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부가 대화에 뛰어든 기본 목적은 경제적 제재 때문이 아니다. 어떤 제재에도 독재자들의 배는 항상 불렀고 인민들을 위해서 경제적 풍족함이 필요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봄바람을 타고 솔솔 불어오는 북한소식이 그 원인을 해명해주고 있다. 요즘 북한에서는 아이들의 입에서까지 미국의 ‘선제 타격론’이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의 입에까지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눈앞에 박두했다고 할 정도로 그 속내가 긴박하다고 본다.

그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내가 북한에 있을 때부터 나오고 있던 말이다. 둘러막힌 병영식 사회 안에서 인민들의 눈을 싸매고 귀를 닫아걸어도 부는 바람은 귓가에 가서 부딪치기 마련이다. 북한사람들은 우리가 모르는 외부세계의 이야기라면 더 귀가 번쩍 뜨여하고 가족들끼리, 지인들끼리 퍼 나르기도 한다.

나는 북한에 있을 때, 평양에서 온 한 중앙당간부의 조카와 여러 번 얘기를 나눈 적 있었다. 그 사람은 군복을 입은 장사꾼이었다. 삼촌의 힘을 입어 군대 내에서 별을 달고 있으면서 직업은 군인이고 내용적으로는 군대차를 끌고 다니며 큰 장사를 하고 있었다. 주로 쌀, 콩 같은 식량을 싣고 와 장마당 장사꾼들에게 넘겨주고 가곤 했다.
 
어느 날, 조직적으로 반 항공훈련을 끝내고 금방 일하는 곳으로 돌아왔을 때 그 사람이 나타났다. 나는 이 기회를 통해 슬쩍 물어보았다.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원래는 누가 이길 것 같은가?” 하고 묻고 싶었지만, 그것은 유일사상체계에 걸리는 말이었다. 당연히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 북한이 이긴다는 말을 해야만 하기 때문에 그렇게 들러댔다. 그 사람도 “당연히 미국이다” 이렇게 말하지는 못하고 “미국 놈들의 무기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한 개만 떨어져도 우리가 싹 없어지고 말아” 라고만 했다. 북한사람들은 현대전이 일어나면 잿가루만 남는다고 인식하고 있다. 얼굴을 보니 감히 미국에 대들었다가 우리 같은 나라는 아주 잿가루가 되어 버리고 만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런 말을 듣는 기회는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여러 번 있었다. 이것을 볼 때 이미 북한정부는 미국을 두려워한 지 오래다. 하지만 국제적인 압박의 수위가 물리적 행동이냐, 아니면 말뿐이냐에 따라서 북한정부는 마음 놓고 허세를 부렸을 뿐이다. 북한에서 돌아가는 비밀스러운 말들은 주로 중앙당 간부들에게서 새어 나온다. 그 사람은 나라가 뒤숭숭할 때마다 중앙당에 있는 삼촌에게 전화로 물어본다고 한다. 그러면 삼촌이 말하기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너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돈이나 실컷 벌어서 잘살아라”라고 한다고 한다.  
  
나는 어제 이라크 전쟁의 산 증인인 한 장군을 만났다. 기사를 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잠시 시간을 냈다. 그분은 “북한은 절대로 미국의 상대로 될 수 없어. 미국의 무기는 중국에도 없고 러시아에도 없다. 북한이 시작하기 전에 이미 미국이 끝낸다”라고 하셨다. 북한에서 들은 말과 비슷했지만 산 증인의 말은 어떤 치명적인 몽둥이로 내 머리를 강타하는 것 같았다. 확신이 나름대로 더 강하게 떠올랐다.

여기서 한 가지 놓치지 않고 싶은 것이 있다. 북한사람들의 전쟁 개념이다. 20여 년 전부터 “고난의 행군”, “강행군”이라는 죽음의 행군 해오면서 입에 달고 있는 말이 있다.

“빨리 전쟁을 해서라도 이 지긋지긋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 전쟁이 없었는데도 맞아죽고 굶어죽고 했는데 전쟁이면 어떠냐.”

수십 년을 평화라는 무덤 속에서 살아온 북한사람들의 분노를 표현한 말이다. 이 말은 전쟁이 일어나면 무조건 독재가 무너지고 자유가 온다는 뜻이다. 그만큼 전쟁은 독재의 편에 불리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2000만을 노예로 거느리고 잘 먹고 잘 살아가고 있는 정부만이 전쟁을 악몽같이 무서워한다. 작년까지도 북한은 제멋대로 핵실험을 해왔다. 올해는 꺾인 풀대마냥 문재인 정부를 통해 대화의지를 전해왔다. 오바마 정부 시절까지는 밤낮 떠들긴 했어도 경제제재라는 약한 매를 맞으며 그럭저럭 넘어가기가 수월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해도 말로 어우르기만 했을 뿐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결코 말로 어우르지 않는다. 틈을 주지 않고 계속 몰고 가며 때린다. 끝까지 갈 작정으로 나섰다. 북한이 지금 미국의 벼랑 끝 전술을 만만하게 볼 처지가 아니다. 정 말을 듣지 않으면 물리적 힘이 작용할 가능성이 80퍼센트를 넘어섰다고 보인다. 북한이 대화를 요청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오죽 바빴으면 “체제 안전이 보장되면 북한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자기들 스스로에게 무덤을 파는 불리한 말을 쏟아내겠는가.
  
북한이 핵을 내려놓아 보라, 체제는 스스로 부서져나갈 것이다. 북한 인권은 스스로 해결될 것이다. 지금 북한정부는 미국의 선제타격에 맞아죽느냐, 체제가 무너져 인민들의 뭇매에 맞아죽느냐 하는 두 가지 갈림길에 서있다. 선제타격에 맞아죽기도 싫다. 체제가 무너져서 인민들의 심판을 받기도 싫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져있다. 이 상황을 북한정부가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대화의 자리를 만들기는 어렵지 않다.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 만들어 내야 할 그 답이 어렵다는 게 문제다. 그러면 그들이 미국도 설득시키고 자기들도 만족한 비장의 카드가 실제 있을까. 어린애처럼 우기고 떼를 쓸 때는 이미 지났다. 얼뜬 한 몽둥이에 맞아 쓰러진 것처럼 보여 핵도 되살리고 선제타격도 경제적 제재도 풀어보자는 꼼수는 지나간 시간의 것이다. 북한이 가진 카드는 아무것도 없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미국은, 아니 전 세계는 북한이 벼랑 끝에서 떨어질 때까지 몰고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