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강력한 북핵 불용 의지가 대북정책 기조 전반에 대전환을 가져오고 있다. 정부가 결단한 주한미군 사드(THAADㆍ高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개성공단 중단은 북핵ㆍ미사일에 대해 우리가 주도적으로 대응 함으로써, 국제공조를 이끌어내려는 선제적 조치로 이해된다. 대화와 협상을 통한 설득과 국제제재를 통한 압박만으로 북한의 핵ㆍ미사일을 막아낼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한 핵문제를 냉철하게 직시하고 현실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모든 정책 대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북핵(北核) 당사자로서의 주도적 역할 필요

지금까지 한국의 안보ㆍ통일 정책의 근간은 선(先) ‘북한 비핵화’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확보한 후, 남북 교류ㆍ협력 확대를 통해 평화적 통일을 달성한다는 것이다. 물론 북한이 급변사태로 붕괴할 경우, 별도의 통일 시나리오가 마련돼 있고 현실적으로 그 가능성이 더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의 집요한 핵무장 의지와 지속적인 핵ㆍ미사일 업데이트는 한국의 상기 통일정책 전제들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있다.

북한의 핵ㆍ미사일 개발은 6자회담 등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의 난망(難望)함을 여지없이 보여줬고, 중국을 지렛대로 한 대북제재 방안 역시 중국의 비협조로 실현되기 어렵다는 점도 알게 됐다. 다만 미국 의회가 2월 12일 초강력 대북제재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제3자 제재(secondary boycott)를 통한 북한 제재가 효력을 발휘할 지 주목된다. 이 경우도 중국 기업 및 금융기관의 동참여부가 성패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중국의 협조가 역시 중요한 변수라는 의미다.

대화와 협상을 통한 설득과 국제제재를 통한 압박만으로 북한의 핵ㆍ미사일을 막아낼 수 없다면, 우리의 생존을 위해 독자적 역할 모색이 불가피하다. 물론 한미동맹과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이 국가안보의 중요한 토대임을 간과해선 안 되고, 동북아의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서 중국과 러시아와의 선린 우호관계도 감안해야 한다.

국제제재 공조의 강화ㆍ확대

중국의 북핵 제재 ‘역할 거부’에 실망한 미국이 독자적으로 양자적 제재를 목적으로 한 ‘대북제재 강화 법안’을 입법화했다. 동시에 언론과 2016년 대선 주자들도 잇달아 김정은 정권의 “깡패 짓”을 규탄하고 강력한 대응책을 주문하고 있어, 미 조야가 한 목소리로 북한 징벌을 요구하는 형국이다.

반면 중국은 북한 비핵화에 소극적 자세를 보임은 물론 주한미군에의 사드 배치를 결정한 한국에 대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겁박하는가 하면, ‘경제보복론’까지 들먹이며 위협 강도를 높이고 있다. 가까스로 이뤄진 2월초 한중 정상간 전화통화와 이후의 양국 외교장관회담에서도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라는 외교적 수사(修辭)만을 되풀이했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사드 배치가 “중국의 전략적 안전이익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수수방관 않겠다”는 경고를 발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사드는 유방(劉邦, 중국에 비유)을 겨누는 항우(項羽, 미국에 비유)의 칼춤”이라는 격한 표현도 사용했다. 우리의 안보주권을 침해함은 물론 상호의존적 경제협력 관계를 악용해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려는 대국의 횡포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은 북한에 대해 단순한 ‘완충지대’ 인식을 넘어 미국과의 패권경쟁이라는 세계전략 차원에서 접근하려 한다. 배타적인 부국강병(富國强兵) 대외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는 한, 북한의 위협과 맞서고 있는 한국과 정책조화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향후 한미동맹과 한미일 3각 안보협력체제가 뒷받침돼야 중국의 압박에 대처할 수 있다. 근거없는 대중(對中) 공포나 기대를 자제하며 안보주권 논리로 의연하게 중국 설득에 나설 때, 한중관계는 정상화의 길을 갈 것이다.

개성공단이 남한의 자본과 북한의 근로자가 결합되어 북한에의 자본주의 유입과 북한체제 변화를 유도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음도 사실이나, 매년 1억달러의 현금이 김정은의 핵개발 비밀자금으로 악용된 엄연한 사실 역시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통일부 장관이 언급한 대로, 개성공단에서 달러로 지급된 임금이 김정은 통치자금을 관리하는 노동당 39호실로 전액 수거되어 핵ㆍ미사일 개발에 전용됐다면, 개성공단 중단 조치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북한의 군사력 증강에 대한 확고한 국방태세 구축

3대 세습정권을 계승한 김정은의 호전적인 군사모험주의는 대한민국의 안보와 존립을 위협하는 최대 요인이다. 이제 북한의 핵ㆍ미사일 개발은 (i)핵탄두 소형화와 (ii)미사일의 대기권 진입 기술 확보를 마지막 단계로 남겨놓고 있다. 이번에 수소탄 요소를 가미해 핵 역량을 획기적으로 증대시켰고, 탑재 탄두 중량을 늘이는 한편 미사일 사거리를 확대하는데 성공했다.

김양건 사망 이후 김영철을 통일전선부장 및 대남담당 비서로 전격 기용한 것도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영철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 및 지난 해 8월 목함지뢰 도발을 주도한 장본인이다. 김영철은 우리 기업이 철수한 개성공단 지역을 군사통제구역으로 전격 선포하고, 북한군 방사포ㆍ장사정포 부대를 집중 배치할 요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성공단 중단 조치에 심리적 압박을 받은 김정은-김영철 라인 지도부가 어떤 형태로든 대남도발을 곧 획책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국가정보원은 2월 12일 국회 보고에서 (i)북방한계선(NLL)을 포함한 전방 국지도발 (ii)사이버 테러 (iii)외국인을 이용한 후방 테러 등을 예상 가능한 북한의 보복 도발로 전망했다.

