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 목사님이 순교하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부인 정영화 사모의 인터뷰를 통해서다. 김 목사님과 여러 해 생활해온 나에게 목사님의 순교는 이미 지정된 사실이었다.

목사님을 처음 만났던 때가 1997년 2월. 대련의 어느 음식점에서 만났는데, 탈북 군인이라고 소개하는 나에게 20대 후반가량의 조선족 청년을 안내자로 붙여주셨다. 청년을 따라 한국으로의 밀항을 위해 대련 항으로 갔었다.

비록 밀항에 실패해 중국공안에 붙잡혔고, 강제북송이라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됐지만, 그러한 인연으로 북한을 두 번째로 탈출했던 그해 가을 목사님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북경인근에 교회 같기도 하고 살림집 같기도 한, 처소 같기도 하고 기도원 같기도 한 목사님의 거처지가 있었다. 정영화 사모님과 두 분사이의 귀한 막둥이인 천국이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리고 탈북자들이 있었다. 목사님은 그곳이 처소라고 하셨고, 사모님은 그곳이 기도원이라고 했다. 우리 탈북자들은 편히 모여 살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은신처”라고 불렀고, 중국인 마을사람들은 “쯔워”(돼지우리)라고 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김 목사님과 우리가 생활하던 그곳은 폐기된 돼지사육장이었고, 당시 빈약한 자금으로 북경근교에 선교 지를 물색하던 목사님이 돼지사육장을 개조해 거처 지를 만들었던 것이다.

돼지우리 자리라고는 하지만 그곳에서는 가셔지지 않는 향기가 늘 차고 넘쳤다. 아침마다 정영화 사모님의 “지시”에 의해 탈북자들은 모여 앉았고, 찬송과 기도가 조용한 동네를 흔들어 깨웠다.

일요일은 물론, 수요일과 금요일에도 목사님은 우리를 하늘나라로 인도해 주셨다. 탈북자들은 물론이요, 주변에 갈 곳 없던 한족 아이들도 소문을 듣고 모여들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손 벽을 치며 찬송을 부르고 주기도문을 외우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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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연변조선족 자치주라 일컫는 연변의 한 도시에서 김동식 목사님을 다시 만났다. 중국 공안에서 탈북자들의 은신처로 사용되던 북경근교의 집을 압수했고, 벌금형을 받았다고 하셨다.

마침 주변에 알고 지내던 사람이 건물을 세놓는다고 해, 목사님을 소개시켜 드렸다. 언론에도 언급된바있는 문제의 다방 건물이었다. (이후 목사님은 그곳에 ‘사랑의 집’이라는 간판을 달고 탈북자들의 은신처 겸 자신의 숙소를 꾸몄다.)

현재 한국과 미국등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최영문(가명) 이지민(가명)외 수많은 탈북자들이 그곳을 경유했다. 때로는 북한의 지하교인들이 은밀히 드나들기도 했고, 중국과 북한의 보따리 장사꾼들이 무슨 이야기인가를 나누려 그곳을 찾기도 했다. 미국과 호주에서, 때로는 한국의 선교단체나 봉사단이 통째로 들려 기도회를 갖기도 했다.

은밀히 하는 일이라고 해도 주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목사님의 기도소리는 더 높아갔고, 어느 날엔가는 열한 명의 탈북자들을 이끌고 몽골로 가신다고 하셨다. 몽골의 사막을 넘어, 열한명의 탈북자들에게 자유를 찾아주기 위한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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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바와 같이 김동식 목사님은 1986년에 당했던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으면 걸음걸이조차 힘들어 하는 분이다. 1999년 9월에는 악성 종양으로 전이된 직장을 잘라내고 대신 인공항문을 연결시키는 대 수술을 받기도 했다.

정기적으로 항암치료를 받고 인공항문의 필터도 갈아주어야 하며 특히 필터를 제때에 갈아주지 않으면 체내에 독소가 퍼져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던 분이었다.

