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만인지는 몰라도 북한군엔 여군들만의 집단이 꽤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 통신병과와 같은 혼성부대가 있는가 하면 간호부대와 고사·해안포, 수예중대같이 순수 여성들로 만들어진 부대도 있다.

얼핏 보면 특이한 직종에 여군이란 이미지가 만들어낸 다채로움 때문에 관심을 끌기도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고통스럽고, 슬프기 짝이 없다.

군단예술선전대 배우 

북한군 각 군단(급)엔 군단예술선전대 라는 게 있다. 현존하는 열 두 개 군단과 공군, 해군, 평양방어사령부, 4.25훈련소, 8.15훈련소, 620훈련소 등과 교도대지도국(특수8군단) 등에 존재하고 있다.

부대 규모에 따라 100~150여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군단 내 군인들의 사상교양사업과 훈련독려 차원의 선전공연을 준비해 대대중심 공연을 실시하고 있는 이 선전대의 반 이상이 여군이다.

공연을 목적으로 하는 부대이다 보니 주로 사회에서 예술급수를 가진 사람들이 입대하곤 한다. 혹시는 필자처럼 ‘운’좋게 ‘키’가 되고 ‘인물’이 돼서 신병교육을 마치고 곧바로 ‘뽑혀’가는 경우도 있다.

색 바랜 군복에 찢어진 신발, 새카맣게 타버린 얼굴에 말라버린 입술을 하고 다니는 일반 여군들에 비하면 하얀 얼굴에 짙은 화장, 바짓가랑이가 펄럭이는 군관용 바지를 입고 다니는 선전대 여군들의 자태는 화려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정치적 행사를 자주 치르는 북한군의 행사장들에 나타나 공연을 한답시고 ‘군인들의 넋’을 빼놓고는 유유히 사라지는 예술선전대의 여군들은 남성군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예술선전대원은 마음먹는다고 누구나 되는 게 아니다. 앞서 이야기 했지만 예술적 기량이 있어야 하고, 인물이 타고 나야 하며, 일단은 군복을 입고 당에 예술적 재능을 바쳐야 한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얻는 게 입당이다. 사회에서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예술단체에서 충분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도 ‘군복입은 예술인이 되면 입당을 빨리 한다’는 유혹을 떨치지 못해 이름 하여 ‘군인’이 된다.

한때 필자가 몸 담았던 4군단예술선전대에도 황해도는 물론 평양과 남포등지의 예술대학을 졸업하거나 그곳 예술단체에서 배우로 있던 여성들이 50여명이나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겐 입대 초기부터 ‘입당’이라는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이런 여군들은 한마디로 군단간부들의 ‘밥’이였다. 특히 무용조의 여성들처럼 몸매까지 삐어난 친구들은 군단 최고 간부들인 사령관과 정치위원, 참모장의 차지가 되어있군 했다.

이런 4군단선전대에 어느 날 김정일이 찾아왔다. 최고사령관의 자리를 꿰찬 후 4군단을 전선군단으로 격상시키는 등으로 군에 관심을 보여 온 김정일이 고영희를 대동하고 군단사령부를 방문했다가 선전대까지 들린 것이었다.

당연히 김정일과 고영희 앞에서 예술선전대의 공연이 펼쳐졌다. 북한 언론에 늘 보도되듯이 김정일은 방문하는 군부대마다 군인들의 공연을 보기 좋아했고 특히 여성중대나 여군들이 주를 이룬 선전대 공연에 열광하곤 했다.

군단선전대 여배우들이 눈에 찰리 없는 김정일이겠지만 김 은, 이처럼 갑작스레 나타나서, 한해 남짓한 기간에, 다섯 차례의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다. 혼자인 때도 있고 고영희와 총정치국 간부들과 함께 올 때도 있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4군단을 거점으로 ‘평양의 어머니’라는 고영희의 우상화가 준비됐고 ‘평양의 어머니’ 후속편으로 ‘후계 구도’를 그리려는 김정일의 꼼수가 숨어 있었다. 당시 4군단 정치위원이었던 염철성 소장이 이 후계구도의 선봉에 섰다. 

염철성은 늘 선전대에 붙어살다시피 하면서 ‘공연’준비를 했고 그 공연의 핵심에 ‘평양 어머님’을 놓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래서 준비된 공연이 ‘혁명의 어머니’라는 종합공연이었고 김정일과 고영희가 이 공연을 보기도 했다. 

군단지휘부 문화회관이라는 적은 공간에서 진행된 공연이지만, 공연이 끝난 후 선전대의 지위는 확, 달라졌다. 특히 고영희의 이모저모를 형상했던 여성 배우들의 자부심은 하늘에 닿을 정도였다.