한편 미국 국방부가 의회에 제출한 「북한 관련 2015 보고서(Military and Security Developments involving DPRK 2015)」에 따르면, 북한의 특수부대는 “신속한 공격 작전을 위해 조직”됐으며, “가장 고도로 훈련받고 제대로 무장했고, 최고의 대우를 받아 사기가 높다”고 평가됐다. 북한은 또 사정거리 5500㎞의 KN-08 미사일 6기를 보유하고 있고, 이동식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인 KN-08 미사일이 발사대 장착 미사일보다 탐지가 훨씬 힘든다는 점이 지적됐다. 북한군은 최근 미사일 부대를 지휘 총괄하는 ‘전략로켓군(Strategic Rocket Forces)’ 예하에 이동식 ICBM 부대인 ‘KN-08 여단’을 편성했다는 소식이다. 이는 KN-08이 사실상 실전배치 단계에 있음을 의미한다.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2월초 KN-08 실전배치를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KN-08 여단이 정식 편성됨에 따라 북한의 전략군은 (i)KN-08 (ii)무수단 (iii)노동 (iv)스커드여단 등 4개 전략 및 전술 미사일여단 체제를 갖추게 됐다. 한편 지난 해 12월 미국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부대를 지휘 총괄하는 ‘조선인민군 전략로켓사령부’를 제재 대상으로 전격 지정한 바 있다.

열강이 각축하는 동북아 안보환경에서 대한민국의 국가안보를 지탱하는 토대는 한미동맹과 자체 국방력의 결합이다. 여기에 한미일 3각 안보협력체제가 보완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북핵ㆍ미사일 위기에 직면하여 우방국인 미국은 ‘확장된 핵억지력(extended nuclear deterrence)’의 재확인과 첨단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로 한국에 대한 방위공약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금년 키리졸브 훈련은 미국 참수작전 특수부대와 핵 항공모함 전단이 참여하는 등 최대 규모로 실시되고 있다. 또 스텔스 전투기인 F-22와 스텔스 폭격기인 B-2 등의 추가 투입도 예상된다. 미국 본토의 패트리엇(PAC-3) 미사일 부대도 주한미군에 추가 배치됐다. 한편 우리 군은 북한의 사이버 테러에 대비하여 ‘정보작전 방호태세(INFOCON, 인포콘)’를 3단계로 격상했다.

정부의 주한미군 사드 배치 결단은 불가피하고도 시의적절한 조치다. 2014년 북한이 노동 미사일을 고각도로 2차례 시험 발사하여, 한반도를 표적으로 하는데 성공한 것을 보고 놀란 커티스 스캐패로티 한미연합사령관이 주한미군 보호 차원에서 사드 배치를 건의했고, 이번에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중국의 우려를 의식하지 말고 순수한 군사안보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국방부의 지적이 설득력을 갖는 근거다.

안보 토대 위에 현실적인 통일 로드맵 구축해야

북핵ㆍ미사일 도발 이후 동북아에서 신(新) 냉전 구도가 재현되고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중국의 세계패권 야망과 미국의 국제질서 수호 전략이 빚어내는 충돌의 불가피한 결과다. 여기에 북한의 핵ㆍ미사일 도발이 한반도 긴장에 기름 붓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개성공단 중단 조치를 미국의 초강력 독자 법안 입법과 상호 연계하여 실효성 있는 북한 제재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실행하느냐가 향후 북핵 억지의 관건이다. 이란의 핵동결 굴복도 미국의 양자 제재에 기인했음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일각에서는 북한 핵을 동결하는 대신 미북 수교를 통한 평화협정 체결이 북한 비핵화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이는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을 간과한 위험한 단견(短見)이다.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주장은 주한미군 철수를 목적으로 한 것으로 한미동맹을 붕괴시켜 대한민국 국가안보를 무력화시키려는 기만전략임을 잊어선 안 된다.

북핵 위기를 안보태세 구축과 북한체제 전환 및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는 리더십과 정책적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종래 기능주의적 관점에 입각한 대북 화해협력 정책이 이론상으로는 이상적이지만, 북한의 군사력 증강을 통한 한반도 적화전략으로 인해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 충분히 입증됐다. 지금은 오히려 북한 비핵화 실현의 수단으로서의 통일 필요성조차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 정권교체)’론도 재부상하고 있다. 한반도 정세 급변으로 안보ㆍ통일 정책의 새 패러다임이 필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우려되는 것은 내부의 적전(敵前) 분열 현상이다. 내부 통합을 기하지 못하는 한, 월남 패망 교훈은 아직도 유효하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북한의 유일수령체제를 대체할 최선의 대안임을 확신하고 적실성 있는 대북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북핵ㆍ미사일에 대처하기 위해 자체 핵무장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자위(自衛)’ 차원에서 자연스런 일이다. 최근 실시된 주요 언론의 여론조사는 국민 과반 이상이 사드 배치(68%)와 개성공단 중단(55%)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체 핵무장 또는 미군 전술핵 재배치 지지 여론(52.5%)도 과반수를 넘었다. 핵무장 과정에서 제기되는 난관을 고려하며 전향적으로 검토해 나가되, 일단 핵 잠재력 향상을 도모하면서 NPT(핵확산금지조약) 범위 안에서 ‘핵무장 선택권(nuclear option)’을 채택하는 전략도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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