냐하면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외세에 의한 것이고 미국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면 우리 남쪽 사람들은 모두가 떳떳하지 못한 존재가 된다는 사실이며, 단순 논리로 한다면 우리는 이미 민족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점이 스스로 모순된 위치에 우리를 놓는다. 그러나 위에서 민족의식이 중층적이라고 했듯이 현실도 중층적이다. 우리의 행동은 단호해야 하겠지만 사태를 풀어가는 데에는 전략전술이 필요하다.

 

 더욱이 미국이 없으면 우리는 살수 없다거나, 북에 의해 우리가 당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신뢰의 문제도 있고, 그래서 우리들 마음 속에는 우리가 먼저고 그다음이 북이라는 의식이 있는 것이고, 이것은 통일에 있어 헤게모니를 북에 빼앗겨서는 안된다는 의식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소위 흡수통일론인데....이런 의식 자체가 문제다.


5. 우리의 민족의식이나 민족교육을 효율적으로 하는 것

1) 미래지향적인 과제를 앞에 놓고 민족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때가 많다.

  구한말과 같은 상황, 강성대국, 경제대국 같은 것을 놓고 이야기하면 아이들은 쉽게 이해한다. 그러나, 현실에 집착하고 분석력이 있는 아이들은 이것을 통하지 않는다. 미국에 대한 의존에서 안정을 찾는다.


2) 친일파문제나 국난극복사 같은 것을 위주로 해서 가르치면 매우 쉽고 효과적이다. 그런데, 이것은 외세와 우리를 단순화시키고 우리가 대립된 외세들을 과거에서 오늘날까지 동일하게 보는 문제가 있다. 타자의 진면목을 볼 수 없게 되고 다양한 우리 내부의 세력들을 단지 외세와의 관계 속에서만 고찰하게 됨으로써 잘못을 범할 수 있다. 또한 이런 관점 중에는 남과 북이 대립된 상황에서 북이 외세를 끌어들이는  반란세력 정도로 보는  견해도 생겨나게 된다. 그러므로 단순히 친일이냐 반일이냐로 갈라치기 보다는 단순히 저항이냐 굴종이냐는 식의 국난극복사가 아니라 남과 북이 어떻게 외세와 관계를 맺어왔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잘못하면 자유주의든, 공산주의든 모든 이데올로기도 그렇게 외래적인 것이 된다. 반도의 삶은 그렇게 단순화시킬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남과 북이 힘을 합치고 전민중이 대단결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 방도가 그려져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내부의 적대세력을 최소화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3) 민족교육은 경쟁주의적이며 입시위주인 사회 즉 다른 식으로 말하면 계급적인 사회에서는 가능하지 않고 분단적이며 분열주의적인 상황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탈계급적인 길을 가면서 분단을 넘어서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바로 그것에 있고 또한 비자주적인 것이 현실이다. 이 현실을 넘어서야 한다. 실제로 우리는 그런 한계를 한계이자 우리의 토대로 인정하고 넘어가야 한다. 영수국 입시위주 교육과 7차교육과정의 논리에서는 민족교육이 상실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학교와 학교밖의 현장에서 우리는 민족통일의 길을 열어가야 한다. 압제를 너머야 가능성이 보이지만 압제속에서 우리는 그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4) 남쪽의 자기정체성이 문제다. 북은 강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음에 반해서 남쪽에게는 우리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남쪽의 사상을 정립해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 점에서, 양재혁님이 남쪽 사상의 핵심인(? 핵심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퇴계와 박종홍을 비판함으로써 시작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탈정치적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탈정치적 관점이면서 항상 시세에 따르는 그런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런 관점은 내부문제에 있어서도 순응적이 되면서 외세에 대해서는 정확한 파악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관점이다. 사상의 핵심은 바로 정치경제임을 좀더 확실히 해야 한다.


6.금강산에 대하여


  우리가 금강산을 이야기 할 때 그것이 우리의 금강산이며 그것이 금강산이 바로 우리 역사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분단과 통일의 길에서 금강산이 무엇인가하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모든 것은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금강산의 의미, 북에 대한 의식을 바꿔야 한다. 우리의식과 더불어 우리의 산하도 다시 태어나야 한다. 금강산을 우리의 정체성, 주체성, 운명공동체성의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하고, 금강산에 대한 의식을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금강산이 남과 북의 헤게모니투쟁의 장이 되어서는 안된다. 남과 북, 우리동포모두가 함께 해서 반도에서 우리민족이 미국을 제치고 헤게모니(헤게모니를 넘어서 자주적통일국가)를 잡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금강산을 미래지향적인 민족의 장래를 꿈꿀 수 있는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금강산에서 좀더 고차원적인 민족의식과 정치의식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금강산에 있는 선인들의 발자취를 통하여 우리의 전통적인 사상과 의식도 모두 재검토되어야 한다.

 

 

 

 

 

등록일 : 2009-05-1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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