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세습 후 4년간 김정은 정권은 공포정치와 정치적 숙청을 통해 체제를 유지해왔으나, 리더십의 한계로 2016년에는 체제 불안정성과 취약성이 더욱 심화될 것이다. 국제적 압력과 기술적 준비 미흡으로 미뤄져왔던 4차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도발 가능성도 상존한다. ‘인민생활 향상’ 목적으로 장마당을 허용한 결과, 중산층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향후 북한체제 변동의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김정은 정권의 경직성으로 인해 대외 신뢰도가 추락함으로써, 체제위기를 심화시킬 수도 있다. 북한이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 한, 국가안보 태세와 한미 대북공조에 차질이 없어야 한다.

2015~2016 북한정세 개요

2016년 새해는 김정은 권력 세습 5년차가 되는 해다. 집권 초기의 비관적 전망에 비하면 그럭저럭 권력 공고화에 성공했다고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불안정성과 취약성이 엿보인다. 정치적으로 무자비한 공포정치와 숙청으로 체제를 유지해왔으나, 반면에 민심이반과 고위급 엘리트의 탈북 증가 등 부정적 요인이 수반되면서 체제위기 전망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군사적으로 재래식 및 대량살상무기 개발이 지속되고 있고, 지난해 12월 김정은의 ‘수소폭탄(hydrogen bombs)’ 보유 발언으로 국내외 이목이 집중됐다. 북한전문 웹사이트 ‘38노스’는 최근 “서해발사장 증축이 완성단계”라며 관련 사진을 공개했고, 풍계리에 “새 터널 굴착” 징후가 있다며 추가 핵실험 가능성을 제기했다. 비록 11월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실험이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개발속도가 예상보다 빨라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경제분야에서는 ‘장마당’이 허용되면서, ‘돈주’라 불리는 중산층 형성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장마당 확산이 개혁ㆍ개방으로 이어질지, 수령체제와의 충돌로 체제 경착륙을 야기할지 장담하기 어렵다. 다만, 장마당이 북한체제 변동의 주요 변수로 떠오르는 것은 분명하다.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유엔이 직접 나서고 있다. 작년에 이어 2년째 안보리에서 북한인권을 논의하면서, 북한 권력층을 ICC(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하는 방안을 심의 중이다.

북한의 세련되지 못한 대외관계는 체제고립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모란봉 악단의 일방적 철수는 혈맹이라 할 중국 내에서조차 극도의 불신감을 갖게 했다. 남북관계에서는 8ㆍ25 합의를 이행하지 않음은 물론 12월초 차관급 회담에서 달러획득을 위한 금강산관광만을 고집해 남북대화 기대를 무산시켰다. 북한이 남북 간 신뢰를 보이지 않음으로써 대북 불신이 커지고 있다. 전반적으로 2016년은 북한의 체제 불안정성과 취약성이 한층 심화되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

김정은 ‘정통성(legitimacy)’ 동요로 리더쉽 취약

미국 CSIS(국제전략문제연구소)는「2016년 정세보고서(Global Forecast)」에서 33세된 김정은이 보여주는 예측 못할 언행과 호전적인 수사 등은 북한정권의 강점(strength)이 아닌, 약점(vulnerability)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지적하고, 권력교체 과정에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해왔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안팎에서 제기되는 정통성 논란에 김정은 자신이 극도의 민감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임으로써 리더쉽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김정은은 최근 “아버지(김정일)가 돌아가시기 전에 지도자 생활이 얼마나 힘들지 알게 될 것이라고 얘기했는데, 이제 이해된다”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공포정치에 따른 민심 이반으로 엘리트의 탈북이 늘어나고 있다. 2015년 10월 국가정보원의 국회보고에 따르면, “엘리트급 탈북자 국내 입국”이 지속적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북한정권이 붕괴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립을 지속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60여년 김일성ㆍ김정일 통치를 통해 체제 내부에 구축된 일종의 ‘내구력’일 수도 있다. 이는 마치 시스템에 내재하는 관성과 같아서, 지도층이 근본적 결함을 갖고 있음에도 큰 저항 없이 연명을 계속하고 있는 북한 특유의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른 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 이론에 의한 설명도 가능하다. 제도나 문화 등에서 한번 형성된 패턴이 그 후 환경이나 조건 변화에도 불구하고 관성처럼 지속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다만, 북한체제 도전요인이 날이 갈수록 축적된다면, 내구력이나 경로의존성 논리도 체제위기의 결정적 임계점을 넘어설 수 없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핵ㆍ미사일 개발 지속하며, SLBM 실험에 이어 ‘수소폭탄 보유’ 발언

그동안 예상돼왔던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가 유예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2015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당장은 아니지만, 준비를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핵탄두 소형화 여부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 북부사령관 윌리암 고트니(William Gortney) 제독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소형화 능력이 있으며, 미 본토를 겨냥한 장거리 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할 능력이 있다”고 언급해 주목되었다. 북한이 10월 노동당 창건일 무렵 예상됐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실행하지 않은 것은 중국과 국제사회의 반대 압력과 기술적 준비의 미흡 때문인 것으로 평가된다. 국정원은 11월 24일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북한이 2016년에 국면 전환을 위해 핵실험이나 장거리미사일 발사 등 도발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도 12월 14일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북한이 2016년에 핵실험 시도와 SLBM을 포함한 미사일 시험발사를 지속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김정은이 “수소폭탄 보유”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12월 10일자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수소탄(수소폭탄)의 거대한 폭음을 울릴 수 있는 강대한 핵보유국”을 선언했다고 보도했다. 수소폭탄은 일반핵폭탄을 이용해 수소핵융합을 일으켜 폭발력을 증가시킨 핵폭탄으로, 열핵폭탄(Thermo-Nuclear Bomb) 또는 열핵융합탄으로도 불린다.

