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다 메구미(橫田惠)를 핵(核)으로 하여 일본의 아베(阿部晉三) 정부와 북한의 김정은(金正恩) 정권 간에 진행되고 있는 교섭이 결국 원점(原點)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파국(破局)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듯하다. 본래, 문제의 핵심은 요코다 메구미의 생사 여부. 이에 관해서는 이미 2002년 평양을 방문한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수상(당시)을 만난 김정일(金正日)이 “메구미는 이미 죽었다”고 말했고 2004년에는 그녀의 ‘유골(遺骨)’을 일본에 전달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2004년에 전달된 문제의 ‘유골’은 감정 결과 가짜임이 확인되었고 이런저런 사유로 지금의 아베 정부는 “요코다 메구미가 아직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생존 여부를 확인하고 생존해 있는 그녀의 일본 귀환을 실현시키는 데 거의 정치생명을 걸어 왔었다. 그런데, 이 같은 아베 정부의 ‘노력’(?)에 바람을 빼는 일이 터졌다. <동아일보>가 “일본 정부가 최근 믿을 만한 복수의 탈북자 심문을 통하여 ‘메구미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웃어넘길 수 없는 한 가지 에피소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메구미의 사인(死因)에 관하여 엇갈린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2002년 김정일은 고이즈미에게 “메구미는 산후(産後) 우울증으로 1994년에 자살(自殺)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도되었었다. 그러나, 이번에 <동아일 보>가 일본 정부가 최근 탈북자들을 통하여 들은 내용에 의하면 메구미는 자살한 것이 아니다. 메구미의 최후를 ‘목격(目擊)’했다는 증언자에 의하여 “메구미는 1994년4월 평양시내의 한 격리병동에서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는 가운데 약물 중독 또는 독극물(毒劇物) 투여 때문에 죽었다”는 타살(他殺)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메구미의 진정한 사인이 백일하(白日下)에 밝혀질 것인지는 속단(速斷)하기 어렵지만 아마도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렇게 될 경우 납북일본인 문제와 나아가서 일북(日北) 관계 전반에 관한 일본 아베 정부와 북의 김정일 정권 사이의 교섭의 향배(向背)와 아베 정부가 필연적으로 예상되는 정권의 위기를 과연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인지가 앞으로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첨가(添加)할 북한의 행태(行態)가 있다. 1972년 한국의 박정희(朴正熙) 정부는 그때 막 시작된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적십자회담에 추가하여 남북 간의 정치적 대화를 타진(打診)하게 되었다. 북한은 그때 무슨 영문인지 박정희 정부에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직을 맡아 한국의 오늘의 경제번영의 산파역(産婆役)을 감당했던 고(故) 장기영(張基榮) 한국일보 사주(社主)(당시)의 북한 방문을 집요하게 추진하고 있었다. 이를 알게 된 박정희 정부의 이후락(李後洛) 중앙정보부장(당시)이 “장기영 씨 대신 내가 직접 나설 터이니 북에서는 김영주(金英柱)기 나와 달라”고 제안한 것을 북측이 수용함으로써 남북 간에 정치적 대화의 통로가 추가적으로 마련되어 1972년7월4일의 ‘남북공동성명’ 발표와 남북조절위원회의 가동(稼動)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서 이후락은 1972년5월2일부터 5일까지 평양을 비밀리에 방문하여 김일성(金日成) 및 김영주와 각기 두 차례의 회담을 가졌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예상치 않았던 일이 발생한다. 이후락이 김일성에게 그의 평양방문에 대한 답례로 “김영주의 서울 방문”을 요청하자 김일성이 이를 거부한 것이다. 김일성은 외견(外見) 상 멀쩡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영주가 “병중(病中)”이라면서 이후락의 거듭된 요구에도 불구하고 김영주의 서울 방문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후락이 “멀쩡하던데 무슨 병중이냐”고 추궁하자 김일성은 “의사들 말이 무슨 ‘식물성신경부조화증’이라고 그런다”면서 “내가 김영주 못지않게 신임하는 사람을 서울로 보내겠다”는 말로 이후락의 김영주 서울방문 초청을 끝내 허락지 않았다.