듣도 보도 못한 김정일의 여자 고영희를 염철성이라는 정치장교의 지휘에 따라 이른바 ‘평양 어머니, 혁명의 어머니’라는 예술적 형상으로 그렸을 뿐인데 여배우들 전체에게 훈장이 차례졌다.

어느 날엔가는 고영희가 직접 보냈다는 화장품과 선물가방(백), 금 손목시계가 선전대에 도착했다. 배우들은 고 씨의 선물에 감지덕지 했고, 아직 세상 사람들이 존재도 모르는 고 씨에게 충성을 맹세하기도 했다.

국제사회는 고사하고 섬나라 같은 북한에서조차 김정일의 부인임을 공표할 수 없었던 고영희가, 4군단지휘부가 위치한 해주시 옥계동 골안에서 혁명의 어머니로 둔갑했고 자신만의 행복에 도취해 있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뒤, 선전대 여배우들에게 뜻밖의 시련이 닥쳐왔다. ‘평양의 어머니’를 ‘혁명의 어머니’로 승화시킴으로 김정일의 총애를 받던 염철성이 무슨 사건엔가 연류 되었다는 소문과 함께 현직에서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정치위원을 등에 없고, 혹은 김정일과 고영희 앞에서 공연까지 했다는 나름의 자부심으로 사령부내 장교들을 업신여기다 십이 했던 선전대 여군들을 눈에 가시처럼 여기던 군단 조직부가 검열의 칼을 빼어 들었다.

공연준비를 한답시고 2일 당(청년조직)생활총화(북한에서 예술인들은 주 생활총화가 아닌 2일 생활총화를 진행하고 있음)에 빠졌다거나 선전대 안에 남녀가 생활하는 틈을 타 풍기문란을 조성했다거나...

무엇보다도 연철성과의 관계가 의심된다는 어느 여군의 일거수일투족이 조명되던 검열이었다. 그렇게 따지고 한사람씩 불러내다가 매일처럼 볶아대니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왔다. 어느 여배우는 사령관의 첩, 또 누구는 참모장의 첩...

하다가하다가 김정일을 흠모하고 고영희를 질투했다는 여군까지 나오는 판국이었다. 결국 4군단예술선전대는 해체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각종 사상검증을 통해 사, 여단 전투부대로 쫓겨 가는 군인이 있는가 하면 불명예제대를 당하는 군인도 부지기수였다.

김정일의 후계구도를 위해, 고영희와 미래의 김정은을 위해, 혹자는 군단간부들의 성노리개 역할까지 해야 했던 미모의 여인들은 그렇게 체제의 희생양이 되어 소리 소문 없이 스러져 갔다.

그리고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군단정치위원이었던 염철성은 김정은이 권력을 잡은 뒤, 과거의 ‘후계구도’공적을 인정받아 다시 4군단정치위원으로 복귀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북한군 총정치국 선전부국장을 맡고 있다.

양식서기 

북한의 부모들은 의무제로 군대에 나가는 자식들이 영양실조에 걸릴까봐 늘 노심초사 마음을 쓰고 있다. 때문에 나름대로의 안전지대, 좋은 병종에 자식들이 배치되기를 희망한다. 당사자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선전대 해산과 함께 나는 군단 통신결속 소에 배치 받았고 배치된 지 이틀만에 공석으로 남아있던 부대 양식서기로 임명됐다. 양식서기란 북한군 대대 이상 급에 편제되어 있는 자리로 주로 군인들에게 공급되는 식량을 맡아 처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부모들의 빽~이나 간부들의 눈에 들어 양식서기의 길이 열렸다면 이는 북한 군 내에서 축복받은 병사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나처럼 아무 조건 없이 그냥 양식서기가 되었다면 이건 신이 내린 선물이 분명했다.

양식을 다루는 사람인 것 만큼 적어도 먹는 문제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였다. 비록 하전사(사병)이고 계급도 보잘 것 없었지만 ‘먹는 문제’는 비단 사병들에게만 해당되는 사안이 아니었다.

부대장으로부터 말단 소대장에 이르기까지 지휘관들은 물론이고 부대전체 군인들의 삶과 직결된 자리기도 했다. 부대에 갓 배치된 사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임명된 첫 날부터 ‘위세’를 실감했다. 누구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지휘관들과 고참들이 눈치껏 모시는 촌극이 펼쳐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잠깐, 수많은 병사들이 고된 노동과 만성적인 배고픔에 찌들어갈 때 이들의 식량을 조달하고 보관관리하고, 매끼 식당에 식량과 부식품을 출고(공급)해야 하는 양식서기의 일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모든 문제는 국가가 해야 할 공급을 제대로 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고 있었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였지만 양식서기는, 후방지도원(장교)과 함께 이 미공급 물자들을 보충해야 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물론 국가적 공급이 끊기면 후방지도원이나 양식서기가 아무리 날고뛰어도 군인들은 굶어죽게 생겨먹었다.