인간으로서는 정신력하나로, 선교사로서는 기도의 능력으로 살아간다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던 목사님이었는데 불쑥 "없어졌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내가 한국에 들어 온지 1년이 되던 2000년 1월에 있는 일이었다.

당시 자신의 도움으로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들을 만나기 위해 ‘하나원’을 방문했던 김 목사님은 중국 연길에서 걸려온 탈북자 동정남의 전화를 받고 다시 중국으로 갔다가, 동정남과의 식사(만남)후 실종되셨다고 했다.

동정남이 김 목사님을 유인해 북으로 납치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아는 동정남은 그럴 인물이 못된다. 당시 탈북자의 신분으로 ‘사랑의 집’을 맴돌던 동정남은 다른 탈북자들로부터 이미 전에 수상한 인물로 낙인 되어 있었다.

그보다는 2005년 전향, 대한민국에 입국한 이춘길(35살, 북한 함경북도 보위부소속 공작원)과 지광철 (36살, 인민군 보위부 소속 공작원, 현재 중국에서 철수, 북한 함경북도 행정위원회에서 생활)등 북한에서 파견된 현지 공작원들의 주도면밀한 “김동식 목사 체포 공작”에 따른 납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전 북한보위부 출신 탈북자 이춘길, 그리고 지광철의 주변에서 생활했던 탈북자 최성준(가명)에 따르면 당시 북한당국은 연길과 심양등지에서 활발히 벌어지고 있던 국정원의 대북공작과 기독교 단체들의 선교활동을 동선에 놓고 이른바 “파괴”공작을 광범위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탈북자로 위장한 북한보위부 요원들이 대거 중국으로 침투됐고 “진달래회”와 “북민전”등 당시 국정원의 지원을 받던 중국내 탈북자 단체들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김 목사님이 그들의 시야에 걸려든 것은 어찌 보면 숙명이었다. 동정남은 한갓 이용물에 불과했고 2000년 10월23일 통일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김동식 목사님은 1995년 발생한 안승훈 목사 납치사건 이후 두 번째로 북한으로 납치된 목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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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예까지 끌어오기 위해 먼 추억을 더듬었다. 안승훈 목사님도 북한에 납치된 분이다. 그분을 직접 본적은 없지만 1995년 여름, 북한 노동신문에 실린 그분의 이야기를 읽은바 있다.

당시 노동신문 4면에는 온통, 안 목사님과 관련된 글이 실렸었는데 이름 하여 공화국의 품을 찾은 어느 남조선 목사의 기자회견 내용이었다. 신문에 따르면, 안승훈 목사는 새로운 선교활동지로 중국을 택했다. 그런데 그 중국에서 남조선 안기부 놈들의 공작이 쉴 새 없이 벌어졌는바 “탈북자중 군인, 군관들을 포섭해서 남조선으로 보내라”고 매일같이 협박해 왔다는 것이다.

...진정한 신앙 활동을 위해 “나는 공화국의 품을 찾아왔다”는 활자와 함께 기자회견을 하는 안 목사님 사진이 큼직하게 찍혀 있었다.

북한당국자들의 회유와 협박에 의한 작품인줄 누가 모르겠는가. 백주에 사람을 납치해 놓고 저들의 선전용으로 써 먹는 북한당국의 기만적 술책은 아무리 비난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북한 정권의 통념화된 납치극의 에필로그다.

그런데, 그 에필로그에조차 김동식 목사님은 등장하지 않았다. 다리가 구부려지지 않아 변변히 앉지도 못하고, 항암치료를 받고, 인공항문의 필터를 제때에 갈지 못하면 도무지 정상인일 수 없는 김동식 목사님을 저들의 기만선전에 끌어들이기 위해 노동당의 선전원들과 보위원들은 얼마나 날쳤겠는가.

그들의 악행을 견디지 못해 “주님 나를 거두어 주소서”하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 김동식 목사님의 영전위에 마음의 백합 조용히 얹는다.

김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