서울로 돌아온 이후락은 남한의 의학계에 긴급한 질의를 띄웠다. “도대체 ‘식물성신경부조화증’이라는 질병이 무슨 질병이냐?”고... 그러나, 남한의 의학계에서는 ‘식물성신경부조화증’이라는 질병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생소(生疎)한 질병”이었다. 이렇게 해서 그해 5월29일부터 6월1일까지 북한 정권의 ‘부수상’이던 박성철(朴成哲)을 김영주 대신 서울로 보냈고 그 뒤에는 박성철이 “김영주의 대리인”이라는 신분으로 이후락의 상대역(相對役)이 되어 ‘7.4 남북공동성명’에 서명할 뿐 아니라 그 뒤 세 차례에 걸쳐 열린 ‘남북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회의’와 역시 세 차례 열리고는 중단된 ‘남북조절위원회’ 본회의에도 북측 단장으로 참가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김영주의 진짜 ‘건강’이었다. 이후락의 비밀 평양방문이 이루어진 뒤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남측의 <중앙정보부>는 김영주의 ‘신병(身病)’은 조작된 것이고 실제로 김영주는, 남쪽에서 이후락이 남북간 정치적 대화의 상대방으로 그를 지명했을 때, 비록 아직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 부장이라는 직함은 걸치고 있었지만, 이미 그 당시까지도 존재 자체가 알려지지 않았던 김일성의 장남 김정일과의 치열했던 권력암투(權力暗鬪)에서 패배하여 무대(舞臺)로부터 사라져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 북한이라는 권력구조의 내면(內面)은 그때나 지금이나 내로라하는 남한의 <중앙정보부>로서도 이미 실권(失權)하여 권좌(權座)로부터 밀려나는 위치에 있던 김영주를 “북한 권력의 2인자”이자 “김일성의 유력한 후계자”로 오판(誤判)하게 했을 정도로 완벽하게 외부로부터 차단, 폐쇄되어 있었다.

남한은 사후(事後)에야 그때 남쪽에서 김영주를 이후락의 대화 상대역으로 지목했을 때 북한은 이미 정치적으로 ‘산 송장’이 되어 있는 김영주를 가지고 ‘사마매골(死馬賣骨)’ 게임을 연기(演技)한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김영주’라는 ‘이름’은 1972년말부터 북한의 모든 공식 문건(文件)에서 소멸(消滅)되었다. 그는 함경북도 길주(吉州) 땅으로 ‘귀양’보내져서 18년 동안 ‘연금(軟禁)’ 생활을 하다가 김일성이 죽기 3년 전인 1991년 북한 정권의 ‘부주석(副主席)’이라는 시위소찬(尸位素餐)의 명목적인 자리에 임명되어서 평양으로 귀환한 뒤 북한의 권력이 자신을 권좌에서 밀어냈던 김정일을 거쳐서 그의 아들 김정은으로 세습된 지금까지도 그 잔명(殘命)을 유지하고 있다.

또 하나의 믿기 어려운 에피소드. 1973년8월 남북조절위원회가 북한측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중단된 후 1973년에는 판문점에서 남북조절위원회의 남측 부위원장인 장기영과 북측 부위원장인 류장식(柳章植) 사이에 ‘남북조절위원회 부위원장회의’가 1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북한의 경우 종적이 사라진 김영주가 대외적으로는 여전히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 부장 직함을 유지하고 있었고 류장식은 그의 수하(手下)로 <조직지도부> 부부장이었다. 어느 날 필자는 장기영 부위원장을 수행하여 부위원장회의에 배석(陪席)하고 있는 도중 류장식에게 김영주의 근황(近況)을 물었다. “김 위원장의 건강이 좀 낳아졌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대해 류장식으로부터 실로 듣는 사람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대꾸가 날아왔다. “낸들 압네까. 아파서 누워 자빠져 있는데...”