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최대 정치범 수용소 가운데 하나인 함남 요덕 정치범 수용소는 ‘혁명화구역’과 ‘완전통제구역’으로 분리돼 있었고 나는 혁명화구역에서 10년(1977~87년)을 보냈다. 그때는 북한사회가 비교적 안정된 시기였기 때문에 정치범들에게 곰팡이 낀 잎담배라도 배급되던 시기였다.

요덕 수용소 혁명화구역에서의 혹독한 생활 속에서도 그곳의 보위지도원들은 “완전통제구역에 안 간 것을 다행으로 알아라. 너희는 낙원에서 사는 것이다”고 말하곤 했다. 가끔 완전통제구역에서 혐의가 해명돼 ‘혁명화구역’으로 넘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이제 살 것 같다는 반응이었다. 도대체 그곳은 어떤 지옥이기에 혁명화구역이 살 만한 곳이라고 하는 것일까? 항상 그것이 궁금했었다. 요덕군 구읍리 임산골 골짜기를 경계로 산 너머 용평리에는 바로 그 지옥의 ‘완전통제구역’이 있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그곳 사람들을 지나치며 본 적이 있었는데 여자는 귀 중간에서 직선으로 머리카락을 자른 상태이고 남자는 산적처럼 머리도 자르지 않고 있어 도무지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었다.

그곳에서는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도 걸지 못하게 한다. 신분증도 없고 학교에서 김 부자(父子) 관련 교육도 없다는 것이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나올 수도 없다. 기계처럼 죽도록 일하다가 죽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라는 말을 들었다.

탈북자 가운데 완전통제구역을 경험한 사람은 1994년 함북 회령 정치범수용소 경비병으로 근무하다 탈출한 안명철씨가 전부였다. 안씨가 증언한 회령 수용소 역시 전부 완전 통제구역밖에 없는 곳이다. 안씨는 그 수용소에서 폭동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을 진압하고 나서 가족들을 분리해 각자 수용될 새로운 곳으로 기차에 실어가는 장면이 마치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 나오는 정치범들의 울부짖음과 흡사했다고 말했다.

얼마 전 북한에서 악독하기로 소문난 개천 정치범 수용소에서 태어나 기적같이 탈출해 한국에 망명한 신동혁씨를 만났다. 그는 어머니가 처형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 수용소 10년 생활 끝에 석방된 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눈물이 나오지 않아 내가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수용소 강제노동을 경험한 동병상련의 아픔은 말을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최근 신씨가 쓴 책 ‘북한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 세상 밖으로 나오다’에서 지옥 같은 정치범 수용소의 실상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전율했다.

그가 수용됐던 완전통제구역은 도덕적 윤리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군인들과 보위원들의 무절제한 성폭력으로 수용소 여자들은 성 노예로 전락해 있었다. 아우슈비츠의 여인들과 매우 흡사했다. 소위 비밀감옥에서 어린아이들을 매달아 놓고 불 고문을 자행하기도 했다. 수용소 전체가 인간 도살장이었고 그곳은 인간이 사는 곳이 아니었다.

신동혁씨를 보며 나는 한참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어릴 적 평양에서의 행복한 추억도 있었고 수용소에 끌려갔지만 가족과 함께 석방되는 행운을 누렸기 때문이다.

14년 전 대한민국에 망명했을 당시 기자회견만 하면 국제사회가 달라붙어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는 없애주는 것으로 착각했었다. 기자회견을 하면서 내내 수용소의 친구들이 떠올랐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긴 꿈에 불과했다. 앞으로 14년이 더 지나면 나아질까? 지금 이대로라면 김 위원장이 사망한 다음에야 수용소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 아우슈비츠에서처럼 사람들이 다 죽고 난 다음에야….

강철환, 북한민주화위원회 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