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주민들에게 여권은 생소한 물건이다. 나는 12살 되던 해에 여권을 처음 봤다. 80년대 초반부터 북한의 국경지역에는 중국에서 넘어온 상인들이 차고 넘쳤다. 

북한의 시 마다 한 개씩 가지고 있던 ‘농민시장’에서는 가축과 채소만 팔게 되었는데 중국 상인들이 들어오면서 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고 이들을 상대로 시장세를 거두기 시작한 북한당국은 재미를 붙였는지 역전주변과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들에 간판만 ‘농민시장’인 중국인 시장을 대대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회령시만 하더라도 역전시장, 망양시장, 남문시장 등 사람이 많이 모여들 수 있는 골목은 전부 중국 상인들이 판을 치는 중국 땅이 되었다. 이런 중국 상인들은 회령 시 세관으로 하루에 100여 명씩 들어왔고 보통 보름에서 한 달 정도의 기간을 받아가지고 들어왔다. 

이들은 첫째로 북한을 상대로 돈을 벌고자 하는 것이었고 북한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진짜와 가짜로 위장한 북한 쪽 친인척이 있으면 가능한 일이였다. 

사돈에 8촌까지, 국경지역에는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중국조선족들이 친척을 찾아내어 북한정부에 등록을 원했고 친척이 없어 나올 수 없는 사람들은 북한 쪽 없는 사람끼리 친척이라 거짓 등록을 하고 왕래를 하였다. 

한편 북한 주민들 속에서는 거짓 등록을 원하는 사람들이 차고 넘쳤고 알선책들도 여기저기 등장했다. 

이들이 거짓으로라도 등록을 원했던 것은 북한 내에서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유일한 배급제도가 있었지만 공급해주는 양이 늘 부족했고 그러다 보니 중국 상인들이 나올 때 가져오는 쌀과 부식물, 이들이 건네는 선물보따리는 살림에 큰 보탬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인들이 우리 집에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엄마의 4촌이 된다는 중국의 친척은 한 달에 한 번씩 나왔다 가곤 했는데 나올 때마다 여권을 들고 보안 서에 가서 등록을 하고 외사과에 가서 도장을 찍어왔다. 작은 종이장이 몇 장이였던 여권은 나에게 꿈을 심어주기도 했었다. 

저 종이장이면 중국도 갈 수 있고 외국 어디든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배고픈 북한을 벗어나려면 저 종이장이면 되는거 아닌가? 

어느 날 대학교에 계시던 아버지께 이런 질문을 했다. ‘저 여권을 나도 가지고 싶습니다.’ 너무도 조용하게 원하는 딸에게 아버지는 또박또박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꼭 갖게 될 거야” 

그렇게 청소년 시절을 마치고 군대에 갔다 오니 여권생각은 다 잊고 살았다.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하는 가족을 바라보며 뭐라도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시장에 뛰어들었고 그렇게 차고 넘치던 중국의 상인들은 한명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북한의 사람들이 나진선봉을 통해 중국의 물건들을 도매로 가져다 시장에 널어놓고 팔고 있었으며 간간이 상인 들 속에서 나오는 말은 북한에 와서 장사하는 중국인들에게는 한국으로 가는 비자가 잘 나오질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여권과 비자! 중국 사람들은 누구를 잘 만났기에 북한에 들어와 온갖 있는 척 다하며 떼돈을 벌어갔고 뭐가 잘 나서 한국으로 비자를 받아 간다는 것인가? 

어른이 되어 시장에 쪼들려 지쳐가는 자신을 바라보며 두만강 건너에 보이는 그 잘산다는 중국에 한번 가려면 여권이 있어야 하며 그 여권 하나를 발급받으려면 80만원의 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일반 근로자의 월급이 1000원 가량 하던 시절이라 80만원의 돈은 그 어떤 수로도 얻을 수 없는 돈이었다. 

하루 종일 13시간씩 시장에 쭈그리고 앉아 물건을 팔아도 명줄을 이어갈 정도의 돈벌이나 되지 여권을 구할 수 있는 돈벌이는 안되었다. 80만원이 없어 북한여성들은 여권 한권 발급받지 못하였고 그 여권 한권이 없어 탈북여성이라는 멍에를 쓰고 중국등지에서 인신매매로 팔려 다니고 성노예로 끌려 다니는 짐승같은 생활을 강요당한다. 

뇌물과 맞바꾼 생활총화시간

여권 한 장 발급받지 못하던 북한의 삶은 늘 억압과 고통의 순간들이였다. 

제대할 때 받은 퇴직금은 고작 100원이였다. 공급계획과 제도가 마비된 북한에서 100원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빵 두개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오로지 북한에서 살아남는 길은 시장밖에 없었고 당원이라는 명예는 거치장 스러운 것이 되었다. 

매주 진행하는 생활총화는 시장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을 뺏어가기에 충분했고 서로가 서로를 비판하고 비판받는 생활총화는 사람들의 빈곤에 악을 실어주는 듯 했다. 

우리당조직의 세포비서는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가장이였다. 북한의 집집마다 고난의 행군이후 시장이 들어서면서 집안의 가장은 시장에 나가 생계활동을 하는 주부로 바꾸였었다. 

생활총화 시간은 규정대로 지켜야 하고 아이들에게 밥술이라도 먹이려니 시장에 뛰어 나가야 하는 세포비서는 당 생활총화 시간을 은근히 즐기는 듯 했다. 시장과 함께 돈에 대한 충성심이 충만해지는 당원들에 대하여 호되게 꾸짖고 당처벌이라도 안겨줄 듯 했지만 사실 속내는 딴데 있었다. 