하지만 식량 공급이 늦춰지면 협동농장에서 꾸어오거나 도둑질을 해서라도 군인들을 굶겨서는 안 되는 입장에 처한 꼴이기도 했다. 또 국가에서 된장이나 간장을 공급하지 않으면 부대자체로 농사를 지어서라도 된장과 간장을 생산해 군인들에게 공급해야 했다.

고기는 생각도 못했지만 적어도 남새만큼은 철따라 맛이라도 보게 해야 한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생각도 난다. 150여명의 부대 식당까지 창고에서 반출한 양식마대를 혼자서 메 나르던 추억도 있다.

또 상급부대에서 그 많은 인원에게 공급되는 식량을 받아 부대로 져 나르던 기억도 있다. 열흘에 한 번씩 식량공급을 받아왔는데 번마다 1000㎏이 훌쩍 넘는 량이었다.

그래도 내가 어떻게 일 하느냐에 따라 군인들이 잘 먹을 수도 있고 못 먹을 수도 있다는 생각, 내가 맡은 일에 성실히 임하지 않으면 군인들이 영양실조에 걸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늘 힘을 냈고, 맡은 일에 성심을 다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양식서기 임무를 맡은 지 열흘정도가 되던 때 중대직일관이 내게 오더니 정치지도원이 나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 정치지도원 방으로 갔다. 그런 내게 정치지도원이 다짜고짜 하는 말이 “입당을 해야 되지 않갔어?”였다. 

당연히 조선노동당원이 되고자 군에 입대했고 내가 맡은 직책인 양식 서기 일을 훌륭히 수행하여 당당히 입당하리라 생각했던 21살 여군의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제가 아직 해 놓은 일이 없어서...” 

그러는 나를 향해 정치지도원이 큰 소리로 웃어댔다. “일이야 앞으로 하면 돼지. 암...” 그러면서 그는 입당은 정치지도원이 펜을 어떻게 놀리느냐에 달렸고, 정치지도원이 마음만 먹으면 입당이 아니라 하늘에 별이라도 따 줄 수 있다는 듯이 허풍을 늘어놓았다.

그리고는 슬며시 자신의 집 위치를 알려주면서 이번 주 집에 중요한 손님이 온다는 말도 빼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날 밤...양식창고의 열쇠를 열고 군인들의 급식용 식량을 덜어내고 말았다. 그렇게 30㎏정도의 쌀과 10㎏정도의 콩을 트럭에 싣고 정치지도원의 집을 찾아갔다.

하지만 양식서기의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매달 결속소를 찾아오는 군단 간부들의 식사보장 또한 양식서기의 몫이었다. 사실 창고에 있다는 게 쌀과 옥수수, 콩과 기름 몇 병이 전부인데 간부들의 식사는 쌀밥에 고기 국이어야 했고 때로는 기름진 안주를 곁들인 술이어야 했다.

이 음식을 장만하려면 다시 군인들의 식량을 조절할 수밖에 없었다. 군인들의 식량을 시장에 내다 팔아야 했고 식량을 팔아서 생긴 돈으로 술과 기름진 안주, 고기 등을 구입해야 했다. 이런 저런 주변 환경 때문에 군인들의 밥그릇은 점점 줄어들었고 부대 내에 영양실조 환자조차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래도 한번쯤은 처음 시작할 때의 꿈, 군인들을 잘 먹이리라 결심했던 그 꿈을 실현 해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어떤 일이 있어도 군인들의 급식량엔 손을 대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실천에 옮긴 적도 있었다.

당연히 군인들의 밥그릇이 두둑해 졌고, 군인들도 좋아했지만 결국 한 달도 채 안 돼 나무아미타불이 되고 말았다. 내가 속해있던 독립부대가 상급부대의 정상검열에서 누락되는 일이 많다는 것을 눈치 챈 대대간부들, 중대간부들, 지어는 제대한 선배들까지 쌀을 달라고 매달리는데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결국 매일 밤, 야음을 타 군인들에게 공급되어야 할 쌀을 퍼내가지곤 불빛 하나 없는 어둠속에서 쌀 마대를 건네는 일이 양식서기의 일상이 되었고, 그처럼 미친 환경 속에서도 입당도 하고 승진도 해야 한다는 ‘꿈’은 지속되고 있었다. (계속)

이소연 뉴코리아여성연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