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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위해 베푸는 삶도 값지고 아름다운 삶
탈북자 수기
정현정 기자 

구립장애인복지관에서 자원봉사하는 탈북민 김선희씨

 

지난 해 12월3일, 서울시 용산구청에서는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일 년 동안 200시간 이상을 한 곳에서만 봉사한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구청이 마련한 뜻 깊은 자리었다. 여기에 탈북민으로서 유일하게 김선희(55세)씨가 참가했다.

 

2007년에 대한민국에 입국한 그때로부터 오늘까지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김선희씨는 자신을 지탱해준 유일한 힘은 ‘봉사’라고 이야기한다.

 

짐을 푼지 3일째부터 병에 시달려

 

대한민국에 정착한 탈북자 2만 8천명 시대. 자유를 찾아 목숨 걸고 찾아 온 이 땅에서 탈북자들은 국회의원이 되고 대기업 임원이 되고 명문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마음껏 배울 수도, 희망을 가 질 수도 없었던 탈북민들이 대한민국에서 당당히 대학을 졸업하고 박사가 되고 유학을 가고 있다.

 

학연도, 지연도, 인연도 없고 혈연마저 없는 낯선 땅에서 열심히 살아 온 많은 탈북민들의 삶의 면면에는 오직 ‘성공’이라는 하나의 목표만을 향한 눈물 나는 노력과 헌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갈피에는 자신만을 위한 삶도 있고 남을 위하여 베푸는 삶도 있다.

 

사람마다 세운 목표가 다르고 성공의 종착점은 다르겠지만 내 삶이 전부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베푸는 삶도 역시 값지고 아름다운 삶이다.

 

한국에 입국한지 7년이 되는 김선희씨 역시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사람이다. 탈북민 정착교육기관인 하나원을 수료하고 서울에 정착한 2008년 초, 김선희씨는 짐을 푼 지 3일째 되는 날부터 알지 못할 병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아직은 주민등록증도 없었고 병원이 어딘지도 몰랐다. 한 달 7일을 꼬박 앓았고 몸무게는 6.5Kg이나 빠졌다. 그런데 그 한 달 7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와 김선희씨를 친어머니처럼 보살펴준 사람이 있었다.

 

탈북민 정착도우미로 김선희씨와 인연을 맺은 적십자봉사단의 김정자 회장이었다. 김정자 회장은 매일같이 찾아와 그에게 약을 챙겨주고 갖가지 과일을 그의 머리맡에 놓아주었다.

 

혈혈단신으로 입국해 아무런 연고도 없었던 그에게 있어서 김정자 회장은 고향의 어머니와 같은 분이었다.

 

북한에서 몇 십 년 동안 살아오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온갖 비난과 악선전만 들어온 선희씨에게는 김정자 회장의 그런 모습이 처음에는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적십자봉사단 김정자 회장의 보살핌

 

선희씨의 병이 완치 된 후에도 김정자 회장은 그를 여러모로 돌봐주었다. 선희씨가 고마움을 표하자 김 회장은 당연한 일이라고 이야기하며 한껏 사양하였다.

 

그런데 다 나았나 싶었던 병이 도져 주말에 교회에 다녀오다가 길에 쓰러졌다. 지나가던 행인이 다가와 괜찮냐고 묻더니 119를 불러 주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119가 뭔지 알 수 도 없었지만 그 행인의 도움으로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또 한 번 위기를 넘겼다.

 

김정자 회장이 이번에는 선희씨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왔다.

 

24시간 닝겔을 꽂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선희씨를 위해 손수 머리를 감겨주고 속옷까지 세탁해주셨다. 입맛 돋우는 음식을 비롯하여 병원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챙겨가지고 하루에도 몇 번 씩 들려가곤 하였다. 당시 김정자 회장의 나이는 향년 74세... 김선희씨는 김정자 회장의 간병을 받으면서 주위의 다른 환자들을 찾는 가족 외에 간병인, 복지라는 낯선 단어에 접하게 되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김선희씨는 설이나 추석, 어버이날 같은 때 꼭 김 회장을 찾아뵙고 용돈도 드리고 식사대접을 한다, 그래도 뭔가 부족한 것 같고 항상 김 회장을 ‘엄마’라고 부른다. 김선희씨는 아직도 그 때 일을 잊을 수 없고 바로 그 김 회장이 오늘 날 자신을 자원봉사자의 길을 걷게 해준 고마운 은인이라고 말한다.

 

퇴원 후 사회에 정착하면서 선희씨가 느낀 모든 것은 더욱더 충격적이었다.

 

아파트 단지 안의 사회복지관, 노인정을 비롯하여 가는 곳마다에 복지시설이 있었고 지하철과 버스를 타도 장애인과 어르신, 임산부를 위한 좌석이 특별히 마련되어 있었다.

