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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어미 따라 굶주림의 제물될 아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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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번호 |
102 |
작성일 |
2007-09-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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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청지기 |
조회 |
39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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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기자 방북르포] 다음은 지난 4일부터 나흘 동안 미국 하원의 토니 홀 의원과 함께 북한을 방문해 기근의 현장을 돌아본 미국 <유에스에이 투데이>의 바버라 슬레이븐 기자가 보도한 `기근 현장 르포'를 요약한 것이다. 북한이 미국 기자에게 기아의 현장을 보여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기사는 <유에스에이 투데이> 11일자에 보도됐다.편집자 압록강 근방에 있는 평안북도 용천군 용연리의 한 고아원. 아홉명의 아기들이 낡은 이불 하나를 덮은 채 나란히 누워 있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아기들은 연신 기침을 했다. 두 아기는 발육이 멎은 듯 너무나 자그마했다. 고아원장은 이 아기들이 생후 6개월짜리라고 했다. 아홉 아기의 어머니들은 모두 이번 겨울에 숨졌으며, 이 아기들도 어머니의 뒤를 따라 기근의 희생물이 될 것처럼 보인다. 한국전쟁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는 북한 정부는 마침내 그동안 밖으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기근의 장막을 걷고 있다. 북한은 처음으로 굶주림의 현장을 보여주기 위해 미국 기자에게 방문을 허락했다. 북한의 이런 변화는 절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수만명이 지난 몇해 동안 굶주림과 이와 관련된 질병으로 죽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수천명이 이번 여름을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많은 북한사람들은 굶주림을 극복하기 위한 능력이 거의 끝자락에 이른 것처럼 보였다. 상대적으로 특혜를 받고 있는 평양을 벗어나면 가슴을 저미게 하는 수많은 장면들을 목격한다. ◇ 평양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평안남도 안주시. 철로선처럼 야윈 열네살의 김명혜. 그저 일곱살짜리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 자그마한 소녀는 매일 아침 먹을거리를 찾기 위해 진창의 연못 주위에서 풀을 뜯는다. 우리는 그애처럼 먹을거리를 찾기 위해 헐벗은 들판을 헤매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김명혜와 그밖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은 하루 한끼의 식사를 해왔다. 한끼 식사도 풀과 갈아놓은 옥수숫대, 시래기, 나무껍질을 섞어놓은 것이다. “올해 우리는 6·25전쟁 때보다 더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안주시 부시장인 고천규씨의 말이다. 안주시에 온 마지막 식량배급이 3월26일. 고씨는 다음 배급이 언제 올지 알 길이 없다고 했다. ◇ 평안북도 신의주 밖에 있는 용연의 고아원. 미국 방문단은 눈물과 콧물을 흘리는, 그리고 온갖 피부병에 걸려 있는 갓난아기들을 보았다. 몇몇 아기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마루에 앉아 있었다. 그것은 심각한 영양실조의 한 징후였다. 이 고아원의 원장인 심애순씨는 지난해에는 모두 80명의 고아를 받아들였는데, 올해는 벌써 마흔명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어머니들의 목숨을 앗아간 영양실조가 이제는 그 아기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심씨는 “우리는 지금 먹을것이 필요하다. 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안주 북쪽에 있는 평안북도 박천의 한 병원. 여섯명의 어머니들과 그들의 아이들이 조그만 방에 웅크리고 있었다. 설사와 장염 환자가 가장 많다. 먹어보지도 못한 음식들에다 오염된 물을 마셨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스무명의 아이들이 숨졌는데, “올 겨울에만도 벌써 서른명의 아이들이 죽었다”고 병원장인 탁세경씨가 말했다. ◇ 신의주의 한 병원. 병원 직원들은 환자뿐 아니라 병원 의사들도 식량을 찾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고 있다. 병원장 김진식씨에 따르면 지금은 의사들도 하루에 1백g의 식량밖에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1백g의 식량이라면 겨우 4백50칼로리밖에 되지 못하며, 그것은 성인이 노동을 하기 위해 최소한 필요한 1천5백칼로리의 3분의1밖에 되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병에서 회복되기는커녕 병원에서 과연 일을 할 수 있을지조차 상상하기 힘들다. 미국 방문단이 다녔던 대부분의 건물처럼 이 병원에도 난방은 전무했다. 바깥의 봄햇살에도 불구하고 병원 내부에서는 입김까지 보였다. 한약제 조금말고는 의약품이라고는 거의 없었으며, 항생제도 전혀 없었다. 8백명을 수용하는 이 병원에서 숨지는 사람은 15%로 늘어났으며, 숨지는 사람의 대부분은 노인과 아이들이라고 병원장은 말했다. ◇ 유니세프 대표로 평양에 주재하고 있는 노르웨이 의사인 루나 소렌슨은 지난주 평양에서 북쪽으로 1백50마일 떨어진 자강도 희천을 방문했다. 산업도시인 희천의 공장들은 전력과 원료가 없어 모두 문을 닫았다. 탁아소와 유치원들도 더이상 식사를 제공하지 못한다. 이 도시에 있는 8천8백명의 어린이 가운데 일곱살 이하인 3천4백명이 지금 영양부족으로 성장이 멈추어버렸으며, 특히 1백40명의 어린이들은 매우 심각한 위험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해골같은 모습의 아이들을 열명 보았다. 모두가 맥을 놓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고 소렌슨은 말했다. 많은 외국인과 북한 관리들은 여러해 동안의 영양실조로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북한 농부들이 올 농사를 지을 힘이 남아 있지 않을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이 엄청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북한 사람들이 잘 훈련되고 극기심이 강해 미국 방문단은 놀랐다. 우리가 방문한 모든 곳에서 농부들은 들에서 천천히 움직이며 봄 농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대부분 기계 없이 손으로 일했다. 어떤 곳에서는 손으로 흙을 파기도 했다. 북한을 여행한다는 것은 마치 `시간 캡슐'에 들어가는 것 같다. 넓은 도로에 자동차는 거의 없고 스탈린 식의 기념물이 많은 평양에는 김일성의 큼직한 동상에다 온갖 선전표어들이 걸려 있다. 평양 밖의 인민들은 풀을 찾아 들판을 헤매는데도, 잘 먹인 젊은 아이들은 김일성의 85회 생일 축하를 위해 체조연습을 하고 있었다. 가난과 궁핍을 바깥 세상에 알리는 것은 50년 동안 주체사상을 자랑해온 이 나라에 분명 고통스런 일임에 틀림없다. 외부의 도움이 분명히 필요한데도, 그리고 그것을 그들이 원하고 있으면서도 도시풍의 외교부 관리들은 북한 방문자들이 참담한 장면을 사진찍는 데 대해 매우 당황해하고 화를 내기까지 했다. 인구 30만명의 신의주에는 배급소가 모두 텅 비어 있다. 이곳의 화학공장들은 연료와 원료 부족으로 모두 문을 닫았다. 그래서 공장 일꾼들은 저임금의 중국 하청 일을 맡아 옷을 조립하고 있다고 신의주시 관리인 김석현씨는 말했다. 정리/정연주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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