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잊을 수 없는 중대뉴스는 김일성 사망소식이었다. 조선중앙 TV의 뉴스를 통해 “김일성 주석이 서거했다”고 울먹거리는 북한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사태를 실감할 수 있었다.

당시 북한 땅은 온 나라가 울음바다 속에 잠겨버렸다. 웃어서도 안되고 노래 불러서도 안됐다고 한다. 사람들은 술 먹었다고 잡혀가고 울지 않았다고 비판 받았다. 김일성은 사망했지만 북한주민들은 누구도 그 체제가 붕괴된다고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아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미 권력을 다 장악했기 때문이다.

김일성에 이어 절대권력을 잡은 김정일 위원장의 ‘중병설’이 지난 9월 9일 공화국창건 기념식에 불참한 것을 계기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제 북한내부에도 그 소식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다. 김정일이 사망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김일성 사망과는 달리 북한체제는 급변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로 내정될 당시 김일성 권력의 중심에는 소위 의리로 뭉쳐진 ‘혁명1세대’가 있었다. 김정일을 후계자로 내정하는데 반대했던 제 2인자 최용건 국가부주석은 죽어서 환대를 받지 못했다.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김일성과 혁명1세대는 후계자를 통해 모두가 함께 사는 길을 택했다.

같은 수령의 아들이면서 유력한 후계자의 한 사람이었던 김 위원장의 이복동생 김평일은 먼저 권력을 쟁취하기 시작한 김정일의 지독한 견제를 받아 그의 측근들은 수용소 행(行)을 면치 못했다. 김평일 자신은 해외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며 고독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혁명 2세대의 선택도 김정일의 아들을 통해 자신들의 권력을 함께 유지하려는 마음은 과거와 다를 바 없다. 문제는 김일성 시대와는 달리 김정일 위원장의 폭정(暴政)으로 측근들조차 마음 놓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소통이 단절돼 있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김 위원장에게 바른 소리를 할 수 없다. 무조건 수직적 절대복종 만을 강요한 김정일 시대는 의리로 뭉쳤던 혁명1세대와는 달리 공포로 뭉쳐있다는 특징이 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등 고위탈북자들이 제 2인자인 장성택을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지위에 관계없이 김정일 다음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

그의 부인은 김정일 위원장의 여동생이다. 두 사람의 불화설도 있지만 형식상 지금까지 지내오고 있다. 장성택은 왕자들과도 소통이 가능하고 김정일의 측근들과 일정 부분 소통이 가능하다. 절대권력자 김정일에게 직접 할 수 없는 말은 장성택을 통해 올리는 것은 이미 오래된 관습이다.

때문에 김 위원장은 자신의 매제를 혹독하게 핍박하고 있다. ‘혁명화’를 명분으로 노동을 시키기도 하고 연금상태에 두기도 하지만 그 역시 믿을 것은 가족밖에 없기 때문에 차마 제거할 수는 없다. 김 위원장이 건재할 경우에는 그가 지명한 아들이 큰 문제없이 후계자로 등장하겠지만 지병이 악화된 채로 무너진다면 ‘캐스팅 보트’는 장성택에게 넘어갈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친 절대권력자 김정일의 파워를 장성택이 감당해 낼 수 있느냐의 문제다. 엉뚱한 세력(구 김일성 추종세력)이 실패한 김정일의 아들이 아닌 수령의 둘째 아들 김평일을 내세워 권력을 잡으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분명한 것은 김정일 이후 북한은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으로 결국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주도의 남북통일을 주도 면밀하게 검토하고 실행시킬 만단의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nkc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