 

TV를 켜면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에 헌신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방영되고 있었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각종 서비스가 법적으로 보장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관에 등록하면서 봉사활동 시작

 

김정자 회장과 같이 아무런 대가도 없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을 자원봉사자라고 부르며 전국에 그러한 봉사자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자원봉사가 이미 하나의 사회적문화로 자리매김했다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한국사회의 여러 곳을 둘러볼수록 북한에서는 상상 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선희씨는 자신이 받은 것에 대하여 ‘돌려주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자신이 입원했던 병원을 찾아서 손이 부족한 환자들을 돌보면서 자질구레한 일들을 찾아하다가 해당 기관에 등록하면 봉사활동을 계획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해당 구청 자원봉사센터에 가서 등록을 하고 기회가 되면 소년소녀가장을 돕고 싶다는 바람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봉사를 시작해 하남에 있는 노인복지관에서 한번에 4~5백여 명의 식사봉사와 설거지를 하기도 했다.

 

2008년부터는 자신이 다니던 서울의 모 교회에서 매달 두 번 일요예배가 끝나면 봉사자들과 함께 천안, 양양으로 달려가 장애인들의 식사, 목욕, 청소, 밑반찬 만들기, 채소 심고 가꾸기 등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봉사활동으로 상도 받았다.

 

2008년에는 통일부에서, 2011년에는 몸담고 있던 탈북민 단체에서 받았다.

 

시작은 자신이 받은 것을 돌려준다는 의미로 시작했는데 정작 봉사활동을 하면서 오히려 자신이 받는 것이 훨씬 많았다고 김선희씨는 말한다. 복지시설을 찾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장애를 가지고도 열심히 사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었고 오히려 자신이 힘을 받는 다고 한다.

 

잊혀 지지 않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있다. 김선희씨는 허리디스크가 심한 편인데 한번은 목욕을 마친 장애인을 휠체어 침대위에 눕히려다가 사고(?)를 칠 뻔했다. 또 한 번은 약속한 봉사일정 때문에 회사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은 적도 있었다.

 

김선희씨는 현재 모 구립장애인복지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데 바로 지난 2014년 한 해 동안에 이곳에서만 200시간 넘게 봉사에 참여했다고 한다. 일 년 365일 8,760시간 가운데서 200시간은 결코 많은 시간이 아니다.

 

하지만 이 시간을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사회와 어려운 이웃을 위해 바쳤다면 그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봉사는 김선희씨 생활의 한 부분

 

태어나 오랫동안 살아온 고향과 전혀 다른 체제와 낯선 환경 속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부딪치며 살아 온 지난 7년간을 돌이켜보면 가장 행복한 때가 바로 봉사활동을 하는 때라고 이야기하는 김선희씨.

 

“북한에서 살 때 한국과 같은 자본주의사회는 양육강식이 판을 치는 썩어빠진 부패된 사회라는 교육만 일관하게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 와서 보니 자유민주주의체제라고 하는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보다 훨씬 더 민주주의적이고 살기 좋은 복지국가입니다.”

 

지난 기간 그를 지켜본 구립장애인복지관 담당자는 김선희씨를 가리켜 몸도 불편한데 일 욕심 많고 너무 열정적인 고마운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한 번에 8~90명분의 식사를 보장하는데 김선희씨가 오는 날이면 마음도 편하고 은근히 기다려진다는 속마음도 드러낸다. 그렇게 열심히 봉사하여 회사원, 군인, 대학생 자원봉사자 다 물리치고 조리실시험에 합격했다는 김선희씨.

 

그뿐이 아니다. 목요일마다 주변 어려운 50가정에 보낼 밑반찬도 만들어야 한다. 복지관에서 봉사는 하루 기본 4~5시간, 작년 7.8월에는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온 종일 출근했다고 한다.

때로는 봉사자로써 일일호프행사에 참여하고 ‘장애인의 날’ 같은 특별한 날에는 휠체어를 직접 밀고 장애인들과 함께 나들이에 나서고…

 

구립장애인복지관의 관계자들은 김선희씨를 가족이라고 스스럼없이 부른다. 얼마 안 있어 구정에는 장애인세대에 보낼 만두 200kg 를 만드는데도 역시 김선희씨의 손길이 필요하다.

 

김선희씨는 봉사만 하는 게 아니다. 열심히 강연도 다니고 주말에는 동네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오랫동안 아무런 대가도 없는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막히는 일도 거의 없다.

 

마트에서도 일을 찾아하다 보니 대번에 경력자로 인정받았고 성실함으로 오히려 마트사장님이 편의를 봐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한다.

 

자신 기다리는 사람 생각하면 힘 생겨

 

김선희씨는 봉사를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도움 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한다. 봉사를 통해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한 사이트를 통해서 알게 된 실향민 부모님을 모신 봉사자와는 아직도 함께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자신보다 훨씬 힘들면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이웃을 만났고 자신에게 수시로 고맙다고 인사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김선희씨도 몸이 지치고 힘들고 아플 때가 있다. 요즘은 더욱 건강이 안 좋다. 하지만 봉사만은 빼 놓을 수 없고 자신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힘이 생긴다고 한다.

 

김선희씨는 봉사를 통하여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받는 도움보다는 훨씬 큰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사랑으로 인해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하다고 한다,

 

대한민국과 이웃에 대한 감사함을, 만족함을, 고마움을 자원봉사를 통하여 채워가는 김선희씨. 그러한 그의 모습은 아름다움 그 자체가 아닐까…

 

2007년 12월에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 김선희씨는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봉사’라고 말한다.

 

정현정 객원기자

 

 


등록일 : 2015-03-09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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