평소에 고지식하고 당의 규약대로 생활을 모범적으로 하다 보니 집안 살림은 늘 엉망 이였고 군대의 도둑질을 피해 부엌에서 기르던 돼지는 이미 집안의 아이들과 형제가 되어있었다. 

중학교 교사를 하던 남편은 바지에 밥풀이 붙어 다녔고 하루 한 끼 먹으면 족한 살림이 되었다. 그런데 이 세포비서가 어느 날 눈을 번쩍 뜨는 일이 생겼다. 

시장에 나가 돈을 벌어야 살겠다고 투정을 부리던 당원들이 따로 당 생활보고를 하러 집안에 찾아오기 시작했는데 올 적마다 손에 음식과 쌀이 담긴 꾸러미를 들고 왔던 것이다. 나도 당 생활총화의 시간을 빠지기 위해 세포비서에게 아양을 떨기 시작했으며 빠진 대가로 세포비서가 젤 좋아하는 팥빵을 어김 없이 들고 갔다.

뇌물의 대가는 고소했다. 비판의 따가운 시간은 빵을 사들고 가면 되었고 그 빵은 시장에서 돈을 벌어 사가면 되었다.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자 세포비서는 대놓고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탈북과 대한민국 여권

시장의 고달픈 삶이 연속될수록 주변에서 탈북 했다는 소리들이 더 귀에 쟁쟁 들려왔고 하루 한 끼 벌이도 힘든 북한보다는 차라리 이 지긋지긋한 땅을 떠나고 싶어졌다. 

북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루 한 끼라도 배부르게 먹는 것이 꿈이 되였고 그 한끼를 위해 생활전선에서 전투를 치러야 했으며 탈북이라는 죽을지도 모르는 길을 선택했다. 

간들간들 붙어있는 목숨 줄을 부여잡고 수령에게 충성심을 강요당하면서 살고 싶다는 비명소리조차 지를 수 없는 많은 북한주민들은 해서는 안 된다는 원망조차 남기지 못하고 남편과 어린자식들과 헤어졌다. 

탈북이라는 길을 나서면서 누구도 여권을 요구하지 않았고 신분증도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북한에서 태어났기에 북한을 탈출하는 탈북자일 뿐이였다.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두만강까지 가는데 보위부초소 한 개. 군 초소 한개를 통과해야 했다. 

브로커는 지역사람이니 신분증 한 장만 있으면 된다고 했고 초소마다에서 신분증을 보여주니 무사통과를 시키는 것이었다. 드디어 중국이 바로 앞에 보이는 두만강에 도착했고 망을 봐주는 군인의 안내만 받으면 탈북은 성공적 이였다. 

그런데 군인과 브로커가 나에게 신분증을 내놓고 강을 건너라는 것이었다. 나의 신분증이 이들에게 어떤 용도로 쓰일까? 조금 망설이는 나에게 이들이 하는 말‘중국에 가서 잡힐 수 있는데 주머니에서 북한주민이라는 신분증만 나오면 증거가 된다. 그러니 여기에 내놓고 가라는 것이다.’ 

중국에서 잡혀 나오는 탈북민 들을 너무도 많이 봐왔고 그들의 처벌실태를 잘 알기에 잡힌다는 말과 동시에 신분증을 쑥 내밀었고 군인은 그걸 받아서 두만강에 휙 던져버린다. 나는 북한사람이기에 두만강에 둥둥 떠내려가는 신분증을 더는 필요로 하지도 않았고 오직 중국에서 잡히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11월 말. 영하20도에 달하는 두만강 얼음물은 차갑다 못해 따가웠고 온몸은 바늘로 찌르는 것 같았다. 

겉옷과 신발은 젖으면 단속에 걸린다 하여 한손으로 추켜들고 다른 한손으로 물을 헤치며 건느던 그 시간이 얼마나 멀고 길게 느껴지는지, 중국 땅에 발을 들이니 차가운 돌멩이에 발이 붙어나고 두만 강물에 찢긴 언 몸은 피가 흐르고 머리는 한 대 맞은 것 마냥 어지러웠지만 피를 닦아야 한다는 것도 머리가 아프다는 것도 우리에게는 사치였다. 

주섬주섬 옷을 주어입고 브로커들이 이끄는 대로 허둥지둥 뛰어가 중국의 시내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실었다. 그 이후 중국을 거쳐 대한민국까지 오는 길은 두만강을 건너던 그 고통보다는 몇십 배로 힘든 고난들이 있었고 피가 흐르던 다리와 정신없이 건넜던 두만강의 그 저녁은 너무도 아픈 상처가 되었다. 

그 속에서 몸으로 고생하는 고통은 그래도 견딜 만 했다.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은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것 때문에 누군가의 신변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것과 순간순간 경찰들의 검색에 여권 한 장, 신분증 한 장 내놓을 수 없는 우리들의 처지가 가련해보였고, 가련한 인생들은 울고 싶어도 숨어서 울고 말하고 싶어도 벙어리가 되어야 하는 탈북자, 북한에서 태어난 죄인들이였다. 

어릴 적 여권을 가지고 싶던 꿈, 그 여권으로 세계일주를 꿈꾸던 꼬마는 배고픔에 죽을 것 같아 북한주민이라는 신분증조차 훌훌 버리고 탈북을 했다. 여권과 신분증, 대한민국에 와서 처음 미국에 갈 때 비행기 안에서 날아오르는 자신을 스스로 대견해 했던 적이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여권을 가지고 미국으로 간다는 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면서 신분증 한 장으로 “나”라는 인간본래의 존엄성을 인정해주는 나라, 그런 제도가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이것이 자유이고 행복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주민등록증에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보며 지옥 같았던 북한생활을 기억에서 지우려고 한다.

이소연 탈북자, 뉴코리아여성연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