미국은 “(수소폭탄 보유 여부가) 상당히 의심스럽다”며 북한 주장을 일축하면서도, “북한 정권의 핵무기 개발 야망이 역내 불안정을 야기한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중국도 외교부 브리핑에서 “관련 당사국이 정세완화에 도움되는 일을 하길 희망한다”고 언급해, 북한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모습이었다.

‘장마당’ 확산—북한체제 변화 야기할 기폭제(起爆劑)

북한당국이 “인민생활” 향상을 목적으로 시장경제 요소를 부분 허용하다보니 ‘장마당’이 확대되어 새로운 경제질서 구축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북한 주민 80% 이상이 장마당에서의 거래를 통해 소득을 증대시키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미국 CSIS는 북한의 배급체제가 수명을 다한 지금, 시장요소가 북한주민 생활에 침투해 중산층이 형성된다면 초보적 형태의 ‘시민사회(civil society)’가 출현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외부로부터 정보가 유입되고 시장 참여자들 간 의사소통이 확대되어 궁극적으로 권력의 통제가 어려워지면, 북한 체제변화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김정은의 통치 전략 중 과거 김일성 및 김정일과 다른 점은 공포정치 외에 장마당 등 부분적이나마 자본주의 형태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과 같은 극도의 폐쇄사회로선 과감한 실험이다. 그러나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무한정 북한당국이 시장경제요소를 허용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 2009년 화폐개혁 당시와 같이, 일정한 부(富)가 주민들 사이에 축적되었다고 판단되면 강제적인 방법으로 약탈과 부의 재분배 작업에 나설지도 모른다. 이미 북한당국은 ‘개혁ㆍ개방’ 언급에 강한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예컨대 최근 북한간부들에 대한 교육에서 “개혁ㆍ개방은 우리 내부를 허물기 위한 적들의 선전타령”이며, “타락한 자본주의 논리”라면서 “인민대중 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 수호”를 강조하고 있다.

대외 신뢰도 추락으로 고립 심화 불가피

2015년 8월초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촉발된 전쟁 직전의 한반도 위기 와중에서 북한의 대화 제의가 있었고, 극적으로 남북 간 8ㆍ25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북한의 대화 제의의 핵심 의도는 대북 심리전 방송 재개를 중단시키려는데 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목적을 달성한 북한의 대남 태도는 그후 180도 달라졌다. 지난 12월초 열린 남북 차관급회담에서 북한은 금강산 관광사업 재개에 집중했다. 금강산관광이 실질적인 외화유입 통로이기 때문이다. 우리 측이 이산가족 문제, 환경·민생·문화 등 3대 통로 개설과 같은 실질적 현안을 제의했지만 북한이 거부하면서 회담은 결렬되었다. 1998년 시작된 금강산관광을 통해 최소 10억달러에 달하는 외화가 북한정권의 통치자금으로 유입되어 상당 부분이 핵·미사일 개발 비용으로 전용됐다는 진단이 내려진 바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남북대화를 원하는 때는 대체로 경제지원이 필요하거나 당면 위기를 모면해야 하는 두 가지 경우라고 분석하고, 북한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해왔다. 이번 차관급회담은 우리 국민들에게 대북신뢰의 한계를 인상 깊게 보여준 사례가 되었다.

한편 가까워지는 듯하던 북중관계에도 적색 신호가 켜지고 있다. 북한 모란봉악단이 12월 12일 중국 공연을 취소하고 돌연 귀국했기 때문이다. 북한측의 외교적 결례로 인해 향후 중국의 대북 신뢰가 크게 훼손될 전망이다. 이른 바 중국의 대북 ‘3불론(三不論)’도 부상했다. 예컨대, 중국은 북한을 (i)소통이 안 되고(不溝通) (ii)중국의 말을 경청하지 않으며(不聽話) (iii)행동을 예측할 수 없는(不可測性) 상대로 의심하게 됐다는 것이다. 북한의 대외ㆍ대남 신뢰도가 추락하면서 고립이 가속화된다면, 체제위기에 일조할 수도 있다.

北 태도 변화 없는 한, 국가안보와 대북제재 병행 필요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정책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비판이 미국 내부에서도 나오는 가운데, 내년 대선 이후 미국의 대북전략이 새롭게 짜여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국의 한반도 전략은 동아시아에서의 미중 충돌과 중동 시리아 내전을 둘러싼 미ㆍNATO와 러시아 간 갈등이라는 범(汎)세계적 국제정치 프레임 속에서 가닥을 잡아나가게 될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북한의 재래식 및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사이버 공격능력 강화, 그리고 주민들에 대한 인권 침해 사례를 더 이상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모란봉 악단 철수 해프닝에서 볼 수 있듯이, 미중 갈등 속에 부심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도 북한 문제로 더 이상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태도가 엿보인다. 중국도 국내외로부터의 대북전략 수정 요구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 도달했다.

한국으로서는 원칙에 입각한 대북정책만이 효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12월 차관급 남북회담을 통해 분명히 알게 됐다. 대화의 문을 열어놓되, 진정정 있는 북한의 태도변화가 있을 때에 대화를 추진해야 한다. 북한의 무력중심 강경자세가 지속되는 한, 미국 등 국제사회와 효과적인 대북제재 전략 방안을 마련해 시행해야 한다. 한민구 국방장관이 2015년말 전군 지휘관 회의에서 “북한 김정은이 공포정치와 불가예측성, 군사적 도발 의지를 지속적으로 보이고 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정은의 불안정한 리더십을 파악하고, 견고한 안보태세 확립에 차질이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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